그런 날이 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
눈을 뜨고 일어나는 일조차.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어딘가로 가기 위해 옷을 입는 일조차.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걷는 일조차.
버거운 날이 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종종 찾아온다.
지금 나는 그런 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진짜 다 그만두고 싶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문장이 쏟아질 때면,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인가. '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쏟아진 문장을 꾹꾹 다시 주어먹기라도 하듯 이런 문장을 다시 마음속에 써 내려갔다.
'순간의 감정일 거야. 이 시간만 지나면 아무렇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지나온 날들 중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이 구체적으로 어떤 날이었는지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날씨가 어땠는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날 내가 울었는지 눈물만 머금었는지, 점심을 먹었는지 굶었는지, 내 감정의 결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원인이 해결돼서 떠오르지 않는 걸까?'
나는 꼬리표처럼 이어지는 내 물음표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듯, 들숨을 쉬면 날숨이 나오듯, 자연스럽게 '그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은 여전히 나를 찾아왔으므로.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찾아가도 되냐는 어떤 언질도 없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고개를 드밀고 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그렇다.
이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내 일상은 다른 일상과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두 아이의 어린이집 수첩을 쓰고, 두 아이의 감기약과 입을 옷을 챙기고, 일찍 일어난 첫째와 놀아주고, 출근하려는 현관문 앞에서 회사 가지 말라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할머니한테 가 봐, 과자 주신대"라고 하면서 아이가 시선을 돌린 사이 급하게 집을 빠져나오고. 남편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타려는 사람들 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지하철 안에서 업무에 관련된 뉴스나 레퍼런스를 찾다가 회사에 도착해서는 일과 일과 일. 일이 많아 점심을 편의점서 사다가 먹으며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 영유아 검진 예약해야지' 싶어 집 근처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고, 그 와중에 "평일 10시 15분 이후에 오셔야 하는데요"라는 간호사 말에 "제가 안 갈 거라서 동행하는 보호자 스케줄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하고 대답하고. "그러니까요 어머니 평일 10시 15분이라 지금 말씀드린 20일이랑요" 하고 계속 말하는 간호사에게 "제가 직접 못 간다고요" 하고 또 말하고, "아니요, 지금 말씀드린 20일 이후에 못 오신다는 건가요?"라는 간호사 말에 조금 큰 목소리로, 회사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봐 계단 언저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가 못. 간. 다. 니까요! 동행할 보호자에게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했고,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봐주세요, 하고 던지는 원고를 보다가 클라이언트의 전화 응대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에게 온 '언제 퇴근해?'라는 카카오톡 알림에 '아, 6시가 넘었네' 생각을 했고, '아무래도 1시간 정도 더 일해야 할 거 같아, 지금 세팅 기간이라 이해 좀 해 줘'라고 답장을 보냈고, '나도 오늘 야근해야 할 거 같은데'라는 남편의 답장에 '그럼, 내가 갈게'라고 답을 보내고 일거리를 챙겨 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오늘 물 한 잔 안 마셨네'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했다. 달리듯 지하철 역에 도착해 다시 인파 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집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도, 입히고, 놀아주다가 퇴근한 남편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첫째 아이와 놀다가 "율이 머리가 왜 이래?"라는 말에 "엊그제인가 어제인가 당신 잘 때, 나랑 같이 부엌에 가다가 식탁에 부딪혔다고 했잖아" 하고 대답했다.
남편은 심각한 얼굴로 아이 머리를 만졌다. 아이가 "아파, 아파" 하고는 우는 얼굴을 보였다.
"어제야? 엊그제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제였는지, 엊그제였는지.
어제나 엊그제나 다 정신없는 소용돌이의 일상 속에 파묻혀 있는데. 뉴스 볼 시간도 없어서 대체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제인지 엊그제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분명한 건 남편이 퇴근해서 너무 몸이 안 좋다며 저녁을 먹자마자 자리로 가서 누웠던 날이었다.
"왜 당신 잔다고 누웠던 날."
내 대답에 남편이 음성을 높였다.
"내가 안 잔 날이 어딨어. 대체 어떻게 애를 봤기에 애가 이렇게 머리가 부어. 엊그제면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 애가 계속 아프다는데 관심도 안 가져? 너는 일이 1순위지? 애들은 중요하지도 않지?"
사실, 그날 저녁을 먹을 때도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엄마가 좀 볼까, 하는 내 말에 아이는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
아이가 다친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콧물만 나도 마음이 짠하다. 머리가 많이 부었다는 남편에 말에 나는 마음이 터질 듯 아팠다. 그리고 죄책감이 내 머리를 치고 갔다. 하지만 내 1순위가 일이었던가.
"아니, 무슨 나한테 1순위가 일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항변하듯, 감정으로 도배된 문장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남편은 물러서지 않았다.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일만 하잖아. 중간에 애들 생각은 해? 일 생각밖에 안 하잖아."
추긍하듯 던지는 저 말에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침 8시 30분 즈음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일만 생각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다 보면 분유나 기저귀 주문 때를 잊어버리거나 아이 준비물 준비를 잊곤 해서, 뒤늦게 남편의 이런 질타를 받곤 했다. "못 챙길 거 같으면 그냥 나한테 넘겨, 맨날 까먹지 말고."
내가 왜 일을 할까. 나를 위해서도 있고, 아이를 위해서도 있다. 내가 벌지 않으면 당장 우리 가족이 손가락을 빨진 않겠지만, 남편이 얼마나 더 부담스러워할까.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지출이 더 커질 텐데, 지금이라도 악. 착. 같. 이 회사에서, 이 사회에서 버텨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매일 떠올리며 아침마다 지하철에 몸을 실었던 나였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을 한다고 설렁설렁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는 늘 모자란 엄마 같았고 회사에서는 늘 모자란 직원 같았다. 화장실 가야 하는 것도 잊고 정신없이, 나를 위해 쓰는 1분도 없이,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남편에게 나는 일만 생각하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돈도 쥐꼬리만큼 주는 회사에, 바보같이, 자기가 사장인 듯,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되었다.
클라이언트가 전화로 자기감정을 쏟아낼 때, 후배들이 자기는 지시한 일이 너무 많다며 못하겠다고 떼를 부릴 때, 항상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둘까.
아이가 열이 많이 난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화를 할 때, 병원에 데려가야 하니 반차를 써야 한다고 보고해야 할 때, 아이가 회사에 가지 말라고 울 때, 항상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둘까.
언니들이 그랬다. 선배들도 그랬다.
버텨, 시간은 공짜야. 버티다 보면 애들도 크고, 애들이 크면 월 백만 원이 아쉬워.
친구들이 그랬다. 후배들도 그랬다.
자기 일 없으면 우울하지 않아? 선배, 선배 같은 사람이 일 없이 살 수 있겠어요?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알았다. 나는 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 후배가 물었다.
"뭔가 배우거나 해야만 한다면, 파트타임 일만 하면 안 돼요? 취미로 뭘 배우러 다니기만 해도 되잖아요?"
그건 또 아니었다. 내가 당장 관두면 대출이자며 식비며, 당장 가계가 무너지진 않아도, 더 팍팍해질 것이었다. 지금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팍팍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전문직이라 파트타임으로 일할 자리가 많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성공하거나 유명인이라 딱히 풀타임 근무를 하지 않았도 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자기 비하로 이어졌다.
차라리 남편이 내 월급 급여까지 금액만큼만 더 벌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또 끊임없이 나를 불만족자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남편 역시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회식에도 얼굴을 붉혀가며 빠지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려 한다는 것을. 나의 야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그냥 관두고 없는 대로 살자"라거나 "없으면 또 없는 생활에 맞춰서 살 수 있어"라는 말이 나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말임을 나도 안다.
때때로 "네가 버는 건 진짜 쥐꼬리밖에 안 돼서 우리 가계에 도움이 안 돼"라는 말도 나에게 건네는 위로의 일종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계속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했다. '더 많이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더 일을 잘해서 많이 벌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애들도 잘 챙겨야지'라고 생각했고,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나를 채찍질만 하다가 남편이 나를 비난하거나 일하다가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답은 없나.'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날은 그럴 때 찾아왔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찾아온다. 나 같은 워킹맘은 물론,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찾아온다.
원인을 찾자면-
대체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족에게서? 이 나라에서?
명확한 원인이 있기는 한 걸까.
원인을 모른 채 사람들은 이 날을 어떻게 버틸까.
음악으로? 여행으로? 잠으로? 마음 맞는 이와 이야기로? 맛있는 음식으로?
지금까지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날을 지나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건 '지나온 게' 아니었다. 그냥 그런 날을 모르는 척 넘기기 위한 '가림막'이었다.
그렇다고 가림막 외에 '온전히 통과할 방법'이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물음표일 뿐이다.
다만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모호하게 생각할 뿐이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을 모르는 척, 가리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과 멀리멀리 떨어질 무렵, 그 자리에서 돌이켜보면 '아, 그게 그랬구나' 싶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럼에도 그런 날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모든 걸 내려놓고 싶게 만들겠지만.
짐짓 모르는 척, 내 삶에서 아우성치는 수많은 고민과 생각을 묻어버리고.
가림막에만 몰두할 수 있는 날.
나를 위로할 책 한 구절, 나를 토닥여줄 맛있는 그 무엇, 힘든 어깨를 만져줄 그 누구, 숨통을 잠깐 틔어줄 그 어떤 것.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으 날은 그 가림막을 찾아야만 하는 날이다.
모든 걸 다 내려 놓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나 자신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일을 하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회사를 관뒀다. 그땐 원인 중 하나가 그 회사였고, 분명 관둠으로 그런 날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 원인을 관둘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손을 놓을 수도,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그게 원인이라도 나는 그 원인을 너무 사랑하고, 그 원인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을 줄일 방법이야 있겠지. 남편과 더 이야기를 해본다거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회사와 더 이야기해본다거나.
그런 방법을 찾지 않고 가림막 속으로만 들어가 있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나를 위한 가림막도 준비해두겠다는 이야기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이 찾아오기 전에 나를 위한 가림막 속으로 가끔 들어가야겠다.
때때로 그런 날이 찾아오더라도 지지 않고, 나의 마음을 잘 살펴보겠다.
그게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지금의 최선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 누군가에게.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어줄 수 없는 글일지라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에게만큼은 큰 위로가 되었다.
버티거나 견디는 게 수동적인 태도는 아닐까 고민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현재를 완벽하게 바꿀 수 없다면, 지나가는 현재에 내가 최대한 상처 입지 않도록, 힘을 다시 내도록 나를 격려하는 일. 그 일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 오직 이것만 생각하길.
나를 지켜내자, 나의 삶과 나의 행복.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일상을 온전히 토닥여주자.
원인이 있다면 해결하면 되고 그게 어렵다면 지금 당신을 격려해주면 된다.
당신은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그건 누가 뭐라고 하든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에게 집중하길 바란다.
무사히 이 날이 지나가길 빈다,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