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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umagal Dec 30. 2023

C에 대하여

학창 시절의 C.  

소극적인 아이.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들이 나를 설명할 때 곧잘 쓰시던 표현이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듯 하나 말주변은 그리 없는 편이었다. 먼저 다가가거나 무언가를 주도하는 일은 없었다. 최대한 관심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것은 싫었다. 그래도 나에게 다가와주는 친구들 덕에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갔다.


중학교는 즐거웠다. 여자 중학교였는데, 같은 초등학교에서 알던 얼굴들이 보이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제 조금 친구 그룹이 만들어지나 싶었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 가족과 떨어져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데다 유일하게 한국으로 연락을 할 수 있던 핸드폰은 밤이 되면 캐비닛에 잠겨지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당시 빠삭했던 인터넷소설이나 아이돌들은 나만 아는 것이 되었고, 그나마 학교에 있던 한국인 학생들도 미국 문화에 적응한 사람들이었다.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조차 끼지 못했고, 미국 친구들은 만들기 더욱 어려웠다. 좋아하는 관심사를 얘기하면 비웃는 듯한 눈초리가 느껴졌고, 한국인 동급생들 사이에서는 은연하게 따돌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딴섬이 되는 기분이었다. 비난의 대상은 내가 되었고, 나는 언제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소속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던 것을 숨겼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다 내어주며 그들 사이에 끼려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호구 같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들을 조금 사귀는가 싶었더니 그렇게 끼게 된 그룹 내에서도 서열이 생겼고, 그 서열의 가장 밑은 나였다. 한국인 동급생 중 그 서열을 이용해 나를 유독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A라 칭하겠다. A는 위에서 언급했던 한국 학생 문화를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일반 중학교에 다니던 친구들도 있어서 그랬던가. 내게 인터넷소설을 다운로드하여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하고는 했었다. 그 친구는 점점 내 잘못이 아닌 것을 내 잘못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를 3년이나 다니며 여러 일이 있었지만 A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겼을 때, 내가 도와주지 않아 그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 그 남학생이 멀어지게 된 것은 (애초에 친하지도 않았으면서,라는 말은 꾹꾹 눌러 담았다.) 다 내 탓이라는 말을 들으며 정말 나의 탓인 듯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존재가, 나의 이런 성격이, 내가 이렇게 생긴 것이 전부 다 잘못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을 지니기 시작하며 중학교 2학년에 돌입했고, 그때 당시 핼러윈 댄스파티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동급생들과 함께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너무나도 모자라보였다. 그때 당시 살이 쪄있던 나는 모든 살을 가리려 노력했고, 여드름을 가리려 노력한 화장은 부자연스러웠다. 귀여워 보이는 여학생들 사이 우중충한 나. 그래도 파티는 나름 즐거웠고, 이제는 조금 친해지게 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여학생들이 신발 한 짝을 던져 신발 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했더니 바로 던져둔 여학생들의 신발을 남학생이 골라 파트너가 되어 슬로 댄스를 춘다는 것이었다. 내 신발을 고른 남학생은 A가 좋아하던 남학생이었고 그 남학생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경직된 표정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내 치맛자락을 잡은 채 춤을 추었다. 그 친구를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이성과의 어떤 접촉도 없었던 내게 그런 댄스를 추며 썩은 얼굴로 있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서라는 생각에 기숙사에 돌아와 울기만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이후부터 나는 연애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영원히 혼자일 거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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