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뒤지다가 예전에 정리해놓은 글을 발견했다. 김진섭의 <생활인의 철학>을 읽다가 마음에 든 부분을 적어놓은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시대에는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수필은 그야말로 백미다. 그가 납북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지혜롭고 아름다운 글을 우리에게 더 많이 선사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출판사를 운영할 때, 이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김진섭의 장남과 출판 계약을 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가운 마음에 몇 토막을 소개해 본다.
실로 사랑은 우리가 집도 절도 가지지 못할 때 흔히 오며, 재화는 지악(至惡)한 사회에만 몰리고, 영예는 사후(死後)에야 비로소 우리를 찾는다. 이리하여 인생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같이 되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 그 결말에 당하고 보면 전연 다른 괴물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요술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을 아름답다고 한다. - 김진섭, <인생은 아름다운가> 중에서
사람이 차라리 이렇게 살기보다는 한 개의 큰 비극이 몸소 되어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리만큼, 그 생활이 평범하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 김진섭, <채루송> 중에서
원래 현실적 정세를 파악하고 투시하는 예민한 감각과 명확한 사고력은 흑종의 여자에 있어서 더욱 발달되어 있으므로, 흔히 현실을 말하고 생활을 하소연하는 부녀자의 아름다운 음성에 경청하여 그 가운데서 또한 많은 가지가지의 생활 철학을 발견하는 열락(悅樂)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 김진섭, <생활인의 철학> 중에서
돈은 억지로 벌려고 해서는 되지 않으며, 들어올 때가 되면 자연히 들어온다는 말은 우리들이 보통 듣는 세간의 지혜에 속하거니와, 억지로 안 되는 것을 벌려는 것도 무리라 하겠으나, 돈을 함부로 경멸할 이유도 무릇 없는 것이다. 돈에 대한 이유 없는 멸시는 대단히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다.
- 김진섭, <금전 철학> 중에서
사람이 타고난 활력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세상의 풍파에 마찰을 당해야 됨은 물론이고, 또 우리는 생활의 목적이 생활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운동하고 성장하고 전투하는 것이 곧 생활의 목적이 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섭, <생활의 향락> 중에서
생활술(生活術)이란 결국 무엇이냐 하면,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모든 체험 속에서 우리가 한 개의 심각한 지혜를 도출(導出)하는 동시에, 그 오묘한 감즙(甘汁)을 섭취할 줄 아는 독특한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김진섭, <생활의 향락> 중에서
교양은 항상 도상(途上)에 있는 것이요, 목적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과정을 의미할 뿐 어떤 인격을 통해서 낙착된 소유물로서 표현될 수는 없는 것이니, 교양이란 말하자면 운동이요, 생성(生成)이요, 과제(課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있었던 것, 이미 되어 있는 것에 대한 동화(同化), 순응이 아니요, 항상 새로이 쇄도(殺到)하는 많은 재료의 섭취, 소화에 의한 자기 변혁이요, 자기 성장인 것이다. - 김진섭, <교양에 대하여> 중에서
나날이 닥치는 생활고도 그들을 위하여 사랑과 웃음으로 가볍게 극복하고 씩씩하게, 건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나가는 주부의 강인한 생활력보다 더욱 신성한 것이 과연 이 세상에 다시 있을까. 우리들 생활인의 아름다운 반려(伴侶)요, 생활인의 충실한 수호자인 주부를 한없이 예찬(禮讚)하려 한다. - 김진섭, <주부송(主婦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