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대로 잘 적응해 나갔다. 체력이 문제였지만 정신은 맑았다. 실적은 비록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면박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받은 교육은 언제나 내 영업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교육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특효약인 줄은 그때 알았다. 거침없이 사람들을 만났고, 만나면 만날수록 회사에 대한 내 자부심은 늘어나는 고객 수만큼 커져만 갔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있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해결되었다. 목표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목표를 높여도 가까이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업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그 어떤 행위라면 사람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또다시 체력이 떨어지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대기 상태에서 두 차례 잠이 들기는 했지만, 경찰이 뛰어와서 깨우면 그만이었다. 그 길로 다시 차를 몰아 약속장소에 가면 사람이 있었고, 나는 다시 명랑을 되찾아 그 사람과 길든 짧든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본급 없이 일등과 꼴찌의 수입 격차가 60배에 달하는 무서운 영업조직에서 내 몸값은 내가 정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마음 속에 품고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내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나는 평상시처럼 종일 사람들을 만나러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허기를 느꼈다. 고객과의 약속은 내 식사시간보다 중요했으므로 제때를 놓치기가 쉬웠다. 나는 아무리 늦은 시간에 상담이 끝나도 현지에서 퇴근하지 않았다. 회사에 들러 하루를 정리하고 귀가했다. 그게 속이 편했다. 경험상 일에 끌려다니면 곧 슬럼프에 빠졌다. 일을 끌고 가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 '귀사 후 귀가'였다.
내가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어느새 9시를 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주차장은 퇴근 시간을 잊은 동료들의 차들로 빼곡했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나를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돌아보니 나보다 일 년 빨리 입사한 동갑내기 선배였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맞으며 긴 하루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는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거의 10시간을 운전했다고 말하는 그가 빙그레 웃는 얼굴 속에 피곤함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우리 지점의 간판스타였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영업을 시작한 이래 하루 평균 0.9건의 신계약을 따내고 있었다. 거의 매일 새로운 누군가를 자기의 고객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그의 실적은 회사 전체로 봐도 톱10에 드는 경이로운 성적이었다. 칭찬에 인색한 내 담당 매니저도 다른 팀 소속의 그만은 본받을만한 영업사원이라고 자주 치켜세웠다. 본사에서 파견 나온 여직원들에게도 그는 인기가 높았다. 그의 일처리는 손댈 데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는 게 이유였다. 나도 그가 좋았다. 제대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지만, 항상 웃고 다니는 그가 여유로워 보여서 좋았다.
주차장은 건물 5층이었고, 사무실은 10층에 있었다.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내가 10층 버튼을 누르려 하자 그는 내게 물었다.
“저녁은 했어요?”
나는 아직 먹지 못했다고 대답했고, 그는 그럼 식사나 같이하고 올라가자고 했다. 나는 10층 대신 1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영업에 관해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그에게 물어볼 기회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가 찾아들어 간 식당에는 퇴근길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 직장인 두 팀이 있었다. 이 시간에 식사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식당 주인에게 그냥 저녁 될만한 안주거리에 밥이나 달라고 했다.
“우리 처음 식사 같이하네요. 참나, 사는 게 뭔지. 저렇게 퇴근길에 소주 한 잔 함께 나누는 게 진짜 직장 생활인데. 그렇죠?”
“그러게 말입니다. 서로들 바쁘다보니 밥 한끼 제대로 같이 못하네요.”
곧 밥이 나왔고,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먹는 게 영 부실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는 모양이 처음 하는 사람 같았다. 급기야 그는 억지로 밥을 먹는 사람처럼 밥에 물을 말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는 조금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아니었다. 항상 웃고 다니는 그가 오늘은 무슨 영문인지 무척 우울해 보였다.
이럴 때가 제일 조심스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우리 영업사원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영업 나간 동료가 오늘 밖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본인 입으로 말하기 전엔 알 길이 없었지만, 표정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항상 조심했고, 서로에 대한 배려는 전쟁같이 아주 힘든 일을 함께 수행할 때 생기는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으로 발전되곤 하였다.
나는 분위기를 좀 바꿔 볼 요량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님, 해남이라는데 아시죠? 정말 멀긴 멀더라고요. 목포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더라고요. 지난 주에 고향 친구라며 고객한테 세 명 소개받아서 갔었거든요. 그런데 한 명도 못 만났어요. 물론 전날 확인 전화했죠. 셋 다 오래요. 그래서 갔죠. 그런데 도착해서 전화했더니 두 명은 연락이 아예 안 되고, 한 명은 급한 일이 생겨서 만날 시간이 없대요. 완전 뚜껑 열렸잖아요. 그래서 서울로 바로 안 오고 에라 모르겠다 부산에 있는 친구한테 가서 이틀 잠수 타다가 왔어요. 와서는 매니저한테 박살났죠.”
지난 주는 나도 무척 힘들었다. 슬럼프에 잘 안 빠지기로 유명했던 난데 지난주는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방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해서 나는 그를 위로한답시고 내 무용담을 꺼낸 것이었다.
“어이구 고생 많이 했네요. 영업하다 보면 별일 다 생기지요. 그래서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할만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는 건성으로 내 얘기를 받았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는 데 실패했고, 그는 밥을 반이나 남긴 채 숟가락을 놓았다.
“사무실 들어가서 할 일 많아요?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갈래요? 안주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모여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영업만을 생각했고, 영업에 방해되는 일은 가급적 피했다. 술 마시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흐트러진 모습을 후배들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그가 먼저 소주 한 잔을 제의한 것이다.
의외였다. 나는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는 한참 일해야 하는 후배에게 술이나 마시자고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거 알아요? 요즘 전 내가 사람이 아니라 앵무새 같다는 생각을 해요. 매일 사람들 만나서 똑같은 얘기를 그것도 다섯 번 열 번 하려니 지겨워서 죽겠어요. 일하는데 흥이 안나요. 좀 다르게 해보려고 하는데 생각이 안 나요.”
내 잔에 술을 따르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짧은 얘기를 듣는 순간, 이건 또 뭔가 싶었다. 나는 오늘 지방에 가서 별로 안 좋았고, 그래서 힘이 든다는 얘기 정도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앵무새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얼버무리려 했다.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처음 할 때는 뭐가 뭔지 잘 모르니까 바싹 긴장도 되고, 배우는 맛에 신도 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좀 익숙해지면 재미도 덜 해지고 생활도 다시 그전처럼 똑같아지고 말이에요. 그래도 선배님은 이 회사로 오셔서 성공하셨잖아요. 모두 선배님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그는 내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한 명은 알고, 다른 한 명은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얘기를 서로 주고받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 우리 둘 사이에 잠시 흘렀다. 그는 그 답답함을 깨려 입을 열었다.
“실적은 세일즈맨을 움직이게 하죠. 그건 확실합니다. 능력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죠. 하지만 그 보상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수동적인 말 같아 화가 나요. 마치 보상만 주어지면 싫든 좋든 무슨 일이고 하겠다는 의미 같아서. 성취감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죠. 물론 선택은 우리가 했죠. 노예처럼 강제적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죠. 문제는 우리 자신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보상받으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일이 재미있어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니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특히 영업처럼 힘든 일일수록 그런 생각들이 필요하죠. 그런데 전 해답을 빤히 알면서도 돌파구를 못 찾겠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앵무새가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사람들은 일을 뭐 재미로 하냐고 배운 게 도둑질이고, 그냥 마지못해 살려고 한다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일하려고 전에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이 일 선택한 거 아니잖아요. 재미있어야 오래하는데... 저 큰일이죠?”
그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보상과 성취감이라는 건 동의어가 아닌가. 그런데 그는 왜 그걸 구태여 구분하려고 하는가. 앞만 보고 뛰어도 될 듯 말 듯한 게 영업인데 그는 왜 그렇게 복잡한가. 영업을 잘하려면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매니저들의 충고를 그는 왜 어기려 하는가. 빛나는 실적으로, 깔끔한 일 처리로, 항상 웃는 얼굴로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가 왜 난데없이 자신을 앵무새라고 말하는가. 나는 요즘 그가 세일즈맨이면 어쩔 수 없이 빠지는 슬럼프에 있고, 그래서 예민해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는 소주 한 병을 반씩 나눠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실적 보드판으로 걸어가 빨간색 단추 두 개를 붙였다. 그것은 신계약 두 건을 따냈다는 의미였다. 그는 오늘 지방 출장에서 실적을 내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와 식사를 하는 내내 우울했다. 슬럼프에 빠져있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날 거라는 믿음은 내게도 있었지만, 그의 그것은 실적이나 문전박대 같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고민 같아서 걱정이었다.
나는 내일 할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12시가 조금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사무실에는 그와 나, 둘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지 생각하는지 그것은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방해가 될까 싶어서 인사도 없이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를 생각했다. 전 직장에서 쫓겨나듯 나온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10년 가까이 쌓아온 기득권을 버리고, 가족의 반대를 이기고, 어렵게 인터뷰를 통과하여 영업이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 것이었다. 간혹 낙오자도 생겼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있었다. 반대하던 가족들도 전보다 나은 수입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고, 우리는 영업사관학교라는 칭송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득권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힘든 일을 평생 하고자 생각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60명에 가까운 영업사원이 근무하는 우리 지점에서도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없었다. 모두 젊은 시절에 잠시 열정을 불태워 삶의 기반을 잡아보려고 이 일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러기에 보상과 희생이라는 두 단어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잠시 내 인생을 희생하더라도 큰 보상이 주어진다면 일이 적성에 맞든 그렇지 않든, 재미가 있든 없든 우리는 참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과연 영업이라는 것은 오래 할 일이 아닌가. 과연 영업을 평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어쩌면 현재 회사에서 최고의 보상을 받는 그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껏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내게 그의 고민은 점점 숙제로 남기 시작했다.
그가 회사를 떠나기까지는 그날로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몇 차례 매니저와 힘겨운 독대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지점장도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가세했다. 본사에서도 담당 상무가 그를 찾아 급히 사무실을 방문했다. 답답하기로는 그를 믿고 의지했던 우리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그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가정에 피칠 못할 사정이 생겼다는 얘기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경쟁회사로 옮긴다는 소문도 회사 전체를 축축하게 적셨다. 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추측도 설득력을 얻었다. 매니저와의 불화설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됐든 엔지니어였던 그를 훌륭한 세일즈맨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회사의 교육시스템도 그를 회사에 오래 묶어두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났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영업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그 어떤 행위라면, 반드시 창조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지혜를 그는 회사를 떠나면서 내게 가르쳐주었다.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실적도 좋은 분이 왜 간데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돈 벌려고 여기 온 것 아니에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후배가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이야?”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글쎄요, 생각 안 해봤는데요. 그냥 할 때까지 해보는 거죠 뭐.”
나는 그날 저녁, 내 생각을 정리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직업에는 분명 귀천이 있어. 귀한 직업이 있고, 천한 직업이 있지. 감히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뭐냐고?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귀한 것이고, 주유소 점원은 천한 것이냐고? 물론 그렇지 않지. 내가 말하는 직업의 귀천은 그런 식으로 직업을 나누는 것이 아니야. 기준은 바로 사람이야.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 말이야. 사람에 따라 같은 직업이라도 귀하게 분류되기도 하고, 천하게 분류되기도 해. 여기에서 한 가지 더 큰 기준은 창조적으로 그 직업을 수행하느냐 혹은 그렇지않느냐 하는 거야. 우리 세일즈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 우리가 무엇을 팔든 그 물건은 고정되어 있어. 우리 세일즈맨들은 우리가 파는 물건을 임의적으로 고쳐서 팔 수는 없는 거잖아.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고객들은 매번 다른 사람들이지. 성향도 다 다르고, 직업도 다 다르고, 니즈도 다 달라. 바로 이 지점에서 세일즈맨들의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거야.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만 접근하려고 하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거야? 우리 상품이 가장 좋으니 사라는 말만 계속할 거야? 귀찮아지면 그냥 죽는 거야. 서서히 우리가 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면 우리의 직업은 그만큼 천한 직업으로 전락하고 말아. 영업이 싫어지고, 결국엔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직업이든 천한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 우리 창조적으로 생각하자. 내일 만나고자 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그리고 현명하게 생각하자. 영업이란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창조적 행위임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이 영업이라는 것을 귀한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분주해졌다. 그러려면 우선 재미를 붙여야 했다. 그러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려면 창조적 발상이 필요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실행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들을 세웠다.
첫째, 내일 만나는 사람의 생활 상황이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구하자. 특히 직업을 철저히 파악하자. 나는 내일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가 일하는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경쟁회사의 홈페이지도 방문했다. 홈페이지가 없으면 관련 기사나 서적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잘 알고 있어서 신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들을 몇 가지 뽑았다. 이 질문들은 그와 나 사이를 좁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다방면에 걸쳐 똑똑한 녀석이 되었다. 똑똑해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한번은 음료나 세제 같은 제품에 들어갈 향을 개발하는 연구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직업도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게 그가 하는 일을 검토해 보았다. 그는 개발과정, 경쟁회사, 시장판도 등을 술술 꿰는 나를 보고 감탄했다. 물론 그는 내 고객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어 나는 더 기뻤다. 나는 사람들이 뭐해 먹고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둘째, 그 사람만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자. 고객들은 자기만의 보험 컨설턴트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팜플렛, 브로슈어, 견적서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자료들은 경쟁회사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대신 나는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보고하는 서류 양식을 인용하여 그 사람만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내용으로는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보험 플랜은 물론 전문가로서의 내 의견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사가 된 듯 보고서를 검토했고, 결재하듯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셋째, 상품소개는 가급적 짧고 명료하게 하자. 고객들은 대부분 세일즈맨의 방문을 꺼렸다. 상품설명을 듣는데 지겨워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제공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상품설명서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20분 정도면 충분할 새로운 그것으로 대체했다. 회사는 내가 개발한 상품설명서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리고 나는 동료들과 함께 그 자료를 가지고 롤플레이를 실시했다. 자료는 동료들 덕분에 더욱 완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