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고등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친구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장성한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지금은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데 노후 대비를 탄탄히 했고, 다달이 연금까지 나와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한다.
이 친구는 오래전부터 극우 유튜브에 빠져 밤이나 낮이나 매달려 있다 한다.
그 여파로 세뇌되어 친구들을 만나면 말이 안 되는 정보를 쏟아내고 누군가가 반박하면 귀 기울이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말만 옳다고 주장 한 단다. 게다가 극우 집회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한단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어이없어 “아니 그 ㅇㅇ는 왜 그렇게 사냐! 유튜브에 취미, 여행프로, 문화, 역사, 오락 같은 볼거리가 무진무궁한데, 하필 시답지 않은 것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냐. 그 시간에 영화나 음악 감상을 하는 게 한결 낫겠다. 한심하고 멍청한 ㅇㅇ…”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전화를 건 친구는 놀랜 목소리로 “야! 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너도 욕하냐? 너 원래 욕 안 했잖아, ”했다.
돌이켜 보면 친구의 말마따나 욕을 했던 기억이 없다.
교직 생활을 할 때 지독한 말썽쟁이에게 “어라 이 자식 좀 봐! 이 맹랑한 놈 이거 순 엉터리네, 야 인마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었지만. 쌍시옷 들어가는 욕은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욕하는 건 유일하게 운전을 할 때이다. 누군가가 차선을 갑자기 바꿔 내 앞에 끼어들면 화들짝 놀랜 마음을 전정하지 못하고 욕을 한다.
“저 저 ㅇㅇ 왜 저래?! 망할 놈의 ㅇㅇ, 사고 내려고 작정을 했나. 염병할 ㅇ. 육시랄 ㅇ.”
하지만 그것은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 하는 욕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소문난 욕쟁이 할머니 이상으로 욕을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70년대 중반, 군대는 거친 말과 욕설, 구타가 난무했다.
“대가리 박아 이 x 만 한 ㅇㅇ야”
“허어 이 ㅇㅇ 눈깔 굴리는 소리 들어봐! 눈깔 깔아 이 쌍ㅇ의 ㅇㅇ야.”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와 이 x 새야”
고참들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졸병에게 욕을 하고 구타를 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심풀이고 일탈이었다.
졸병 때는 쥐 죽은 듯 숨죽여 지내다가도 나중에 고참이 되면 무서운 호랑이로 돌변하여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지난날 받았던 수모와 고통을 몇 배를 되갚겠다는 결의에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군생활을 하는 동안 후임병들에게 한 번도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폭력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였다.
나보다 군 입대가 늦어 후임병이 되었지만 같이 고생하는 처지이고 그들도 부모에겐 금쪽같은 자식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동생이고, 형이고 오빠, 삼촌이고, 애인이었다. 결혼을 빨리했으면 누군가의 남편이기도 했다.
내가 전역을 할 때 후임병으로부터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인간적으로 대해줘서 고마웠다. 친형같이 의지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특수집단인 군대를 제외하고 학교나 직장, 사회, 가정에서 욕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따라서 불쾌감을 느끼거나 얼굴 찌푸릴 일이 없었다.
욕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일상화된 SNS에서 수위 높은 욕설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거친 언어나 욕설을 여과 없이 노출되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 컸다.
길을 걷다 보면 학생들의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가장 순화된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학생들의 입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심한 욕설을 거침업이 쏟아낸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면 욕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
직장이라고 욕이 없는 청정 지역은 아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이것도 못해 이 등신 ㅇㅇ야” “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병신 ㅇㅇ야” “싹수없는 ㅇㅇ” ….. 심지어는 “가정교육이 형편없어 인성에 문제가 있는 ㅇㅇ”라는 부모까지 싸잡아 욕하는 일도 있다
이로 인해 욕을 먹는 당사자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다가 끝내는 사퇴를 하는 일까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배운이나 못 배운 이나, 부자나 가난하거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욕을 입에 달고 산다. 하기야 국가를 대표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도 욕설로 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까지 망신을 톡톡히 당한 일도 있었다.
욕은 전파력이 강한 전염병 같다. 욕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왔고, 심지어는 욕의 소굴이었던 군대에서도 묵묵히 견뎌냈던 나도 끝내는 감염되고 말았다. 몇 해전부터 이 ㅇㅇ, 저 ㅇㅇ 사용하기 시작한 욕이 이제는 수위가 높아져 상스러운 욕까지 확대되었다.
욕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욕은 듣는 것만으로도 혼탁한 강물을 보는 것 같고, 해충들로 뒤덮은 나무를 보는 것처럼 불쾌하고 찜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을 듣는 당사자의 마음은 지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욕을 하고 있을까?!
습관화되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욕, 사용할수록 윤리의식이 무감각 해지는 욕, 자신의 인격과 교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욕, 이제는 자제해야 하겠다. 아니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