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아 May 30. 2024

2. 살바도르 달리라고, 그럴 리가

  일주일 전이었다. 오드리 헵번이 나를 괴롭혔다. 겨우 벗어나니 살바도르 달리가 기다리고 있다. 무슨 말일까? 인물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 보는 눈도 없고 손재주도 없는데, 연필화를 그린다고 수강했다. 

 

  인물화란 그 사람의 모습하고 똑같아야 했다. 미세한 차이 즉 0.5밀리라도 틀리면 달라진다고 늘 강조하는 선생님 말씀을 두고 실랑이했다. 

  

  처음 시작은 신난다는 말이 맞는다.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도 있지만, 그걸 이기는 흥분이 깔린다. 또 결심도 했다. 그동안 수많은 것을 하고 때려치우고 했으니, 이번만은 끝까지 해서 그동안 받은 가벼운 멸시를 이겨내야 했다. 

  또 뭘 한다고, 얼마나 하겠어. 끈기가 없잖아.

  가끔 들은 말이었다. 

  

  정물을 그릴 때만 해도 장미나 나리꽃을 비슷하게 그렸다. 일종의 간을 봤다고 해야 하나, 본격적으로 인물을 그리기 시작한 게 오드리 헵번이었다. 특징이 잘 나타나는 얼굴인데, 그림을 그릴수록 어려웠다. 눈이 살짝 달랐다. 턱이 문제였다. 아무리 그려도 같은 턱이 나오지 않았다. 지우개가 스케치북을 누빌수록 더 다른 얼굴이 됐다.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그만둘까 고민했다. 그럴수록 묘한 승부욕이 생겼다. 그림에 승부욕이라니 웃긴 일이다. 무슨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의욕이 지나쳤다. 머릿속에 헵번의 사진 생각만 가득했다. 복잡한 것은 아닌데 한 가지 생각도 머릿속을 어지럽힌다는 것을 알았다. 의욕이 넘쳐 다른 것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손을 놓게 했다. 헵번을 어떻게 똑같이 그릴까. 그 생각에 테이블엔 지우개 가루가 뒹굴었다. 늘어놓은 소품으로 컵 하나 놓을 데가 없다. 설거지는 다음으로 미뤘다. 머리카락은 발로 밀어냈다. 그 결과 비슷하게 그려졌다. 같은 듯 다른 그림에 선생님이 몇 번인가 터치했다. 눈이며 턱을 싹싹 건드리자 오드리 헵번이 됐다. 

  

  이젠 살바도르 달리다. 얼굴의 특징이 살아있다. 인위적인 수염이며 눈이 독특했다. 얼굴이 드러나되 한쪽 면이 삼십 프로만 보였다. 선이 살아있는 얼굴로 개성이 뚜렷했다. 그림의 중심점을 잡고 그리기 시작했다. 한 점으로 시작하는 그림은 간격 싸움이다. 시작점은 수염이다.  짐작으로 눈의 위치를 정했다.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포인트는 돌출된 눈의 형태다. 여기서도 이해는 필수다. 자칫 형태 싸움이라고 말했다. 간격이 정확해야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면 안 됐다. 자를 대고 그리는 편이 나을 정도다. 수학적 도형도 필요했다. 삼각형이 주로 쓰였다. 삼각형은 공간을 인지하는데 중요했다. 원본과 대조해서 공간이 다른 삼각형이면 잘못된 거다. 수평과 수직과 사선이 난무하는 그림은 예술이기 이전에 수학이었다.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배운 원근법이 나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을 보며 원근법에 감탄했다. 새삼 보이지 않는 선의 중심과 균형에서 나타난 정교함을 알았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은 형태 잡는 것부터 빨랐다. 선 하나에 쩔쩔매고 있을 때 옆 사람은 저만큼 진도가 나갔다. 눈을 뚝딱 그리고 얼굴선의 형태를 만들었다. 신중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느렸다. 4B 연필은 처음 잡은 게 얼마 만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쪽도 아니었다. 주변인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나도 도전해 본 것이었다.

  

  연필이 좋은 점이 공간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 말고 집에서 그리기가 무엇보다 좋았다. 오드리 헵번 때보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지우고 또 지웠다. 살바도르는 내 부족한 실력 탓에 다른 사람이 되길 반복했다. 어느 정도 그려서 딸에게 보여주니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했다. 부족한 실력을 탓하기 전에 딸의 눈이 잘못됐다고 우겼다. 그림도 못 그리며 성품까지 나빠지는 날 보며 딸은 더 이상 그림을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어때 똑같지."

  "아니 전혀."

  다시 잘 보라는 말에 전혀 다르다고 강하게 말했다. 다시, 다시 반복이 길어지자. 스케치북은 까맣게 됐다. 손도 까맣다. 

  "지금은 어때, 같아?"

  "이 사람이 누구라고?"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라고 설마 그럴 리가." 

  인물화는 누가 봐도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야 완성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누구를 그린 걸까? 살바도르 달리는 살바도르 달라가 되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1.된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