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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30. 2023

[21화] 나의 학대자에게 (feat. 자기수용)

이해받지 못한 마음

그들은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보호받지도 못하고
타고난 권리조차 지켜주지 못했고
그래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 텐가
<HOT, 아이야 가사 中>




“쓸데 없는 이야기 하지 마” (거부)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 이거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빨리빨리 못해?" (압박)

"너 그러고 가만히 있을 거야?! 당장 저 사람에게 가서 이것저것 하란 말이야!" (강요)

"처음부터 실수 없이 좀 잘했으면 이런 일 벌어지지 않잖아." (비난)

"너 멍청이야? 네가 그러니까 무시당하지. 그러고도 OOO 자격이 있냐? OOO처럼 되란 말이야." (비교)

"니까짓 거 이걸 챙겨서 뭐 해. 다 이유가 있으니까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통제)

"너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거 이미 알고 있어. 다 티 나고 유치해." (조롱)

"네가 먼저 성과를 가져와서 나를 설득해 봐. 그래야 내가 너를 인정해 주지." (불신)


20대에 언제나 무기력했던 저의 뒤에는 죽음의 메아리가 들렸습니다. 압박, 강요, 비난, 비교, 통제, 조롱, 불신의 언어는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저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어렸던 저는 갑작스러운 우레와 같은 호통에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불안을 느꼈고,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엄마는 약자인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보호하지 않고 강자의 편에 서는구나. 약자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아도 강자가 폭력을 행사하면 보호받지 못하는구나. 나조차도 어린 약자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벌벌 떨고 있구나." 옳고 그른 게 뭔지 아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아무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약자로써의 무력감과 동시에 강자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 후로 저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 내렸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고 비겁한 나', '생존을 위해 조용히 있어야 하는 나'


부모님의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제 마음속에 저장되어 리플레이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직장인이 되어서도 학대적인 직장상사를 주기적으로 만났습니다. 어려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인생이 왜 이리 고달픈지요. 저는 언제나 누군가의 등쌀에 못 이겨 뭐든지 목적의식 없이 성급한 완벽주의식으로 일을 처리했고, 타인의 요구사항에 수용하지 못한 채 방어하기 급급했고, 희생적으로 일을 하면서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고, 저의 적개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제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웃으며 칭찬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린 장발장의 삶


왜 저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부모님의 '삶의 문제해결방식'에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별일이 아닌 작은 사안에 대해 언제나 시비분별에 노발대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저를 묵사발을 만들어서 머리를 조아리게 해야 문제가 종결되었지요. 저는 실수하고 잘못을 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강박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저를 강력하게 죄인으로 낙인을 찍으셨습니다. 이해와 조정이란 없었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빵 하나 훔친 자 장발장이 강제노역을 19년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죠. 그리고 부모님은 인간관계문제에서 한번 얼굴 붉힐 일이 발생하면 해결보다 끝까지 척을 지고 외면하셨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았습니다.


한 번의 실수나 문제가 생기면 모든 문제가 배드엔딩(Bad Ending)과 절망적 감정으로만 끝나버린 걸 경험한 저는 '내가 한번 잘못하면 부모님이 나를 외면하는구나'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겨서 실수를 하면 완전히 끝장이 나는 것이고,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오로지 한 가지였습니다. "무조건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해야 해" 이 마음은 우월함에 집착하는 욕망이 됩니다. 뒤쳐지는 기분은 조금도 허용하지 못하죠.


학대자적인 태도는 학습할 때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실수를 수습하면서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밟아나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결과만능주의로 모든 일을 대합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죠. 작은 실수와 뒤쳐지는 기분에 대한 내성이 없기에 쉽게 낙담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조언은 나의 실패를 부추기는 방해꾼 정도로 여깁니다. 하지만 어른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실패로 인한 열등감을 느끼기 싫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변명하기 급급하죠. 한편으로 제 성공을 인정받기 위해 단기적인 헌신을 쏟아부은 후 결과에 대한 칭찬만 듣고 싶어 합니다. 시야는 근시안적이게 되고 행동은 성급하게 되죠.



때론 도망치게 해 달라며 기도했어. But 너의 상처는 나의 상처
깨달았을 때 나 다짐했던 걸 니가 준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이 아닌 너에게로 Let me fly
<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中>



어렸을 적 저희 아빠는 자기혐오에 의한 자식학대, 엄마는 유기불안에 의한 통제와 집착, 언니는 열등감에 의한 비난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세 사람에게 학대당하고 집착당하고 무시당하면서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괴로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서 더 괴롭기도 했습니다. 힘든 내가 잘못된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만 가득했을 뿐입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삼엄하고 싸늘한 기분. 제가 마음이 아프다고 해도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아픔이 모두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이었기에...


그래서 저도 제 아픔을 배반하고 학대하고 외면했습니다. 제 마음을 외면한 순간 내면의 학대자는 언제나 24시간 저를 부모님과 언니보다 더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저를 더 잘 아니까 비난할 논리와 이유도 무수히 다양했겠죠. 자기혐오는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증식되어 저를 잠식해 나갔고, 저는 어렸을 적 부모님 앞에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면의 학대자에게 아무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정일기를 쓴 지 언 2년, 저는 항상 내면의 학대자의 논리적인 비난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면의 학대자가 밑도 끝도 없이 저를 괴롭힌다는 걸 간파했습니다. 즉시, 제 안에서 엄청난 광기의 분노가 터져 나왔습니다.


"제발 그만해!!!!!!!!!!!!!!!!!!!!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 네가 지금 나에게 이러는 거 학대야!"


내면의 학대자를 향한 저의 마지막 대응은 협상도 이해도 설득도 아닌 '광기의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목소리는 허공에 있는 부모님을 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학대로부터 저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 부모님의 편에 서서 저를 학대하고 있었죠. 저희 엄마와 똑같이 강자의 편에 서서요. 그때 제가 화내지 못한 약자로써의 무력감은 일상의 무기력으로 남아있었고, '두려움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고 비겁한 나', '생존을 위해 조용히 있어야 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분노를 쏟고 나니 제가 저를 지켜낸 묘한 뿌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리고 어렸을 적 저를 함부로 취급했던 가족들에게 문제가 있었지, 막무가내로 당했던 저에게 아무 문제없었다는 게 완전히 인정이 되더군요. 그리고 당시 가족들의 상태가 예측이 되었습니다. 그들 또한 자신의 부모님(조부모님)께 향하는 분노를 나이가 어린 저에게 조그만 잘못을 트집 잡아 마구 쏟아부었고, 실시간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방치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처와 학대는 대물림이 되나 봅니다. 제가 자녀가 있었다면 분명히 부모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녀를 대했겠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요.


가족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나니 당시 어렸던 제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납득이 되더군요. 당시 저는 제 영역을 지키는 게 뭔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고, 뭐가 적절한 대응이 뭔지 몰랐기에 가만히 참고 있었습니다. 이미 학대자의 마음으로 물들어버린 그들과 싸웠다면 진흙탕 싸움이 될게 뻔했겠죠. 부모님과 언니는 당장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현명하지 못한 분노를 저에게 쏟아냈고, 그 결과 스스로를 내면의 학대자로부터 지켜내는데 실패했겠죠. 현재까지도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 모른 채 편안하지 못한 마음의 어느 공간에서 서성이고 있을 겁니다. 참 안쓰럽더군요. 그렇게 저는 제 마음속의 가족을 연민하고 용서하고 떠나보내 주었습니다.

 

결국, 제 분노는 정확히 옳았고, 때로는 참는 마음이 현명하며, 저는 저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학대자에게 오랫동안 시달렸을 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군요.

"한 사람의 진짜 능력은 실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해결하는 능력에 달려있어. 처음부터 실수를 안 하겠다고 불안에 떨기보다 실수를 예측하고 뒷수습하는 여러 답지를 대비해 놓으면서 불안을 해소하는 게 현명해. 그리고 선생님의 조언은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 후, 이것저것 스스로 실행해 보면서 내 것으로 통합을 해나가고, 나에게 도저히 안 맞는 건 흘려버릴 줄도 알아야 하고, 뒤쳐지는 기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그다음 성취로 도약할 수 있어. 무엇보다 인생을 과정으로 바라보는 현명할 거야. 그리고 그동안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무지하고 겁 많았던 나를 용서해다오. 다시는 널 외면하지 않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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