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까지
나는 책을 거의 안읽는 사람이였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여기저기에서 항상 들어왔기 때문에 제목이 마음에 드는 베스트셀러 책을 사서 몇 번 보다가 결국 대부분 끝까지 못읽고 그만둔 적이 많았다.
작년말부터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30초에 사회가 준 숙제 대학가기, 취업하여 안정적인 직장 가지기, 결혼하기까지 마친 상태에서
다음 목표를 물색하던 나는 '부를 쌓는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모두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자기계발서나 부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진짜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다음 인생 목표가 없는 상황이 어색하고 불안하여
내가 달려나갈 수 있는 목표로 부를 설정했던 것 같다.
(한창 재테크에 관심이 많던 분위기도 한 몫했다.)
자기계발서나 성공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점차 심리학, 철학, 뇌과학, 예술 등 관심 분야가 넓어졌다.
특히 니체 철학에 관한 책을 한권 읽고 크게 감명받아 "타자화된 욕망"과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꽃히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부터 나의 30대 사춘기가 시작된다.
사실 나는 사춘기가 없었다.
학창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인 8년차가 될 때까지
사회가, 부모님께서 원하는대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과 크게 싸운 적도 없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고, 대학생 때는 취업준비를 열심히 해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내가 맡은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였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여 적당한 시기에 결혼했다.
여기까지 마친 나의 다음 목표는 부를 쌓아서 대한민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였다.
이 시기즈음, 객관적으로 부족하지 않음에도 내 미래 목표와 현재를 비교하여 내 현재 조건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졌고,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에게 열등감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괴로움 극복을 위해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을 책에서 찾으려던 나에게 니체의 철학에 대한 책은 큰 충격과 동시에 위안으로 다가왔다.
책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한 타자화된 욕망을 거부하고, 내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항상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살고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이러한 책의 내용은 꽤 충격으로 다가왔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나는 주체성이 없이 남의 욕망에 맞추어만 살아온 것 같아 불쌍하다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는 내 삶의 목표에서 타인의 영향을 배제하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 SNS도 자연스럽게 끊게 되었는데, 이 부분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허영심과 우월의식을 극복하고 스스로 이러한 마음을 먹은 것이 대견하다고 느껴졌고,
(몇 권 읽지도 않았으면서)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해!"같은 중2병스러운 생각도 조금 들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한 기분 좋음이 지나간 후,
처음으로 인생 목표 부재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크게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나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는데,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려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를 제거하고 나니,
내 스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인생 처음으로 명확한 다음 목표를 잃른 나는 무기력과 우울증을 겪었다.
남들이 원하는대로 살지 않겠다고 멋지게 선언한 후,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기 못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다는 사실과 함께
그동안 욕망하던 더 좋은 집, 더 좋은 물건에도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고,
어떤 목표를 생각해보든 남들의 인정을 걷어내고 생각해보니 예전처럼 더이상 설레이지 않았다.
어떻게 스스로 원하는 삶을 모르는지에 대한 자괴감과 함께
심지어 남편한테 "다음 샤넬백은 무엇을 살지 고민할 때가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아" 라는 얘기까지 했으니 나름대로 꽤나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목표와 동력을 잃고, 삶이 더 우울해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으로 인해 이러한 우울한 상태에 빠진 나를 구제해준 것도 책이다.
최근 읽었던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에는 이래와 같은 구절을 보고 너무 위안이 돼서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의 유전자는 부득불 탐욕스러워지고 남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힘을 갈망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목표의 대부분은 유전과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타성에 젖은 목표를 근정한다는 역설적 목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정신력을 24시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이루기 벅찬 과업이다..(중략)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거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타성에 젖지 않은 내 스스로 세운 목표를 갖는 것은 요가 수행자나 승려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남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목표를 주체적으로 갖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근 읽은 조던피터슨의 "Beyond Order"에서도 "누구도 홀로 살지 않고, 살 수도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방식으로 그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삶의 의미는 현재 자신이 속한 계층가 위치에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목표를 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니체에 대한 책을 '1권만 읽고' 사회가 세운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과거의 나의 모습을 잘못됐다고 섣불리 판단했다.
사실 과거의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최선의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설령 그것이 타성에 젖은 목표였을지 몰라도.
물론 주체성을 완전하게 잃고 타성에 젖은 목표만을 추구하는 삶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삶은 열심히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는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항상 불만족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현명하고 뛰어난 두 심리학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사람에게 완전하게 타인의 욕망을 걷어낸 자신만의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타인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욕망과 목표 중
"그나마" 내 스스로 가장 달성하고 싶다고 느껴니는 목표를 찾아서 그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며 성장하는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현재 내가 느끼는 깨달음도 새로운 책과 지식으로 인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을수록 느끼는 것은 아쉽게도 세상을 더 많이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이다.
1권만 읽었을 때는 내가 책을 안읽은 사람보다 무언가 훨씬 많이 안 것 같다고 느꼈다.
읽을수록 그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시각이며,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을 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지 알게되어 글을 쓰는 것도 오히려 자신감이 없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 알게된 사실 속에서도 내가 모르는 것을 또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이전 버전의 나에서 새로운 버전의 나로 업데이트 되는 과정이 나쁘지만은 않다.
앞으로도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알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