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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성 인격장애(2)

내가 만났던 환자 나르시시스트

by 경조울

얼마 전에 의사 같은 전문직 중에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글을 썼다. 사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대학 교수라는 자리에 크게 미련이 없다면 더 이상 나르시시스트와 도제식 상하관계에 놓이지 않기 때문에 일할 때 크게 괴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 환자나 보호자 중에도 나르시시스트가 숨어 있는데(그들은 정말 어디에나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맞닥뜨릴 때 굉장히 괴로웠다. 그들의 특징은:


1. 교수에게는 매우 공손하나 그 외 모든 의료진에게 무례하다.

그들은 교수 정도는 되어야 본인과 급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회진을 돌러 오는 교수님 앞에서는 한 마리의 순한 양 같이 굴지만, 그밖에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 등에게는 몹시 무례하다. 반말은 기본이고, 민원제기와 투서를 몹시 즐긴다. 교수와 '동급'인 본인을 교수의 '수하들'이 마치 교수에게 하듯이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폭언,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2. 특별 대우를 바란다.

다인실에 입원해 있어도, 나르시시스트는 항상 특별 대우를 바란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창가 자리는 무조건 본인이 차지해야 하며, 병동의 주치의는 가장 먼저 본인을 보러 오거나 혹은 본인에게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아침에 출근했으면 응당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와야지!'

라는 말을 인턴 때 직접 듣기도 했다.


3. 다른 환자에게 밀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병원은 일찍 온 순서대로 진료받는 것이 아니며, 상태의 위중도에 따라 얼마든지 진료 순서가 바뀔 수 있다. 당연히 의료진의 관심도 더 많이 아픈 환자에게 향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상황을 가리지 않고 본인이 항상 1순위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가 본인보다 의료진의 관심을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회진 중에 본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다른 환자가 쓰러졌다는 이야기에 뛰어갔다고 화를 내거나, 바로 옆에서 다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와중에도 물을 가져가 달라거나, 본인이 그 광경을 지켜보느라 매우 놀랐으니 진정제를 달라는 둥 상식을 벗어나는, 사이코패스 같은 요구를 버젓이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 보호자 나르시시스트를 맞닥뜨려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가장 좋은 대응방법은 바로 '무대응'이다. 처음엔 젊은 혈기에 같이 싸워도 봤지만, 그들의 표적이 되는 순간 인생이 몹시 피곤해진다. 그들은 한 번 문 먹잇감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 다른 환자, 보호자에게 험담을 늘어놔 환자-의사 관계를 망치고, 같이 일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동료들도 괴롭히고, 나의 상급자에게 구구절절하게 민원을 넣어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먹잇감을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며, 그들의 언행에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의사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이기에 화가 날 때가 많고, 그래서 유독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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