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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증에 대한 그리움

나는 자연인이다

by 경조울

날이 추워졌다. 어김없이 살짝 우울해졌다. 쉽게 피곤하고, 푹 쉬어도 회복이 잘 되지 않으며, 입맛이 줄고 식이량이 줄었다. 그리고 두통이 더 잦아졌다. 그래도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나의 2형 양극성장애는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 날이 추워지면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우울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병적인 수준인지 아닌지 잘 안다.


양극성 장애를 받아들이고 관리하면서, 우울 삽화와 자살 충동이 사라졌다. 요즘처럼 우울한 경향을 보일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진다.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두 마리 괴물이 사라졌으니, 다행이다.


우울 삽화와 자살 충동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경조증도 없어졌다. 경조증 삽화가 찾아오지 않은지도 몇 년이 흘렀다. 날씨가 풀리면 늘 반가운 손님처럼 나를 찾았는데. (그래서 봄에 그렇게 '바보 짓'을 많이 벌리곤 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밥을 먹지 않아도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발랄하고, 사회성이 좋아지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신나는 계획를 세우며 어린 아이처럼 들떠있던 시절이 언제였더라, 너무 오래되어서 이젠 마치 전생처럼 희미하다.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에 대한 서평이 아직도 간간히 올라온다. 가장 많은 이야기는 '내 일기를 읽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였고, 그중에서도 '경조증이 그립다'는 문장이 자주 보인다. 2형 양극성장애와 경조증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好時節)에 대한 그리움. 요즘 살짝 우울한 상태라 더 그런가 보다.


가끔은 2형 양극성장애를 관리하면서 사는 지금의 내가, 휘황찬란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산 속에 살고 있는 자연인 같다는 생각을 한다. 번잡스럽거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 또 그런 사건이 발생하리라는 기대나 우려도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생이란 애초에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을 통째로 흔들만한 변수가 갑자기 생기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평화롭고 정서적으로는 건강한 삶이지만, 그래도 '도시 속 화려함'에 대한 그리움이 불현듯 피어오르곤 한다.


오늘은 남편과 된장찌개를 끓여 제육볶음과 먹었다. 거실에는 일찌감치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인다. 글을 적고 보니, 또 그렇게 우울한 건 아니구나,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울적한 마음도, 경조증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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