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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했다

음주에 대한 변명

by 경조울

취했다. 잠이 안 온다는 핑계로, 잠든 남편을 뒤로 하고 홀로 그의 양주를 마셨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술을 안 마시는 게 좋다. 기본적으로 물질사용장애에 취약한데다 음주는 기분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특히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환자로서 직접 겪었기 때문에, 빌어먹을 너무 잘 안다. 나는 양극성 장애+물질사용 장애 콤보를 겪었다. 한창 증상이 심할 때 경조증이 심하든, 우울이 심하든 항상 술을 마셨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수면제를 남용했다. 호흡 억제가 안 온 게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우울할 때 취하면 항상,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죽고 싶었다. 매우 강렬하게 손목을 그어 버리고 싶었다.

양극성 장애를 인정하고 관리를 시작했을 무렵 주치의는 증상 조절을 위해 술을 끊을 것을 권했고, 실제로 나는 꽤 오랜 기간 술을 끊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일종의 변명이다. 술에 취해서 쓰는.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 끊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선언이다. 고기능 양극성 장애 환자라고 말했듯, 나는 고기능 물질사용장애 환자이다. 알코올에 대해서 심리적 의존성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증상이 심해질 것 같으면 주변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 의식을 갖고 제동을 걸며 단기간 금주 등의 조절은 한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조절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혹은 그렇다고 믿지만) 나는 영원히 술을 끊을 수 없다, 아니, 끊을 생각은 없다.


책에도 이미 적었지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술과 관련된 두 가지를 좋아한다. 하나,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둘, 술에 취했을 때의 알코올 유발성 탈억제. 외로움에 취약한 나는, 술자리를 핑계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 좋다. 결혼한 뒤 확고한 정서적 안정을 얻었지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는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 굉장히 다르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나의 직업적 특성은, 같은 직업이 아니면 공감하기 매우 어렵다. 의사들이 느끼는 특유의 부담, 괴로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의식은 나와 같은 면허를 공유하는 사람으로부터 훨씬 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감을 받을 수 있다. 의사가 아니면서 나의 괴로움과 고통에 100% 공감해 주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남편에 대한 나의 애정, 그리고 존중과는 굉장히 별개의 것이다. 그들의 눈빛, 가끔은 말없이 주억이는 고갯짓으로부터 나는 위로를, 깊은 공감을 얻는다. 가끔은 서로의 영혼이 찰나로 연결되었다고 느낄만큼. 인간의 외로움은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각적이지만, 가끔 딱 한 명만 특정한 감정에 공감해주어도 쉽게 사그라진다.

공감만큼이나 알코올 유발성 탈억제도 중요하다. 평소 원하는 바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몹시 어려운 나같은 인간에게는 취기를 빌려서라도,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기회가 절실하다. 나는 바보라, 멍청이라, 아무리 많은 심리 상담, 정신 분석,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도, 알코올이 유발한 탈억제를 통한 자아직면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 비겁한 변명이든, 위선적 변명이든, 지금까지는 그랬다. 딱 그 한 잔, 두 잔을 통한 흐트러짐, 그것만큼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없다. 인정하기 두렵지만, 돌팔매질을 당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몹시 소중하다.


술은 앞으로도 끊지 않을 것이다. 끊을 의지가 없다. 그럭저럭 조절하고 있고, 앞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일단 지금은 취하더라도 자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마시며, 수면제는 먹지 않는다. 누구나 친구를 만나서 기분 좋게 두세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아니, 괜찮다. 굳이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의사라는, 혹은 2형 양극성 장애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다며 철저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오늘 저녁에 마신 술이 내일 아침 진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절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마신다면 술을 안 마실 이유도 없고, 술을 마시겠다는 스스로의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잖는가. 지키지 못할, 않을 약속을 스스로에게 할 생각도 없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면, 혹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편이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겠으나, 이미 시간은 새벽 4시를 향해가고, 술기운을 빌어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며, 특히 정신 질환을 안고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환자로서는, 혹은 보호자로서는 나를 피하고 싶다면, 신뢰할 수 없다면, 그리고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그럴 수도 있지. 씁쓸하게 인정하겠다. 나라도 그럴테니까.

자야겠다. 말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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