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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 Mar 16. 2024

안경잡이와 아웃사이더

“자, 지금 모두 자기 짐 정리해서 교실 뒤쪽으로 가방 들고 이동~!”


4학년이 이제 막 된 봄날 어느 아침, 담임선생님의 난데없는 주문이 교실에 울려 퍼진다.

교실 안은 곧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와 책걸상을 미는 소리로 분주하고 어수선해진다.


손이 빠른 몇몇 아이들은 벌써 교실 뒤에 우두커니 서있기 시작했고, 일부 조숙했던 소녀들은 무슨 눈치라도 챈 것인지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연신 킥킥 웃어댔다.


교실 창으로는 3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고, 아이들의 움직임으로 교실 가득히 일어난 먼지들이 요란하게 반짝거리며, 필요이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교실 안은 묘한 긴장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웅성웅성.. 찌익찌익..


한동안 이런 소리로 시끄러웠던 교실은 곧 조용해지고,  40명 남짓의 반 아이들은 교실 뒤편에 비좁게 서 있었다.


20대의 발랄한 담임선생님의 얼굴 위로 아이 같은 짓궂은 장난기가 언뜻 스쳐간다.

그리고 금세 그 얼굴에 어른 같은 미소가 번지더니 교실 뒤편을 꽉 채운 아이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키가 훤칠히 크고 체격도 좋아서 행동거지가 시원시원했던 그 선생님은 의외로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라 나는 늘 저 몸 안에 누가 들어가서 조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자, 그럼 이제 1학기 첫 번째 짝을 정해볼까? 먼저, 남학생들은 앞으로 와서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아. 남자들끼리는 짝이 안되니까 책상 하나에 한 명씩 앉는 거야. 알았지? 자, 어서 움직여야지~!”


짐을 쌀 때보다 더 큰 웅성거림이 교실 뒤편에서 일어난다.

남자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킥킥거리기도 하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쭈빗쭈빗 앞으로 서서히 이동을 한다.

뒤에 남은 여자아이들은 얼굴에는 설렘과 난처함 수줍음 등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은근히 마음이 쓰였던 아이가 있었는데, 흰 피부에 햇빛을 받은 머릿결의 윤기가 근사한.. 차분하지만 말을 할 때는 재밌고 조리 있게 잘하고, 무엇보다 친구들을 잘 챙겨주는 의젓한 면이 있어 인기가 좋은 안경잡이 녀석이었다.


물론 같은 반이 된 날부터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지나가다가 어깨로 밀치고, 책상에 벌레를 던지기도 하는 아주 지긋지긋한 녀석도 있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그 녀석이 널 좋아하는 거 아니냐며 자주 놀려대고 있어.. 나는 내심 절대 그 녀석 옆자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자리선택에 큰 고민이 있을 리가 없는 남자아이들의 대이동은 곧 정리가 되었고, 교실은 또다시 풋풋한정적에 감싸였다.


오로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 햇살을 받은 교실 가득한 먼지만이 요란하게 지치지도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구상한 이 장난스러운 자리배치 이벤트가 만족스러웠는지 한껏 상기된 담임선생님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좀 더 갈라지고 떨린다.


“자, 그럼 이제 여학생들의 마음을 한 번 볼까? 그 사이에 누구를 좋아하게 됐는지 말이야. 하하. 여학생들은 지금부터 마음에 드는 남학생 옆에 앉아. 그 남학생과 이제부터 짝이 되는 거니까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다면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자, 이동!”


여자 아이들의 옅은 한숨과 소심한 아유가 잠시 터져 나온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거나 내성적인 여자아이 몇몇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기세다.


나는 안경잡이에게 가고 싶다.

가방끈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발을 떼어보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하는 것 같은 이 상황에 주저하게 된다.


다시 발을 떼려고 하지만, 역시 안 되겠다. 이건 11살 소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무심한 그 녀석의 뒤통수를 계속 쳐다만 보고 있다.


이윽고, 조숙한 여자아이들의 무리에서 ‘후훗’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네댓의 여자아이들이 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이 요망한 소녀들은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고, 옷에서 늘 피죤냄새가 나며, 말주변도 좋아 인기가 많은 남자아이들 자리에 하나씩 하나씩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앉는다.


교실에서 동시에 ‘와아’하는 탄성이 나오고, 조숙한 소녀 중 하나가 뒤를 보며 야무지게 한마디 붙인다.


“우린 공부하려고 자리를 선택한 거야. 그렇지?”라며  옆 책상에 앉은 다른 동지에게 작전성공의 미소와 함께 동의를 구한다. 일제히 그 얄미운 무리들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만족한 듯 그 아이는 미소를 짓더니 훽 돌아서 앞을 보며 바로 앉는다.


‘재수 없는 것들’

난 그때도 저 조숙한 소녀 떼들과 참 맞지 않았다.


안경잡이도 조숙한 한 소녀의 짝이 되어버렸다. 비통한 마음이 가득 차고 분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이젠 짝 따위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단 마음이 든다. 안경잡이는 이제부터 잊어주겠다는 실연의 다짐도 그 사이에 해둔다.


아차! 아니지.. 짝 따위가 상관없는 건 아니다. 내게는 절대 짝을 할 수 없는 한 녀석이 남아있지 않던가.


그제야 그 지긋지긋한 녀석이 어디 있는지 살펴본다.

맙소사.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눈이 마주치자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이 번지더니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안 되지.. 절대 안되지. 저런 유치하고 지긋지긋한 녀석과 절대 짝을 할 수가 없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11살이 될 위기에 처한 나는.. 빠르게 대안을 탐색한다.


고민하는 사이에 벌써 자리의 3분의 2가 차버렸다.

남은 대안은 모두 탐탁지 않다. 그러나 그 어떤 대안도 그 지긋지긋한 녀석보단 나았다.


그때 맨 뒷자리에 있던 아웃사이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또래보다 10센티정도 키가 크고 준수하게 생겼지만, 외모와 다르게 거칠고 싸움도 자주 하는 아이였다.

당연히 공부는 잘 할리가 없었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에서 호신술 따위를 자기보다 작은 아이에게 시범을 보이며 큭큭 웃어대고, 조숙한 소녀 떼들에게는 가끔 응큼한 웃음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홍콩배우처럼 훤칠하고 시원한 아웃사이더의 외모에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저런 날라리와 짝이 되는 건 역시 뭔가 찝찝하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쟤는 아니지.'

나는 다시 빈자리들을 탐색해 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지긋지긋한 녀석이랑 또다시 눈이 마주치고, 그 녀석은 뭔가 기대하는 눈빛을 내게 보낸다.


순간 나는 그 눈빛에 11살 다운 심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심술은 내게 뜻밖의 과감성과 용기가 나도록 했고, 나는 그 아웃사이더의 옆 자리에 가방부터 슬며시 던져놓고 천천히 걸어가 자리에 앉는다.


나의 선택이 너무 의외였을까, 교실에서의 작은 탄성이 다시 한번 터졌고, 선생님은 치아가 다 보이도록 크고 호쾌하게 웃었다.


아웃사이더는 무심한 척,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다.

나도 네가 좋거나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겠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으로 눈을 내리깐다.


그 와중에 부지런하게도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은 그 지긋지긋한 녀석의 실망이 깃든 뒤통수를 흘깃 바라보며 그동안 그 녀석의 유치한 장난질에 대한 나의 시의적절한 복수에 통쾌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게 봄날 11살 소년소녀에 싱그런 설렘이 가득했던 그 아침.. 그 선택으로 나는 인생최대의 쓴맛을 곧 보게 될 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선 그날의 선택 이후 좋아진 점은, 그 지긋지긋한 녀석은 더 이상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도 않았고 뭔가를 내게 던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의 뒤를 기를 쓰고 쫓아가 기어이 한 대를 옴팡지게 때리는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 만에 타락 일로를 걸으며 문제아가 되었다.

이 아웃사이더 녀석은 수업 시간에 라면, 과자 등을 수시로 대범하게 뜯어서 먹었으며, 그것을 같이 먹기를 내게 강요했다.

노트필기를 할 때면 옆에서 연필을 툭 치거나 노트를 갑자기 확 빼는 등의 장난으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가 싸우게 되면 여지없이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교실 뒤로 그 녀석과 함께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활발한 모범생에 가깝던 당시의 나는 점차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 중에 간식을 먹고, 그 녀석과 게임을 하며,  쉬는 시간에 그 녀석과 투닥거리며 싸우기를 반복하는 껄렁거리는 왈패가 돼가고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그 녀석에게 물들어가던 어느 날 그날도 여지없이 나와 아웃사이더는 수업시간에 의자의 뒤쪽 두 다리로만 중심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내기를 하며 장난치고 있었다.


칠판에 한가득 판서를 하고 계신 선생님의 눈치를 중간중간 살펴가며 아웃사이더와 나는 서로에게 핸디캡을 주기 위해 팔로 상대를 밀거나 의자를 건드려 균형을 잃도록 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와당탕탕!

갑작스러운 굉음에 선생님과 교실아이들이 일제히 놀라며 뒤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당황한 나와 의자가 뒤로 넘어가서 교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아웃사이더와 내기 중 먹었던 생라면 부스러기가 널려있었다.


상황파악이 끝난 아이들은 큰 소리로 웃어댄다.

얼굴이 빨개진 아웃사이더는 얼른 의자를 바로 세우고 옷을 털고 일어나 자리에 앉는다.

선생님의 엄한 표정과 한숨, 그리고 인내가 얼굴에 스친다.


“두 사람 장난친 건가? 흠..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오도록!”

비교적 웃음이 많던 선생님은 그날따라 무표정해서 건조하기까지 한 눈빛으로 나와 아웃사이더를 바라보더니 판서를 이어갔다.


이내 교실은 차분한 수업분위기로 돌아간다.

아웃사이더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관심이 걷히자 뭐가 재밌는지 킥킥거리며 웃어대더니 팔꿈치로 나를 찔러대며 장난을 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상황이 가볍지가 않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단 자각이 고개를 든다.


딩동댕동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과 함께 선생님은 다시 나와 아웃사이더를 호출했고, 우리는 나란히 교무실로 들어갔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엄숙한 표정의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아까 그 소란은 뭐니? 또 수업시간에 장난친 거니?”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동물적 생존본능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참으로 이상하게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일단 생존을 위해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정보수집 안테나를 세운다.


우리의 안테나는 지금은 복종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나와 아웃사이더는 몸을 한껏 낮추고, 깊이 반성하는 듯한 약하고 가여운 표정과 태도로 선생님의 처분을 기다린다.


우리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자, 선생님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를 나무란다.


요근래 나와 아웃사이더의 수업태도가 몇 번이나 선생님의 마음이 찡그려질 정도로 부쩍 좋아지지 않았다는 지속적 관찰소견과 함께 앞으로 수업시간 다시 한번 장난을 치거나 간식을 먹다가 걸리면 운동장을 돌게 할 것이라는 엄포도 잊지 않는다.


“자, 이제 교실로 돌아가서 수업준비해. 그리고 너는 남고.”


‘엥?’

선생님은 내게만 남으라고 얘기하고 시선을 아웃사이더에게 돌린다.

아웃사이더는 뭔가 신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싱글거리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유유히 교무실을 나간다. 그 녀석의 뒷모습이 교무실 문을 빠져나가자마자 선생님이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을 뗀다.


“너한테 정말 실망이다. 난 네가 저 친구랑 짝이 돼서 잘됐다고 생각했고, 잘 잡아줘서 둘 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실 분위기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실망이다. 짝은 다음 주에 다시 바꿀 거야.”


11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온통 내 주변에는 실망이라는 단어가 송충이처럼 스멀스멀거리고, 머리에다 대고 누가 징을 크게 울리는 것 같다.

장난을 많이 치고 좀 까불거리긴 했지만 언제나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던 모범생인 나에게는 ‘정말 실망’이란 표현을 두 번이나 듣게 되는 이 순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교실에 돌아왔지만 더 이상 웃음은 나지 않았고, 속상한 마음에 다음수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잘못한 게 맞는 것 같고, 이제는 틀린 길을 가버린 것 같은 절망감에 눈물이 계속 나서 멈추질 않았다.


팔꿈치로 계속 나를 쿡쿡 찌르던 아웃사이더도 내가 노트 위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얌전히 책상 위의 교과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을 바라보진 않았지만, 선생님과 반아이들 모두 내가 제일 뒷자리에서 눈물을 떨구며 수업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못 본 척하며 조용히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는 타락한 4학년이 되어 난생처음 인생의 바닥을 맛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실망' 좀 줬다가 무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이 속상해했는지.. 나 역시 내가 우습다.

그러나 아마 학교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배워가는 시점에서 부모님이 아닌 어른으로부터 듣는 첫 혹평은 당시의 나에게는 꽤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윽고 다음 주 짝은 다시 바뀌었고, 이번에는 여학생이 먼저 앉은자리에 남학생이 앉았다.

내심 걱정했던 그 지긋지긋한 녀석은 계속 발 끝만 내려다보며 선택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고, 그 사이에 내 옆자리는 놀랍게도 안경잡이가 앉았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재빠르게 따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쁜 마음이 잠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렇게 다시 자리배치를 하게 한 장본인이 된 타락한 11살에겐 이런 간질거리는 감정은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들썩이는 입꼬리를 묵직하게 채워둔다.


아웃사이더는 6학년 언니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어느 여자아이 옆에 앉았는데, 한 가지 분한 것은 그 후로 그 녀석은 순한 양이 되어 간식을 먹거나 노트를 뺏는 장난은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소녀의 명령에 순종하는 소년으로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묘한 패배감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웃사이더 때문에 더 이상 누군가를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1살 나의 ‘선택’은 인생 최대의 위기와 패배감을 남기며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어쩌면 꿈을 꾸면서까지 하루에도 수 십 번, 수 백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


단순히 5분 더 잘 것이냐, 말것이냐에서부터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 이 후보자에게 표를 줄 것인지 등등 다양한 무게의 문제들 앞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그 시점에서는 최선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언제나 가변적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오늘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는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거친다.


그와 동시에 선택이란 말에서 이미 그 의미가 있듯이, 태생적으로 선택은 여럿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기에 애초에 완벽할 수도 완전할 수도 없다.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의 상처,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 택함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


결국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횟수의 선택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중 완벽한 선택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을 할 때 타인의 기준과 시선,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 예상되는 비난과 반대 등 본질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요소들에 매우 큰 무게를 둔다.


이렇게 선택은 선택하는 주체의 불완전성, 선택하는 상황의 가변성, 선택결과의 예측불가성 등으로 애초부터 어렵고 한없이 골치 아픈 것이다.  

(그러니, 11살 꼬마에게 짝을 공개선택 하라는 선생님의 조치는 치기 어린 교육자의 실수라고 본다. 하하)


그러나, 나는 선택에 있어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만.. 그래도 그럴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최선과 진심을 다해 선택에 임하는 우리를 좋아한다.

짜장면과 짬뽕, 부먹과 찍먹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고심하고, 우리는 얼마나 진지한가..!


불완전한 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선택에 앞서 아등바등하며 고민하고, 그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그 선택에는 또 언제나 빈틈이 떡하니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괜찮다.

불완전한 선택의 뒷수습을 하며, 그 부족분을 채워가며 나와 당신은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나 조금씩 자라니 말이다.


앞 선 선택에서 배우고, 잘못된 궤도와 방법을 수정하고, 주변을 살피는 유연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정체되어 고이지 않기를 단속하고, 보다 나은 다음을 만들려 다짐하는 이 요상한 생명체들..


그런 의미 있는 분주함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도, 뭔가 늘 부족해 보여도 우리가 요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런 우리가 좋다.

계속 실수하고 실패해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와 당신이 있어서 이 골치 아픈 인생의 업보가 말 그대로 짐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에서 기회라는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 더 기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기회.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위에 두기를 바란다.

앞서 말했듯이 완벽한 선택은 애즈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 좋은 선택이란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하는 선택도 있고,

가족을 위해 삶의 고단함을 잊고 가장 춥고 어두운 곳에서 헌신하는 선택도 있고,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이국땅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쳐 봉사하는 선택도 있다.

그런 거룩한 선택 앞에서 개인의 행복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거룩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역시 '그 선택'이 본인을 더없이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천성이 그런 숭고함을 애초에 품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세계평화에는 관심이 없고, 이 순간 오로지 저녁으로 청국장과 평양냉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도 당신은 그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상대의 시간에 대한 가치는 그 누구도 쉽게 제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열한 입시를 거치고, 취직을 해서 밥벌이를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의 삶의 루틴.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보통의 노력으로 이루거나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오늘을 사는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위에 두는 호사라도 누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생각할 때 언제나 눈물보다는 웃음이 먼저 얼굴에 띄워지고, 회한보다는 행복이 먼저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할 때 미안하기만 하지 않기를,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만난 내가 나한테 해준 게 고작 이것밖에 없는 거냐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아무에게도 실망과 상처를 주지 않을 선택은 애초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선택에 너무 큰 포기와 양보가 있지 않기를 또 역시 바란다.


여기, 오늘, 지금. 선택의 앞에 서 있는 나와 당신이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시시한 노력을 하는 대신에, 이기적으로 되길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기억하시라, 누구보다 당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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