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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 Jun 25. 2024

청춘애가

백화난만의 시절, 꽃보다 아름다웠던 그대에게

1981년 3월 ‘대한민국 청소년에 대한 전인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새로운 민족관과 국가관을 정립시켜 민족주체세력을 양성함과 동시에 세계로 향한 진취적 기상을 북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청소년연맹이 발족했다.


먹고살기 바쁜 시골사람들이 그 기저에 깔린 정치적 의도나 목적 따위는 알리 없었고, 그저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니 좋겠거니 생각하며 그런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는 모범국민으로서,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나도 기꺼이 동참했으니 바로 ‘아람단’ 가입이었다.


검정색 베레모와, 붉은 깃이 포인트인 하늘색 티셔츠 그리고 청조끼, 가슴에 새겨진 아람단의 주황색 로고는 어린 나에게 소속감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3년 내내 열혈단원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당시 아람단 활동의 주제는 주로 반공, 자주, 협동이었고, 그래서 나는 11살 꼬맹이때부터 내 키만 한 배낭을 메고 산기슭에서 야영을 하거나, 달랑 우비 하나만 덧입고 빗속을 행군하거나, 반공웅변대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과 우리 대한어린이들의 나아갈 길에 핏대를 세우곤 했다.


아람단의 중요한 연례행사 중에는 반드시 땅굴견학이 있었다. 주로 ‘6.25’를 기리기 위해 그 시기 전후해서 관광버스 몇 대를 전세 내는 주말 당일일정이었다.

온전히 쉬는 일요일에 학교행사를 하는 게 달갑지도 않았을뿐더러, 땅굴이라는 게 주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요기나 군것질거리가 많은 곳이 절대 아니었기에 열혈단원이었으나 나는 내심 땅굴견학을 몹시 귀찮아했고, 그 어둑어둑하고 눅눅한 땅 속 어딘가를 군인들의 설명을 들으며 한없이 걷다가 나오는 단조로운 코스가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새로운 국가관과 민족관을 정립시키기 위한’ 대한청소년연맹의 단원이었으나 그건 그거고, 나는 어쩔 수 없이 TV만화와 대중가수,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과자에 열광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우리 세대에게 공산주의란 그런 것이었다.

반공정부와 제도권교육 그리고 전쟁을 직접 겪은 어른들이 주입한 전쟁의 참상을 통해 공산주의는 냉혹하고 양심 없는 야만의 제국이었고, 공산당은 늑대나 이리 따위의 야수로 이미지화되어 아무 비판의식 없이 혐오하고 적대시해야 하는 존재.


그 시절 우리에게 이념, 전쟁 이런 건 그저 끔찍한 누군가의 과거.. 교과서에서 봤던 강 건너의 옛날이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영혼 없는 반공웅변과 지루한 땅굴견학, 머리로만 하는 애국선서.. 그런 애국심 흉내로는 절대 알 수 없는 74년 전의 6월. 그 무덥고 슬픈 여름 포화 속의 그때. 나와 당신은 감히 ‘알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시간.. 세상은 온통 푸른 나무와 화려한 꽃들의 향기로 가득했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빛나던 시절의 그들의 슬픈 비극의 시작이 거기에 있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5일장이 서던 날이면 항상 술에 취해서 마을 구멍가게 앞에서 고주망태가 되어있던 한 사내.


60대 전후였을 그 사내는 검고 거친 피부, 녹록지 않은 사내의 삶이 그대로 박제된 냥 얼굴에 깊게 새겨진 주름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빛바랜 셔츠로 늘 우울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왜소하고 마른 체격에 비해 소매 밖으로 보이는 사내의 팔뚝과 손에는 근육과 굳은살이 다부지게 자리 잡아 나이에 비해 단단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 사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느 때부터 마을에서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5일장마다 술에 취해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약한 주사를 부려 금세 그 작은 시골마을의 빌런이 되어 꽤나 유명해졌다.


누구는 마누라와 자식이 모두 죽고 말아 술에 절어 이곳저곳 떠돌아 흘러들어왔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애초에 결혼도 못하고 품을 팔며 떠돌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했다.

그를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사항은 그는 6.25에 참전한 군인이었으며 불행히도 전쟁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다리를 15cm 정도만 남긴 채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렇다. 그 사내는 전쟁 중 부상으로 다리 하나가 없는 ‘상이군인’이었다.

지금도 늘 그의 바지자락 한쪽이 불어오는 바람에 맥없이 펄럭거렸던 것과, 그럴 때마다 원망과 분노로 번쩍이던 그의 눈동자와, 목발을 힘을 주어 꼭 쥐던 애처로운 그의 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그 사내는 외출이 잦지 않았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제일 사람들이 붐비는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사내는 작심한 듯 아침나절부터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술을 마셨다. 일찍부터 시작한 그의 음주는 점심때를 넘기면 이제 만취로 치달아 사내의 검은 피부에 붉은 기가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 시점부터 이제 그는 진짜 빌런이 된다. 시장통을 지나가는 사람 특히 건장한 남자어른들을 향해 도발적인 욕설로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그 노골적이고 민망한 욕설로 기분이 상한 남자들은 훽 뒤돌아서서 주먹을 쥐며 그를 위협하기도 했고, 그 사내 못지않은 상스러운 욕설로 되받아 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들 기준으로 ‘병신’을 상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사내가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건장한 그 남자들은 그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온갖 욕설을 해대니 손님들이 피할까 하여, 이쯤 되면 가게 주인들은 급하게 그를 내쫓는다.


그렇게 만취한 사내는 시장에서 내쫓기면 목발을 짚고 뚜벅뚜벅 걸어 올라와 마을 큰 길가에 있던 구멍가게로 향한다.


가게 주인 역시 그 사내를 달가워하진 않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주 두세 병과 안주로 쓸 과자, 캐러멜, 사탕 등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산다.


그리고는 구멍가게 앞 맨땅에 철퍼덕 주저앉아 그 사내만의 2차를 시작한다.

그 사내처럼 술병도, 술잔도, 안주로 삼는 과자 한 봉 지도 맨땅에 차려진다.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들이켠 그는 시장에서의 다툼은 벌써 잊었는지 흥얼거리며 노래를 시작한다.

마을 한가운데 맨 땅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다리 하나 없는 이’의 레퍼토리는 대중가요에서 군가까지 매우 다양했다.

그렇게 그는 해가 질 때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토해내듯.. 비명을 지르듯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댔다.


그가 여기까지만 했다면 아마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그 사내를 거칠게 내쫓거나, 난폭한 행동으로 위협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내에게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누구라도 나를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표정으로 악다구니를 쓰는 그 사내 근처로 마을 아이들이 지나가면 별안간 원망 가득했던 사내의 눈동자에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하던 노래를 갑자기 뚝하고 멈췄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들을 향해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로 시작하는 ‘달맞이’ 동요를 불렀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무섭게 보이지 않기 위해 사내는 눈가에 큰 주름이 잡힐 정도로 미소를 지어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정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구멍가게에서 필요이상으로 많이 샀던 과자, 캐러멜, 사탕의 용도가 밝혀진다.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흔들며 와서 받아가라는 사인을 보낸다.

아마 공포스러운 그의 모습 때문에 아이들이 절대 근처로 오지 않으니 그렇게 달콤한 유혹으로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그 사내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 그 누구도 그 달콤한 손길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두 명씩 사내에게서 일정거리를 두고 서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생기더니, 사내가 해코지를 하지 않는 그냥 술주정뱅이이며 과자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빠르게 사내의 손에 들려진 과자를 낚아채듯 받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사내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띄웠고, 도망치듯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맞이’를 부르고 또 불렀다.

마침내 아이들의 모습이 사내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제야 땅바닥에 둔 종이잔에 소주를 연신 부어서 노래로 갈증이 난 목을 축이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그 동요의 가사를 3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고, 서정적이고 따뜻한 그 노래를 가끔씩 곱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사내 덕이다.


장날이 아닐 때에는 사내는 외출을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 길거리에 나선 술에 취하지 않은 그 사내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언제나 땅만 보며 걸었다. 목발을 앞으로 내고 힘을 주어 몸을 옮길 때마다 그의 그을린 팔뚝에 인이 박히듯 자리 잡은 근육과 힘줄들이 고집스럽게 움직였고, 그와 대비되어 사내의 한쪽 빈 바지자락은 움직일 때마다 허우적거리듯 펄럭였다.


아무도 사내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그를 못 본 척 지나쳤으나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사내를 지나치고 몇 발짝을 지나면 가던 방향에서 몸을 뒤로 틀어 슬쩍 그 사내를 한번 흘깃 보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곤 했다.


그즈음 늦여름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던 수해로 결국 마을주민들의 이주가 결정되었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마을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더 이상 5일장이 서지 않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보상금과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한 얘기로 한동안 들뜨고 분주했기에 자연스레 사내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렇게 마을이 없어지고..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서 나는 딱 한번 그 사내를 본 적이 있었다.

초여름으로 접어들던 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나는 후끈한 한낮의 열기가 한풀 꺾인 오후의 서늘함이 좋아 버스 뒤쪽 자리에 앉아 한껏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단발머리가 마음껏 나풀거리도록 내버려 두며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쿵…쿵…쿵…쿵..

정류장에서 멈춘 버스에서 낯선 소리와 함께 그에 따른 미세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버스에 탄 사람들의 시선이 앞쪽 승차문으로 쏠린다.


그다!!

고주망태가 되어 달맞이 노래를 부르던 다리 하나가 없는 그 사내였다.

그 사이 더 나이가 든 사내는 어느새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었으며, 상처 같은 굵은 주름들이 이마와 눈가, 입 주변에 더 짙게 자리 잡았다.

다만 원망 가득했던 그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검게 그을린 피부와 남루한 행색은 여전했다.


사내는 예전보다 야위였으며,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반가움도 그리움도 아닌 묘한 감정이 스치며 나는 곧바로 그 사내가 나를 알아볼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훌쩍 자란 나에게 혹시나 남아있을 어린 시절을 모습을 그가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서 나를 아는 척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서둘러 얼굴을 창 측으로 돌리고 그 사내의 시선을 피했다.


그 사내의 쿵쿵 목발을 내딛는 소리에 맞춰 나의 심장도 두근거린다.


다행스럽게도 사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위태로운 사내의 걸음은 내릴 때를 감안해 버스의 하차문이 있는 중간자리쯤에 멈췄고 사내는 목발을 한 손으로 모아 잡고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사내가 앉자, 기다리기 지루했다는 불평을 하듯 버스기사는 부릉 소리를 크게 내며 버스 가속페달을 힘껏 밟고 출발한다.


나는 창 측으로 피했던 얼굴을 살짝 돌려 사내의 뒷모습을 찬찬히 살핀다.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사내의 작은 어깨와 그의 검은 뒷목에 듬성듬성 나있는 흰 머리칼에 여름 오후의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사내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무거운 침묵과 햇살 아래 드러난 빛바랜 셔츠를 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그때 갑자기 사내는 몸을 뒤척이더니 버스 안에 탄 승객들을 쭈욱 둘러본다.

그의 시선이 그를 관찰하던 나의 눈동자와 마주쳤고, 나는 무슨 큰 잘못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황급히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린다.


사내는 여름햇살이 따갑지 않은지 버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오롯이 그 햇살을 얼굴로 받으며 광합성이라도 하는 듯 천천히 눈을 몇 번 껌벅이다 눈을 감았다.


나는 다시 참을성 없이 시선을 돌려 그 사내 쪽을 바라보았고, 마치 동떨어진 풍경처럼.. 낡은 사진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있는 사내의 쓸쓸한 노년을 살핀다.


아뿔싸.. 그 사내의 시선과 또 마주친다. 잠시 넋을 잃은 듯 그를 보던 나는 뒤늦게 알아채고 당황하여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앞머리를 손질하는 척 얼굴을 가린다.


잠시 동안 사내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도 손가락 사이로 슬쩍슬쩍 그의 표정을 살핀다.

사내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하더니, 순간 얼굴에 익숙한 엷은 미소가 번졌다 사라진다.


여름 오후 작은 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은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와 가래 끓는듯한 버스의 엔진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느긋하고, 조용하고, 나른했다.


평화로운 정적을 쩌렁쩌렁한 그 사내의 목소리가 일순간에 깨버린다. 사내가 버스 안에서 갑자기 노래를 시작한 것이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아~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거얼고~”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버스기사와 승객들 모두가 깜짝 놀라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이어간다.

버스기사가 룸미러로 사내를 노려보다가 조용히 하라며 사납게 핀잔을 주지만, 그 사내는 더 기세를 올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이내 버스기사와 승객들은 포기하고 내버려 두기로 한다.


그렇게 그 사내는 달맞이를 3절까지 2번을 부르고 다시 1절을 마치자 목발을 모아진 손에 힘을 주고  슬쩍 엉덩이를 들어서는 듯하더니 버스정차 벨을 누른다.


버스가 정류장에 거칠게 서자 사내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목발을 양손으로 쥐고 그을린 팔에 힘을 주어 끄응하고 일어선다. 서너 걸음이면 갈 거리였지만 목발을 쥔 노인의 걸음으로 조금 시간이 필요한 거리다.


사내는 쿵쿵 소리를 내며 천천히 하차문으로 향한다.

버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그의 백발이 흩날린다. 그리고 그의 빈 바지자락을 살랑살랑 흔든다.


사내는 내리기 직전 아주 잠시 내쪽으로 눈을 돌린다. 그 사내의 위태로운 걸음이 걱정이 되어 바라보던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사내의 눈에는 예전에 보았던 온기가 번져있고, 굵은 주름 사이에 엷은 미소가 살짝 보였다 사라진다.


사내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버스를 안전하게 내려간다.

사내가 내리기 무섭게 버스는 귀찮은 짐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듯 힘껏 가속패탈을 밟아 부릉하는 소리를 크게 내며 성급하게 출발한다.


버스의 매연과 길가의 먼지가 희뿌옇게 퍼져 사내의 시야를 가린다.

그 사내의 작은 실루엣은 그렇게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마지막 노래였다.

이상하게 그날 그 사내의 마지막 모습은 각인되듯 내게 남아있다.

그의 장애를 부끄러워하며 끝내 나를 몰라주기를 바랐던 나의 못난 모습과 여전히 낡은 사진처럼 쓸쓸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 사내의 작고 여윈 모습이 꽤 불편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나를 꾸짖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땅바닥만 바라보며 걸어야 겨우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사내.

원망과 애정을 한눈에 담고 있던 사내.

술에 취하면 달맞이 노래를 다정하게 부르던 그 사내의 인생에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전쟁이 없는 그 사내의 원래 인생’을 상상해 본다. 상상할수록 더 슬퍼지는 부질없는 그 일을 나는 해보고야 만다.


다부지고 부지런한 사내. 목청 좋게 노래를 잘 불렀던 사내를 주변사람들은 꽤 좋아했을 것이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면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기분 좋게 한잔을 걸쳤을 것이며,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내의 손에는 아이들에게 줄 작은 주전부리 꾸러미가 들려져 있을 것이다.

집 대문을 들어서면 때맞춰 차려진 소박하고 따뜻한 저녁밥상과, ‘아빠다~’라는 격한 환호와 함께 뛰쳐나와 그의 품에 와락 안기는 아이들이 그를 맞아줄 것이다.

곧이어 허구한 날 술을 마신다는 아내의 볼멘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사내의 손에 들려진 꾸러미를 받아 든 아이들은 조바심과 기대로 앞다투어 열어보려 하지만 밥을 먹어야 하니 그건 중에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깊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꾸러미를 내려놓는다.

사내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엷은 미소를 짓지만, 모른척하고 얼른 발을 씻고 평상에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몽글몽글 따뜻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면 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을 돌며 그가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진짜 ‘달맞이’를 했을 것이다. 거기서 사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달맞이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두 다리’로 성큼성큼 행복한 걸음을 내딛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사내는 자신을 정말 좋아해 주는 자신의 아이들을 품에 안고 여름밤 달콤하고 곤한 잠에 빠졌으리라.


한여름밤의 꿈같은 그 사내의 청춘.. 그 사내의 행복..

그리고는 매연과 먼지 속의 그 사내의 실루엣처럼 순식간에 그 상상은 흐려졌다 사라지고 만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나는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따위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한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짓밟을 수 있는지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전쟁이 났고, 그저 살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 손에 총이 쥐어졌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웠고, 그리고 그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해도 끝도 없는 전후 공포와 평생을 싸워야 했고, 때로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평생 가난과 편견에 맞서야 했다.

그들은 그저 전쟁에 끌려갔을 뿐이지만.. 그때부터 그들은 죽을 때까지 또 다른 전쟁을 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가난하고 나약한 나라에서 태어나 광복을 맞이했던 세대..

이후 또다시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슬픈 전쟁을 겪은 세대..

인생 전체가 드라마나 소설같이 극적이고 비현실적인 그 세대..

그 세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참으로 불행하고, 대단히 강인한 세대였다.


그 세대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이 만들어 낸 풍요의 토양 위에 오늘날 우리의 평화와 행복이 세워져 있다.

우리가 그 세대들에게 무한한 감사과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나 역시 그 세대의 못 말릴 우격다짐, 막무가내, 고집불통들이 때로는 혐오로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굶주리며 성장하고, 배울 기회가 애초에 없었으며, 그러다가 소중한 목숨을 당연하게 전장에 바친 그 세대가 과연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그저 그들은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고집 스러졌으며,

그저 살기 위해 억척스러워지고, 자기 아이들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여기까지 오기에도 너무나 벅차고 고됐을 것이다.


‘다리 하나가 없는 이’가 건네는 달콤한 사탕은 받아먹으면서, 어디서든 그를 만나면 얼른 외면하고 모른척하는 나의 모자란 그때가 다시 오버랩된다.


나는 6월이 그들에게도 청춘의 한때가 있었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가슴 아프다.

푸르고 생명력 넘치지만, 장마가 시작되듯 우울하고 흐렸던 그들의 젊은 날.

그렇게 우리의 한 시절은 시간의 흐름에 맞물려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그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여름을.. 우리처럼 역시 맞이하고 있다.

세상은 이제 그들의 보폭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야속하게도 그들의 더딘 걸음을 너그럽게 못 본 척 봐주질 않는다.


늙음이 조롱거리가 되고, 약함이 비웃음을 사는 비정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구하고자 자신의 젊음을 바친 것이 종종 허탈할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애를 쓰고 지키고자 했던 세상이 맞는지 자꾸 의심이 들 것이다.

허탈과 후회와 의심과 좌절이 한껏 약해진 그들 주변을 계속 맴돌며 더욱 괴롭힐 것이다.


쓸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들의 백발, 그들의 주름, 그들의 흐려진 눈동자와 구부정하고 불편한 걸음걸이를 보면서 그들에게 있었을 찬란히 빛난 던 그날들을 생각해 본다.


한 젊은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과수원에서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 하나를 뚝 따서 아무렇지 않게 옷소매에 쓱쓱 몇 번 문대고, 크게 한입 베어문다.

복숭아는 ‘아삭’하고 싱싱한 소리를 내고 그의 입 주변으로 복숭아 과즙이 뚝뚝 떨어진다.

우걱우걱 호기롭게 복숭아를 씹어 삼키며, 그는 눈을 스르르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켜 본다.

여름의 햇볕냄새가 나무향과 함께 함께 그의 폐까지 상쾌하게 들어온다.

그는 그렇게 오롯이 살아있고, 젊다는 사실을 충만하게 느낀다.

온몸에서는 기운이 넘치고 다가올 미래는 내 힘으로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그는 다시 눈을 뜬다.

그의 눈앞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없는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누가 손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사르르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가루가 되어버릴 것처럼 바싹 마르고 여기저기 옹이가 나 있는 비틀어지고 못난 고목나무다.

어둑어둑한 눈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던 사내는 문득 그 고목나무가 자신임을 깨닫는다.

물기를 한가득 품고 빛을 내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메마르고 쪼그라든 한 늙은이가 서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슬픔이 몰려와 사내는 무서워서 덜덜 떨리고, 어안이 벙벙하다.


누구에게나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 찬란히 빛났던 그날..


사내는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그의 눈앞에는 조금 전 마을의 과수원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맑고 쾌청한 여름이다.

달콤하고 향긋한 복숭아를 한입 더 힘껏 깨문다. 입 안 가득 싱그러운 생기가 퍼진다.

살랑바람이 불어 사내의 검게 빛나는 머리칼을 흔든다.

그의 반듯하고 판판한 이마도, 맑은 눈가도, 단단하게 근육이 박힌 팔뚝도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도 스쳐 지나간다.

상쾌하다. 사내는 행복한 기분이 든다.

저 마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행복을 바라보듯 먼산을 바라보며, 단꿈을 꾸듯 꽃 같은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그는 몇 번 헛기침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고, 곧이어 쩌렁쩌렁하고 힘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 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 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달밤에 달각달각 나막신 신고

도랑물 쫄랑쫄랑 달맞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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