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계절도 있습니다 >
2월 중순에 한국에 들어와 두 달 반이 흘렀다.
한국에서의 봄은 참 더뎠고, 봄을 기다리던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더 몰두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실망, 인간관계에 대한 허무, 이어지는 분노와 우울 등이 이유였을 터이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일을 세상에 떠들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골프모임 카페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라운딩을 나갔다. 참 열심이었던 것 같다. 열여섯 번의 라운딩 기록이 남았다. 사실 매번 모르는 사람들과 장시간 라운딩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짧은 구력을 만회해 보고자 일정이 잡히는 대로 라운딩에 참여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더불어 초보 골퍼의 실력도 조금씩 성장해 갔다.
겨울이 되어 한국에서의 라운딩은 중단되었다.
카페장은 회원 수가 많아진 것에 고무되어 연단체 신청을 통해 총 4개의 구장에서 연단체 운영을 확정 지었다. 나는 미국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봄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3월 달 연단체 첫 라운딩 날짜가 공지되기 시작했고 회원들은 달력을 확인하기 바빴다. 카페장은 연단체 회원이라는 등급을 새로 정하고 한 명당 1만 원씩 기부를 받아 구장의 신청비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2월 초인데도 3월 말의 라운딩 신청 공지가 올라왔고, 그린피와 카트비, 캐디비, 식사비 및 발전기금을 합한 전액을 입금하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그랬지만 여전히 입금순서가 신청순서였다. 그때도 전액을 입금하긴 했는데 나는 원래 그렇게 운영하는 것인 줄 알았다.
뭔가 이상했다.
한 달 반 전에 라운딩비 전액을 열여섯 명에게서 받아 놓는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그린피만 현장에서 각자 카드로 결제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불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후 다른 회원들도 법인카드 사용, 현금영수증 발급 등으로 질문이 이어지자 카페장은 나를 강제퇴장 시켜버린 것이다. 운영방침에 대한 불만으로 여론몰이를 한다는 이유였다.
찾아보니 카페장은 그 카페 말고도 온라인에 대여섯 개의 카페를 더 운영하고 있었다. 아파트 커뮤니티를 비롯해 다단계 판매, 반려견, 소품 공예, 화장품 및 아로마, 부분 가발 등 이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도소매 관련 활동을 해온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력이야 개인의 직업 활동이니 문제 될 것은 없으나, 무언가 사업을 할 때마다 온라인에 카페를 개설해 회원 수를 늘리고 주제가 달라질 때마다 또 새로운 카페를 만들고 하는 것이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나도 제대로 성공하진 않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녀에게 온라인 카페는 자신이 일구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생계형 판매처였던 것이다. 애정을 가진 회원들의 정성 어린 조언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어떤 위상을 가지게 되는 회원보다는, 자신의 주관대로 목표 한 바를 향해 달려가는 현실적인 수단이었던 것 같다.
강제퇴장이라는 걸 난생처음 당해보아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공들인 시간과 열정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일방적인 강퇴에 대한 부당함을 회원들에게 알리고 난 후 자진 퇴장하고 싶어 카페장의 운영에 몇 가지 불법적인 사항들을 고소하겠다고 알렸다. 카페장은 무엇이 켕겼는지 바로 다시 재가입을 해주었다. 나는 회원들에게 긴 인사를 하고 카페를 탈퇴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으므로, 그리고 신뢰가 깨졌으므로 더 활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봄은 제 시간을 다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따로 만나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라운딩을 시작했다. 다른 운동을 더 열심히 했고, 일주일 동안 규칙적인 일상의 루틴을 반복하려 노력했다.
그 일에 대해 차분하고 편안하게 글을 쓸 때쯤이면 나는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봄을 지나온 것 같다.
그리고 지인들에게서 카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연단체 두 개가 성원이 되지 않아 결국 취소되었으며, 내가 탈퇴한 후 탈퇴 러시가 이루어졌으며, 결국 그린피 전액이 아닌 최소금액입금으로 라운딩을 신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 만났던 사람들과 같이 나눈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인생의 한 자락을 배웠고, 그만큼 키가 자란 느낌이다.
사람은 자신의 속내가 들켰을 때 가장 공격적이 된다. 그 공격성을 감추려고 어떤 이는 더 친절을 베풀지만 또 다른 이는 진짜 칼을 빼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정직하진 못했으나 솔직은 했다고 느껴진다. 그녀에게도 지나간 봄이 길었을지 모르겠다.
다음 계절은 우리 모두 더 건강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