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일도 없는 것 >
CCTV 건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102호 여자가 모델을 알아보고 기사까지 예약해 두었다며 단톡방에 설치 일정을 공유했다. 1층 입주자의 베란다 쪽으로 연결해야 한다며 누군가 공동현관을 열어주고 집 안에서 기사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02호는 그날 하필 병원을 가야 한다고 톡을 올렸다. 결국 그 일을 맡을 사람은 101호 나였다. 바퀴벌레 이후 내 생활은 새벽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낮에도 좀처럼 나갈 일이 없었으니 102호는 내가 자신보다 덜 바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설치 기사는 정확히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회색 유니폼 차림에 건조한 얼굴을 한 젊은 남자였다. 그는 우리 집 베란다와 공동현관을 부지런히 오가며 소리 없이 작업을 했다. 공동 현관 옆 우편함 위쪽에 작은 CCTV 본체를 달고, 화단 쪽 방향과 분리수거함 앞이 동시에 보이도록 각도를 조정했다. 건물로 들어와서도 1층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의 옆모습이 보이도록 설치했다.
“설치 완료 했습니다. 이제 제가 알려드리는 이 앱을 설치하셔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현관 앞에서 작업을 마친 설치 기사가 마지막 안내를 건넸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며 덧붙였다.
“앱은 이거예요. 그리고 이 시스템은 조금 특이한 게 있는데요, 처음 로그인한 사람의 아이디가 ‘관리자권한’을 갖게 돼요. 그 사람이 허용한 사용자만 영상을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최초 로그인자가 사실상 이 기기의 주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고,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녹화도 됩니다. 스마트폰 앱에서 저장된 영상도 볼 수 있고요.”
설치 기사는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알림 설정을 해 두시면 누가 드나드는지 바로 알 수 있어요. 화면을 분할해서 동시에 여러 장소를 보는 것도 가능하고요. 이 구역 택배기사님들은 빌라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다 알고 계세요. 그분들은 절대 범인 아니구요, 대부분 내부자예요.”
그는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뭔가를 아는 듯한 말을 했다.
“사실 이런 건요...”
그가 공구를 챙기며 말을 덧붙였다.
“처음엔 다들 매일 보실 줄 아세요. 근데 막상 설치되고 나면, 잘 안 봐요.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니까요. 카메라가 보는 중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오히려 사람은 더 쉽게 눈을 감거든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CCTV를 설치만 해도 효과는 있을 거예요. 작동에 이상이 있으면 연락 주셔요.”
지난번 방역업체 직원도 그렇고 이번 CCTV 기사도 그렇고 이들은 집이나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그가 떠난 뒤, 나는 문을 닫고 조용히 앱을 켰다. 내 이메일 주소를 입력했다.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관리자 이름을 넣고 마지막으로 ‘승인’ 버튼을 눌렀다. 4개의 분할된 화면에 공동 현관문과 화단, 분리수거함,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나는 단톡방에 사진 네 장을 올렸다. 현관, 계단, 화단, 그리고 분리수거함. CCTV 화면을 앱에서 캡처한 이미지였다.
“안녕하세요. CCTV 설치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네 군데가 촬영되고 있어요. 앱 설치하시면 실시간 확인 가능하고, 저는 일단 제 아이디로 로그인 해두었어요. 보시고 싶으신 분은 저 한테 말씀 주세요~!”
“앱도 설치 해야 되요? 그럼 101호 님이 귀찮은 일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역시나 201호가 먼저 답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나보고 관리를 하라는 뜻으로 느껴졌다. 희한한 건 누구도 사용 방법에 대해 묻지 않았고, 누구도 화면을 직접 보려 하지 않았다. 설치의뢰를 한 102호 조차도 조용했다. 감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듯 다들 ‘좋아요’ 이모티콘 하나 정도로 답을 대신했다. 설치기사 말대로였다. 카메라의 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쉽게 눈을 감는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CCTV 앱을 열었다. 새벽 4시 32분. 움직임 감지 알림이 떴다. 나는 곧장 분리수거함 앞 카메라로 화면을 넘겼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그 어두운 구역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1층 계단 화면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긴 머리를 묶은 채로 모자를 눌러쓴 302호 여자였다. 커다란 상자를 양손으로 안은 채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상자는 며칠 전 102호 앞에 놓여 있던 바로 그 크기였다. 그녀는 익숙한 걸음으로 분리수거함 앞에 세워진 회색 SUV 쪽으로 다가갔다. 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었다. 302호 여자는 상자를 들어 올려 열려진 트렁크에 밀어 넣었다. 트렁크가 닫히고 여자가 문을 두드리자 차는 조용히 출발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02 아닙니다 ㅎㅎ”가 퍼뜩 떠올랐다. 나는 앱을 닫지 못하고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재생 버튼을 눌러 다시 되돌렸다. 영상의 4시 31분 20초부터 상자를 껴안은 그녀의 걸음, 차의 움직임, 그리고 그 얼굴. 화면을 캡처했다가 곧장 지웠다. 말해야 할까. 그녀는 상자의 주인이었다. 단지 3층까지 들고 올라가기 귀찮아서 101호와 102호의 사이, 그 애매한 위치에 마치 공공의 구역인 듯 슬쩍 내려두고 간 것이었다.
그럼 솔직하게 말하면 될 일 아닌가.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들 일도, CCTV까지 설치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녀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단지 민망해서였을까. 아니면, 이런 식의 ‘침묵을 기대한’ 경험이 이미 익숙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단톡방을 한참 들여다봤다. 톡을 열고, 아무 말도 쓰지 않은 채,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고, 다시 창을 닫았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끝내 그 영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CCTV를 설치하자고 했지만, 정작 보게 된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는 걸 가장 먼저 알아버린 것도, 나였다.
CCTV를 설치만 해도 효과는 있을 거라는 설치 기사의 말처럼 그 후론 단톡방도 조용했고 새벽 알람 진동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CCTV 앱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분리수거함 앞에 봉투가 여러 개 쌓여 있는 걸 보았다. 어딘가 미처 묶지 못한 봉투에서 페트병이 굴러 나와 있었고, 비닐을 분리해야 하는 칸에 플라스틱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전에 없던 냄새가 희미하게 퍼졌고, 화단도 어느새 흙먼지에 덮여 있었다. 나는 새벽 운동을 나갈 때 한 번도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사라지자 갑자기 이 빌라에는 뭔가가 멈춘 듯한 정적이 생겼다. 놀라울 만큼 아무도 그걸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없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누구도 그가 있었던 풍경을 회상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전구가 나가서 나는 빌라 여러 동을 관리하는 공동 관리인에게 연락을 했다. 관리인은 우리 집을 방문하며 301호 할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301호 어르신 가신 거는 아세요?”
“어머, 언제요?”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요. 병원에 계셨는데... 조용히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떠났다는 말을 이토록 가볍게 들을 줄은 몰랐다. 관리인은 전구를 교환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양반이 치매가 좀 있었어요. 약 드시는 것도 자주 잊으셔서요. 가끔은 드신 줄 알고 또 드시고, 어떨 땐 하나도 안 드시고 며칠을 버티시고...”
그는 잠시 멈추고, 내 눈치를 살폈다.
“그 쓰레기봉투 뒤지시던 것도, 혹시 아셨어요? 그게 글쎄 버려진 약봉지를 찾으시려는 거였대요. 언제 어디에 뭘 뒀는지를 기억 못 하시니까, 이전 날 자신이 버린 봉투를 뒤지셨던 거예요.”
나는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진동은 그저 새벽을 깨우던 불편한 소리가 아니라,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싸움의 반복적인 울림이었을까.
“그 301호가 노인이 죽었다 하면 누가 들어오지 않을 거라 부동산에서도 쉬쉬하는데 또 기가 막히게 다음 입주자도 꼭 어르신들이 들어와요. 다음 분은 또 얼마나 계실라나 모르겠네요.”
단톡방에는 아직도 301호 할아버지가 있었다. 301호 어르신이 떠났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201호가 화단 사진을 올렸다.
“요즘엔 손이 덜 가네요 ㅎㅎ”
그 아래엔 예전처럼 이모티콘이 달리진 않았다.
“이러다 여름 오겠어요. 여긴 화단 때문에 모기가 많아요.”
102호 였다. 모기가 많다면 방역을 하자고 하겠다 싶었는데 당장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더불어 301호의 존재와 부재도 그저 계절 이슈에 가리워 졌다.
“301호 새로 오시는 분이 또 어르신이래요~ 부지런 하시겠죠? ㅎㅎ.”
누군가 그렇게 남겼다. 새 입주자, 화단과 날씨 그리고 모기 얘기 사이에 ‘죽음’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벌써 3주가 지나 태경 씨가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나는 이 빌라에 완전히 적응했기에 그의 귀국이 오히려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내가 그동안 바라보던 것보다 더 압도적이고, 한편으로는 묵직해 보였다.
“별일 없었어?”
태경 씨가 가볍게 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 일도 없었어.”
정말 그에겐 그랬다. 그에게 말해지지 않은 일, 그가 보지 못한 일, 그의 하루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든 일은, 결국 ‘아무 일도 없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301호에 새 입주자가 들어왔다. 그날 공동 현관문은 하루 종일 열려 있었다.
“연아, 301호 어르신한테 떡을 사 가지고 가볼까? 전에 할아버지는 거절했다며.”
나는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았지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먼저 인사하기는 싫었다.
“안 받으면 어떻게 해...?”
우리는 동네 떡집에서 흑임자 인절미 두 팩을 샀다. 상자 안에서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태경 씨와 함께 301호로 향했다. 나는 초인종 버튼을 눌러도 되는지 잠깐, 아주 짧게 망설였다. 그런 나를 태경 씨가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희끗한 머리를 단정히 빗은 할아버지가 문 안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101호입니다. 이사 오셨다고 들어서요. 이건, 그냥 인사 겸해서요.”
나는 떡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그러나 분명히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이구, 떡은 제가 드리는 건데요. 제가 좋은 데 이사 왔네요.”
나는 순간 어딘가 울컥했다. 별것 아닌 인사말인데도 그 말 한마디가 이 빌라에서 지낸 지난 몇 주보다 더 무겁고 그만큼 따뜻했다. 그 순간 내 핸드폰이 살짝 진동했다. 실시간 움직임 감지 알림이었다. 나는 보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