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필이면 모두 >
모든 사람은 한 번씩만 죽는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장례식도 단 한 번이며, 나 역시 그에 한 번만 참석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문제는 그 대상이 가족일 경우다. 연관된 모든 사람이, 결국 집안의 이름이 사라질 때까지, 장례식은 무한히 반복된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도 그 순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몇 번, 아니 몇십 번이나 그 자리에 서게 될지 나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어머니였다.
어느 시점 이후, 나는 그들의 가족사에 절대로 등장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장례식이라는 가족 행사는 가장 사람을 되돌리게 만든다. 가던 길을 멈추고, 꼭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다시 마주 보게 만든다. 부르고 싶지 않던 이름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 지우고 싶었던 얼굴들이, 하필이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그 자리에, 나 역시 같은 색으로 걸어 들어간다.
장례식장 회전문을 밀고 들어섰다. 정면에 설치된 화면에서 망자와 상주의 이름을 찾기도 전에, 그들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왔다. 사촌 언니였다. 십오 년 전 엄마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니, 얼마 만인지 계산도 되지 않을 시간이 흘렀다. 이십 년도 더 된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단정한 단발머리에 세련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왔구나.”
언니는 두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반가워요, 오랜만이죠,라고 말해야 했지만 외려 입을 다물었다. 언니 옆, 정확히는 약간 뒤에서 형부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반백이 된 그는 내 눈을 마주치진 않고 아래를 응시했다. 예전 그의 양복은 밝은 네이비였는데, 오늘 입은 검은 정장은 품이 크고 헐렁했다. 살이 많이 빠졌고, 옆에 선 언니보다도 더 왜소해 보였다. 그 모습이 낯설어 나는 불편했다. 우연히 형부의 셔츠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눈인사가 불편해 고개를 들지 않았던 것인데, 멈춘 시선이 거기 머물렀다.
그날도 셔츠가 문제였다. 밝은 네이비 정장 속 흰 셔츠에 손바닥만 한 흰 봉투가 형부의 가슴팍으로 사라지던 순간을 나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했다.
“그 자슥이 고모가 낸 봉투를 슬쩍 지 가슴팍에 쑤셔 넣더라.”
“내 눈으로 똑똑히 봤제. 최만수, 그 자식은 어물쩍 웃는 그 표정이 음흉한기라.”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분노나 울분보다는, 체념과 허탈에 가까웠다. 당시 아버지는 만성신부전증으로 주 3회 투석을 받고 있었고, 병원에 한 번 다녀올 때마다 2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백만 원이면 투석을 네 번, 많게는 다섯 번은 더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어차피 찾을 수도, 돌려받을 수도 없는 돈이었지만, 아버지에게 그 돈은 자기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수단이었다. 내가 더 배신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투병 중인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일을 꽤 오랫동안 입에 올리지 않다가, 내가 결혼하고 1년쯤 지난 명절에 실수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로 그 일을 꺼냈다. 명절 제사상이 물러가고 분위기가 느슨해졌을 무렵이었다.
“요새 부조금으로 백만 원은 우습다 카대. 그날도 고모가 백만 원을 냈다 아이가. 그란데, 참... 손이 빠른 사람이 있어 가꼬. 그 봉투가 오데로 갔는지, 알 수가 있겠나. 내가 씰데없이 눈이 좋아 가꼬, 괜히 봐버렸다 아이가. 오데로 갔을까, 사람이 모이믄 이리 생각이 난다 아이가?”
앞뒤 맥락도 없이 던진 말씀이었는데 작은어머니는 천천히 사과 조각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침을 삼켰다.
“아주버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듣다 보니 손이 빠른 사람이 우리 최서방이라는 것이죠? 그럼 최서방이 고모님 봉투를 슬쩍했다는 말인데, 그 장면을 보셨다는 겁니까?”
“그기 그라니까 내가 봐버려 가지고... 참, 우짜겠노.”
작은어머니는 갑자기 서울말이 아닌 사투리로 항변하기 시작했다.
“네? 아주버님, 형님, 우리 최서방이... 피가 안 섞여서 그라십니꺼. 아니 그날 테이블에 형님 조카님도 앉았다 카든데, 와, 우째서 우리 최서방만 의심하는 긴데요? 그런 일이 있었다 하면 조사를 해야지 조사를. 사람 모함해 놓고 아니면 우짤 긴데요?”
작은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누명을 쓴 것처럼 단호했다.
“우리 윤재는 그런 아가 아닙니다. 내가 열 살 때까지 업어 키운 아이라예. 그 아가 주변머리도 없고, 그런 일 꾸밀 배짱도 없는 아라, 착해 빠져가꼬, 그건 내가 잘 압니더.”
조용히 있던 엄마가 조사를 하자는 말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외사촌인 윤재 오빠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셨다. 그날 이후, 1년에 두세 번씩 치르던 명절 제사는 없어졌다. 그렇다고 사라진 봉투가 다시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갔고, 서로의 가족 행사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만 원. 천만 원도, 일억도 아니고, 딱 백만 원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가 윤재 오빠에게 따로 연락해 확인을 했는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갔는지는 듣지 못했다. 최만수 형부 때문에 작은아버지 댁과 왕래가 끊겼다 해도, 윤재 오빠네와 굳이 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식 이후 나는 윤재 오빠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말 한마디 없이 멀어진 또 하나의 친척이었을까.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