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살벌한 벌의 도시

도심 속의 휴식처 몽로얄 공원

by 스노리

몬트리올의 Mont-Royal 몽로얄 산은 공원과 멋진 호수를 가지고 있는 도심 속의 휴식처이다.

McGill 맥길 대학 근처 Peel Street 필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Pine Avenue 파인 거리와 만나는 지점에서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산을 오를 수 있는 가장 짧은 거리지만 거의 400개가 되는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들다. 매일 10km 넘게 운동하는 남편도 계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집 근처 산을 오르면서 운동하는 나는 날다람쥐처럼 계단을 올라간다.

정상에 거의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웬일로 아들이 헉헉 대면서도 바로 뒤에 붙어 오르고 있다.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버리고 Kondiaronk Belvedere 콘디아롱 전망대에 오르니 몬트리올 시내와 세인트 로렌스강이 그림 같이 펼쳐진다.


뒤이어 땀에 젖은 남편이 오르며 말한다.


“다시 돌아갈까 했는데 뒤에 4살 정도 되는 꼬마가 엄마 손도 안 잡고 오르고 있잖아. 꼬맹이한테 질 순 없잖아?”


그러고는 탁 트인 전망을 보더니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며 너무 멋지다고 감탄한다. 아침마다 운동하며 밟았던 거리가 지도처럼 펼쳐지고, 거리에서 올려다보던 레너드 코헨이 저 멀리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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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을 지르며 휴대폰 셔터를 눌러대기 무섭게 벌들이 날아든다.

나무와 꽃이 넘치고 Chalet 샬레 앞의 쓰레기통도 넘쳐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더 맹렬한 벌의 공격이 시작된다.

몬트리올은 벌의 도시이다. 서울에서는 찾기 힘든 쓰레기통이 곳곳에 넘쳐 나고, 꿀인지 설탕인지 구별 못 하는 벌들이 그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남편의 노란 가방을 꿀로 착각하는지 몇 블록을 가방에 붙어 쫓아오기 일쑤다.

코가 막혔냐고! 이건 천 쪼가리라고!


남편은 몬트리올 꿀이 모르긴 해도 맛있을 거라며, 이렇게 벌이 넘쳐나는데 꿀이 진하지 않겠냐며 엄마 선물로 사야 한다고 한다.

나중에 Jean Talon 장 딸롯 마켓에서 커다란 퀘벡산 꿀 두 통을 사고야 만다.

남편 말이 맞았다. 향긋한 허브향이 퍼지는 꿀이 아주 부드럽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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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드는 벌을 피해 전망대에 있는 샬레로 들어간다. 가지각색의 스톤들이 박혀 있는 석조형 외벽에는 긴 창문들과 대형 아치형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람쥐들이 한 마리씩 올라가 있는 목조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넓고 웅장한 홀이 나온다.

아들은 벌써 샹들리에 아래 커다란 벽난로 옆의 긴 벤치를 하나 잡고 누워 간만에 열일한 다리를 쉬게 하고 있다.

기념품 가게 옆에는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올라오느라 땀을 뺀 나는 아이스 라테를 시킨다.

예전에는 스타벅스가 아니면 아이스커피를 파는 곳이 거의 없었는데 글로벌 워밍 탓인지 K-문화 탓인지 언제부턴가 외국에서도 아이스 라테를 쉽게 주문할 수 있다.

몇 모금 마시고 구정물 맛의 커피를 쓰레기통의 벌들에게 던져 준다. 아무리 산꼭대기에서 한번 볼 사이라도 그렇지 너무 맛이 없다.


내려갈 때는 공원 쪽으로 내려간다. 계단이 없는 완만한 언덕길이다. 전망대의 많은 노인과 유모차가 어떻게 올라왔나 싶더니 편한 길이 있었다.

기분 좋은 나무 사이의 넓은 길을 내려오면 또 한 번 가슴이 트인다. 넓은 잔디가 펼쳐진 사이로 Castors 카스토르 호수가 말도 안 되는 색으로 그려진 구름과 하늘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호수에 보트를 띄우고 바비큐를 굽고 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호수도 보고 사람들도 보며 멍 때린다.


아들이 불쑥 말한다.


“여행 와서 이 순간이 가장 좋아”


내일이면 학기가 시작해 미국으로 돌아간다. 퀘벡 시티에 가면 주말에 놀러 오라고 하니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제 내 삶을 살아야지”


모두 아무 말 없이 호수를 바라본다.

구름이 빠지고 하늘이 빠지고 축구공이 빠진다...


“Oooh~~ Non!”


아이들이 뛰어 내려오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공은 점점 호수 한가운데로 쓸려 간다. 파파라고 소리를 지르며 한 보트를 향해 열심히 손짓한다. 저 멀리 보트를 타던 아저씨와 누나로 보이는 딸이 열심히 노를 저어 다가온다.

웬걸, 보트가 가까이 올수록 축구공이 멀어져만 간다. 아이들의 속 타는 탄식에 우리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긴 하지만 눈은 웃고 있다.

영리한 아저씨가 보트를 돌려 공과 보트를 평행하게 만든다. 더 이상 공이 밀려가지 않는다. 노를 이용해 공을 끌어당긴다. 공이 노에 닿지만 미끄러지기 몇 번, 마침내 공을 건진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보트가 가는 방향을 향해 뛰어간다.

잠시 후 보트에서 내린 누나는 동생들에게 무서운 눈빛을 하며 공을 바로 주지 않는다. 자신들도 잘못이 있는지 공을 내놓으라며 뭐라 뭐라 불평하는 것 같은데 공을 빼앗지는 못하고 누나의 눈치를 살핀다.

잠시 후 위편 잔디에서 누나와 함께 축구를 한다. 이번에는 조심조심 차고 있다.


한참을 앉아 쉬다가 공원 입구로 내려오자 비석들이 잔뜩 서 있는 몽로얄 공원묘지를 만난다.

유명한 아이스하키 선수와 곳곳의 거리에서 이름과 동상을 볼 수 있는 Jean Drapeau 시장, 그리고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일반시민들이 묻혀 있는 대형 공동묘지이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하나의 묘지에 비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묘지들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가족묘와 같이 하나의 묘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있는 듯하다. 우리는 비석 하나를 세우고 뒤편에 이름을 새기는데 여기는 무덤은 하나지만 비석을 각각 만들어 세워 놓는 것 같다.

입구의 대형 무덤과는 달리 외롭지 않게 모두가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의 역사가 허무하게 좁은 곳에 모여 있어 그런지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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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아들을 공항에 바래다준다. 1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에, 시차도 없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보낼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남편과 본격적인 슬로 라이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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