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의 달동네

세계 속의 한국 음식

by 스노리

해외에 나가면 한국 음식점은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유럽의 한국 음식점은 가격도 비싼 데다가 맛도 없다. 한국인의 입맛도, 현지인들의 입맛도 잡지 못한 맛이다. 신선한 현지의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유럽에서 굳이 한국 음식점을 갈 이유가 없다.

한국 음식이 한국보다 맛있는 LA나 뉴욕은 예외이다.

10여 년 전, LA 다운 타운의 호텔 옆에 있는 BCD 순두부를 먹고 가족 모두 깜짝 놀라 LA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갔었다. 해물과 고기가 아낌없이 들어 있는 진한 국물과, 한국산 두부보다 고소한 두부가 너무 맛있는 순두부집이었다. 한국 어디서도 그 정도의 순두부찌개는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들은 지금까지 뉴욕에도 있는 BCD의 –LA의 BCD가 조금 더 맛있다- 단골이 되어 순두부찌개와 LA갈비 세트를 일주일에 두어 번씩 먹고 있다.


LA가 한국인을 겨냥해 진하고 농후한 고향의 맛을 내었다면, 뉴욕은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가장 먼저 노린 곳이다.

1990년대 후반에 문을 연, SoHo 소호 거리의 Woo Lae Oak 우래옥이 그 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인 타운의 한국 음식점과는 다른 전통 한국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모양과 맛에 많은 공을 들인 한국 퓨전 음식점이었다. 20여 년 전 당시에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현지인들에게 꽤 인기 있는 음식점이었다.

최근에 한국 음식의 수준을 끌어올린 퓨전 한국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스타를 받으면서 유명해진 곳이 많다고 한다. 뉴욕에 가면 스테이크 먹느라 바빠 한국 음식점은 찾아본 적이 없지만, 다음번에는 Jungsik 정식 같은 한식 레스토랑에 가보려 한다.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인지 아니면 K-문화에 맞춰 덩달아 같이 뜬 것인지, 직접 먹어 보고 판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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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가면 그 나라 서점에 들러 베이킹이나 요리 관련 서적을 보고 마음에 드는 요리책을 사곤 한다.

몬트리올의 Indigo 대형 서점에 가서 책들을 둘러보다가 요리 서적 코너에서 깜짝 놀랐다.

‘엄마 UMMA’라고 쓰여 있는 서적을 시작으로 ‘Korean Table’, ‘Korean Home Cooking’, ‘Simply Korean’, ‘KoreaTown’, ‘Korean Vegan’ 등의 한국 요리 서적이 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다.

BBC Lifestyle의 애청자인데, 아일랜드의 유명 세프인 Donal Skehan 도널 스키헨은 고추장을 넣고 갈비를 재운 후, 거기에 곁들일 Banchan 반찬을 만든다며 오이 무침을 뚝딱 만든다.

Nigella's Cook의 나이젤라는 김치를 바게트에 넣은 김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도대체 무슨 맛일지 궁금하지만 김치를 넣은 바게트는, 음... 먹어 보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이 영화와 드라마, 음악으로 시작된 K-문화의 수혜이다.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일본 만화와 히라가나 같은 일본 문자까지 너무 예술적이라며 은근히 일본 학생을 추켜세우는 선생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초밥은 맛도 모양도 너무 고급스러워 입에 넣기가 아깝다며 ‘일라샤이마쉐’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같은 동양인으로 조금은 위축되었던 것 같다. 친한 일본인 친구는 그런 선생들이 부담된다며 어색한 일본말로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운드 팩토리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즐기며 U2와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을 듣고, 김치는 안 먹지만 깍두기는 병으로 사놓고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간식처럼 손으로 집어 먹는 친구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도쿄에서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자신을 닮은 코케시 인형이 뒤덮인 작은 아파트에서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그리며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지금은 한국문화가 대세이다. 아들은 학교에서 그런 수혜를 엄청나게 누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한창 유행할 때 학교 안에서 스피커 폰으로 뜬금없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오더니 ‘Red Light!’라는 멘트와 함께 캠퍼스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학생들이 모두 멈춰 섰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말해 주기도 한다.

학교에는 한국인의 밤이라는 클럽도 있는데 회장은 인도 학생이고 회원은 거의 외국학생들이다. 몇 번씩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하고 한국 음악을 즐긴다고 한다.

친구들이 한국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숙소가 있는 거리에는 Hooters 후터스가 있다.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자주 들러 맥주를 마시곤 했던 캐주얼 바 레스토랑이다.

갑자기 버펄로 소스 치킨이 그립다며 후터스에 가자고 한다. 버펄로 소스가 그리웠는지 크롭티에 아주 짧은 숏팬츠를 입고 서빙하는 후터스의 언니들이 그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US Open 시즌이기도 해서 테니스를 보여 주지 않을까 해 따라나선다.

이렇게 세월이 지났지만, 후터스 언니들의 옷차림은 변함이 없다.

팬츠가 더 짧아진 것 같기도 하고...


쾌활하게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주문받으러 온다. 버펄로 윙과 맥주를 주문하자 놀라며 말한다.


“치킨? 진심? 한국에서 온 거 아냐? 왜 여기서 치킨을 먹어?”


“오래전에 먹은 치킨 소스가 그리워서 왔어”


“치킨 소스? 진심? 한국 치킨 소스가 얼마나 맛있는데. 난 치킨은 셔부룩에 있는 한국 치킨집에서만 먹어”


깔깔거리며 치킨을 시켜 시원한 맥주와 먹는다.

역시 맛이 별로다. 남편도 이 맛이 아닌데라고 한다. 치킨 맛이 변한 건지 우리의 변덕스러운 입맛이 변한 건지 알 수 없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자 그 직원이 푸틴 집과 베트남 식당을 적은 쪽지를 주며, 맛집인데 몬트리올에 머무는 동안 들러 보라고 한다. 친절한 후터스 언니에게 팁을 두둑이 준다.

나중에 푸틴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가지 않았지만, 쪽지에 적힌 베트남 식당을 가보았는데 아주 맛있었다.


캐나다에도 유명한 한국 음식점이 있다. 토론토의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한국인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아들이 엄지 두 개를 들어 올렸던 달동네가 숙소 근처에 두 개나 있다.

달동네에 가려다가 떡볶이가 먹고 싶어 달동네 옆에 있는 세종이라는 한국 음식점에 갔다. 떡볶이와 오징어 제육을 시키고 남편은 LA갈비를 시킨다.

흥건한 국물에 말라비틀어진 떡들이 둥둥 떠 있는 떡볶이를 한 입 먹고 아들과 눈을 마주친다. 황급히 오징어 제육을 먹어 본다. 다행히 오징어와 양배추에서 불맛은 느껴진다.

그런데 LA갈비를 먹는 남편이 우리에게 한 입도 권하지 않는다. 불맛은커녕 양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수육 같은 멀건 비주얼의 고기를 말없이 우적우적 씹고 있는 남편의 표정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식사 후, 아들은 달동네 가자고 했잖아라고 불평하고 남편은 이렇게 투덜거린다.


“세종? 이름이 너무 아깝다. 인조나 고종으로 바꿔야 돼”


며칠 후 큰 기대 없이 달동네에 간다.

달동네라고 적힌 이발소 사인이 돌아가고 그 옆에는 오래된 담뱃갑이 진열되어 있다. 88부터 할머니가 피시던 솔과 청자, 환희까지는 낯이 익지만 그보다 오래된 것들은 처음 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철물점의 공구들이 매달려 있기도 하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60, 70년대 교과서들도 진열되어 있다. 레트로한 인테리어가 달동네라는 간판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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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달동네의 뜻을 모르고 있다. 달이 뜨는 곳?이라고 말한다. 달동네의 의미는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아들은 스크류바가 들어 있는 흥미로운 칵테일을 시킨다.

고기를 굽는 불판이 특이하다. 솥뚜껑 같은 불판 가장자리에 계란물을 붓는다. 고기 판이 달궈지고 고기를 굽는 사이 계란찜이 완성되고 콘치즈와 김치도 볶아진다. 쌀알이 살아있는 밥이 서걱거리기는 하지만, 냄새도 안 나고 부드러운 고기는 기대 이상이다.

점심인데도 빈 테이블이 없다. 대부분이 외국인들이다.

옆 테이블에 캐나다 아저씨가 아이들과 부인을 위해 열심히 고기를 굽고 낑낑대며 가위로 고기를 자르고 있다. 바비큐를 하면서 많은 고기를 구워 봤겠지만 가위로 고기를 자르기는 처음일 것이다. 가위에 맛 들이면 이제 바비큐장에서도 칼 대신 가위를 찾게 될 것이다.


만족한 배를 쓰다듬는 아들을 데리고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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