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ôte Café 코뜨 카페
숙소로 돌아오니 불이 켜지지 않는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고 전원도 들어오지 않아 휴대폰 충전도 할 수가 없다. 호스트에게 연락하니, 슈퍼 호스트답게 일하는 이를 바로 불러 준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며 관리인이 들어와 두꺼비집의 스위치를 왔다 갔다 해 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 나가고 호스트에게 연락이 온다. 1시간이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한다.
어둠 속에 누워 맞은편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쨍한 불빛을 바라보다 깜박 잠이 든다.
일어나 보니 1시간이 훨씬 넘어 있었다. 호스트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 몇 프로 남아있지 않던 휴대폰이 꺼져버렸다. 호스트와의 컨택과 여행의 중요 정보가 암흑 속에 묻힌다.
데이터를 축내고 있던 아들과 남편이 부랴부랴 어둠 속에서 보조 배터리를 찾아 나선다. 아들 것은 충전도 안 된 상태고 남편이 그나마 서울에서 충전해 온 배터리를 겨우 찾아낸다.
휴대폰에 배터리를 연결하고 호스트에게 연락하니 오늘 밤은 안 될 것 같다고 자신이 하는 다른 아파트로 옮겨 하룻밤만 지내라고 한다.
하루 묵을 옷가지만 대충 챙겨서 부랴부랴 숙소를 나선다.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몽로얄 언덕에 있는 숙소이다.
계속 화창하다가 오늘은 왜 이리 비가 오는 건지 어둠 속에서 우산을 쓰고 휴대폰을 따라 숙소를 찾아간다. 언덕을 올라 고전적인 건물에 도착해 호스트가 알려준 대로 비번을 입력하고 5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우왕좌왕하다가 비상문처럼 보이는 문 옆에 버튼이 있길래 열어보니 엘리베이터이다. 오래된 건물 비상계단에 설치한 히든 엘리베이터였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숙소는 깨끗이 손님 맞을 준비가 된, 방 세 개짜리의 아주 큰 아파트였다.
대충 샤워하고 각각의 방에서 쓰러져 버린다.
몇 년 전에 본 서바이벌 패밀리라는 일본 영화가 떠 오른다. 주인공인 후카츠 에리가 갑자기 전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해안가의 시댁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현금도 카드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롤렉스도 페라리도 자전거 타이어 하나와 물 한 병을 바꿀 수밖에 없는 물품으로 전락해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한다.
캠핑을 즐기던 가족에게 이것저것 생존의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불쑥 나타난 증기기관차에서 남편이 떨어져 죽을 뻔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해안가에 모여 고기를 잡으며 농사를 짓는 무리를 찾아 생존하게 되는 가족 이야기이다.
영화 초입부에 후카츠 에리가 모든 불이 사라진 아파트의 하늘을 바라보며 전기가 사라진 세상의 하늘이 얼마나 밝은지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도시의 빛이 모두 사라져 암흑이 되면 하늘의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만든 빛에 가려 볼 수 없던 빛을 보게 된다.
십수 년 전 뉴질랜드의 로토루아에서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별들을 본 적이 있다. 유리 위에 방울방울 맺혀 있던 물방울이 또르르 흐르는 것 같은 유성도 5분마다 떨어진다.
디트로이트 상공에 낮게 떠서 가는 비행기 아래로, 구름이 번개를 만드는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첫 번째로 잊히지 않는 장관이었다.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에서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 보겠다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백만 년은 빛나 줄 별들이 있으니 이렇게 계속 끄적여 본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른 아침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덩달아 잠이 깼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다소 시끌벅적한 동네에서 도보로 10분 들어왔을 뿐인데 찌르르 풀벌레 소리만 들릴 뿐 차 소리도 하나 없다.
숙소 바로 앞에 Côte Café라는 커피숍이 있다. 파도가 치는 해안 절벽을 그려놓은 담벼락이 예쁜 작은 카페이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 이전 숙소에 돌아간 후에도 가끔 방문해 커피를 사 먹곤 하게 되었다.
주인장은 미국인인데 미국 대학이 너무 비싸 10년 전에 캐나다로 와 대학을 졸업하고 몬트리올에 살며 친구들과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지중해를 닮은 인테리어도, 벽화도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니 디자인부터 건축까지 직접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숙소에서 내려 먹을 원두를 갈아 달라고 부탁한다. 에스프레소인지 드립용인지 물어보더니 몇 개를 추천해 향을 맡아보게 해 준다.
캐나다에 있는 내내 코뜨 카페의 절벽 벽화를 생각하며 아침마다 커피를 내렸다.
남편이 아침 일찍 오리엔탈 마켓에서 사 온 한국 컵라면을 먹고 이전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은 후 근처 Underground City 언더그라운드 시티에 있는 Time Out 타임아웃 마켓에 갔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가성비 좋은 포르투갈의 푸드 마켓이 이곳 몬트리올에도 있다. 몬트리올의 타임아웃은 해산물부터 스테이크, 베트남, 일식까지 많은 나라의 음식이 모여 있는 아주 큰 푸드 마켓이다.
각자 입맛에 맞게 빠에야를 주문하고 꽃같이 화려해 보이는 벚꽃 초밥을 먹는다.
점심을 먹은 후 쇼핑몰을 둘러보며 린트 초콜릿 샵에서 나눠주는 초콜릿 봉봉을 입안 가득 녹여 먹고 있는데 호스트로부터 전기를 고쳤다는 연락이 왔다.
숙소로 돌아가 스위치를 올린다. 불이 켜지고 어젯밤의 짜증이 사라진다.
전기 문제만 아니면 완벽했던 숙소였다. 어젯밤에는 평점 테러를 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재빠르게 응답해 주고 연신 사과하는 호스트를 용서하기로 한다. 만점은 아니지만 후한 점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숙소에 들어온 아들이 화장실 불을 끄고 안 쓰는 스위치를 내리기 시작한다.
작년 뉴욕에 수도관이 터져 1주일 동안 물을 쓰지 못하게 돼 필라델피아 친구 집으로 피난을 갔다 온 이후 물을 아껴 쓰게 되었다며, 한 번 겪어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한다.
아들뿐 아니라 우리도 이렇게 또 배워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