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뱅크시

세인트 로랑의 벽화들

by 스노리

Rue St. Laurent 세인트 로랑 거리는 그라피티 아트가 건물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예술 거리이다.

Sherbrooke 셔브룩에서 Mile-End 마일 엔드까지 이어지는 거리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모로코, 아프리카 음식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한국 등의 전 세계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문을 열어 두었던 캐나다답게 몬트리올의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미식 문화뿐만 아니라 빈티지한 소품들, 조상의 혼이 묻어 있는 앤티크 샵부터 현대적인 디자이너 패션이 가득한 매력적인 거리이다.


계단을 오르는 오래된 집들과 벽돌 아파트, 그리고 최신 건물까지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거리가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벽화들 때문이다.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온 건물들을 채우고 있는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이민자의 거리를 하나로 묶고 있다.

벽화들은 꽤나 정교하다. 낙서하듯 재빨리 스프레이 작업하는 그라피티가 아닌 다채로운 색감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벽화들이 주를 이룬다.

런던 쇼디치나 미국 브루클린의 몇 차례나 오버 페인트 된 듯한 자유분방한 그라피티들과는 또 다르다.

소심한 뱅크시가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완성한 듯한 벽화들이다.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사회적인 이슈들을 스프레이 락커로 재빠르게 완성하고 도둑처럼 도망가던 대범한 영국의 뱅크시는 이제 몇백만 달러짜리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가 남기고 간 불법적인 벽화는 건물을 유명하게 만들고 건물값을 뛰게 만들었다. 이에 건물주들이 다른 아티스트들의 오버 페인팅을 방지하기 위해 벽을 뜯어 경매에 내놓기도 하고 전시장에 걸기도 한다.

수익은 온전히 건물주에게 돌아가지만 말이다.

뱅크시는 이러한 전시를 비판하고 ‘뱅크시의 진짜 작품은 무료로 거리에서 볼 수 있다’라고 말하며, 박물관에 전시되어 우러러보는 사람들을 고고하게 쳐다보는 작품들을 조롱한다.

신랄한 비판이 담긴 뱅크시의 그라피티도 명성에 상관없이 벽화의 운명처럼 다른 이들의 낙서와 융합되고 덧칠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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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알록달록하고 강렬한 몬트리올의 벽화를 아주 맘에 들어한다. 색과 필체가 강한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너무 추상적이지 않고 그래픽적인 요소도 강한 몬트리올의 벽화가 딱 그렇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아침 운동 중에 로랑 거리 구석구석의 숨겨진 벽화를 찾고 마음에 드는 벽화의 사진을 찍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된 듯하다.

구상적인 정교한 벽화 아래 스프레이로 낙서해 놓은 듯한 벽화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누가 내 그림에 저렇게 낙서하고 덧칠하면 화날 것 같아”


“저기에 그렸다는 건 더 이상 내 그림이 아닌 거지. 누군가가 덮어 버리고 새롭게 탄생하겠지. 시간이 가고 사람도 죽고 또 누군가 태어나고, 벽화도 그런 운명인 거지”


로랑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거리 곳곳에도 캐나다 냄새가 물씬 나는 벽화들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Crescent 크레센트 거리에는 몬트리올 출신이자 나의 핸드폰 벨 소리의 주인공인 레너드 코헨의 거대한 벽화가 있다. 페도라를 쓰고 깊은 눈빛으로 몬트리올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듯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수제 초콜릿 샵과, 미용실 그리고 재즈바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아파트들 끝자락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높은 빌딩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쓸쓸한 듯 우수에 찬 코헨의 모습은 몬트리올의 상징처럼 내 마음에도 박혀 버렸다.


세인트 로랑 거리의 한 블록 옆 St. Dominique 도미니크 거리에도 레너드 코헨이 있다. 이번에는 컬러풀한 레너드 코헨이 조금 더 젊은 모습으로 약간은 거만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코헨은 떠났지만 도시 전체가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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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벽화 페스티벌이 열리면 새로운 모습들을 한 벽화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직접 벽화를 제작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곁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6월쯤 다시 올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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