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닌 프렌치의 향기

올드 몬트리올

by 스노리

느긋하게 슬로 라이프를 즐기러 왔지만, 며칠밖에 머물지 않을 아들과 몬트리올 명소들을 둘러본다.

관광객이 밀집해 있는 올드 몬트리올에서 프랑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올드 몬트리올은 몬트리올 동쪽 항구 옆의 Rue St. Maurice 세인트 모리스 거리, Rue Notre-Dame 노트르담 거리, Rue St. Paul 세인트 폴 거리를 따라 프랑스 개척지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 지구이다. 개척민들의 모피 교류를 시작으로 번성했던 마켓 플레이스는 갤러리와 상점, 레스토랑이 즐비한, 몬트리올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은 지역이 되었다.

도시 전체가 문화 유적지로 지정된 유럽의 거리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지만 이마저도 보지 못할 뻔했다. 196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올드 몬트리올도 철거될 위기가 있었지만, 퀘벡 시민들의 문화 보존 운동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승리한다. 올드 몬트리올이 철거되었다면 프랑스의 향기도, 문화도 더 이상 북미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국적인 언어와 유럽의 향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미국 소도시와 같은, 그냥 그런 도시가 되었을 것이고 퀘벡시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광 수입도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된 돌길과 역사적인 건물들을 수리하느라 여기저기 길을 막고 먼지를 내며 공사 중이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


Place d‘Armes 다름 광장 옆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전 빵과 접시의 데코레이션부터 군침을 자아내는, 와인향이 깊게 밴 프랑스 요리를 기대했지만 여기 몬트리올은 불어를 쓰는 캐나다이다.

따뜻한 식전 빵과 달근한 양파 수프로 입맛을 돋우었지만 메인 요리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달콤한 와인 소스가 올라간 부드러운 오리고기를 기대한 아들의 오리는 퍽퍽하다 못해 딱딱했고, 화이트 와인향이 배야 할 농어 요리는 너무 얄팍해서 향이 밸 틈이 없다. 남편의 스테이크를 빼고는 그다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이후 몬트리올에서 프렌치 레스토랑보다 스테이크 하우스가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프렌치 음식점은 가지 않았다.

가뜩이나 입맛도 까다로운데 실망한 아들을 위해 남편이 접시를 바꿔준다. 검증된 음식을 주문하는 남편과 달리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내가 한 입 먹고 머뭇거리면 자신의 접시를 바꿔주곤 했던 남편이지만, 언젠가부터는 ‘자기가 시킨 것을 책임져라’ 하며 자신의 몫을 맛나게 먹는다.

그런 남편이 아들과 접시를 바꿔준다. 역시 자식은 틀리다. 애정이 많이 남아 있다.


광장에선 거리의 음악가가 열심히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다. 여행용 슈트케이스에 채를 연결해 발로 밟으며 드럼처럼 박자를 맞추고 키보드를 두드려 댄다. 광장 가운데의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와 관광객의 소음이 음악가의 BGM이 되어 광장의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광장 바로 앞의 Notre Dame Basilica of Montreal 노트르담 성당은 한 때 프랑스였던 이곳에도 역시 빠지지 않고 우뚝 서 있다. 대부분의 오래된 성당처럼 역사의 치유를 위해 한쪽 날개를 붕대로 감고서 말이다.

부상당한 외관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탄성이 흘러나온다. 거대한 팝업 북처럼 예수님과 성자들이 튀어나올 듯한 성소에서 현실을 망각하고 이 세계가 아닌 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에메랄드빛이 오묘하게 감도는 천장이 금빛 제단에 반사되어 중앙의 예수와 성인들의 조각을 천국에서 내려온 빛으로 휘감는다. 하나하나 다른 빛으로 장식된 얇은 기둥들이 모여 성당을 받치는 커다란 기둥을 만들고, 기둥의 끝에서 다시 가지들이 뻗어 나와 거대한 돔 천장을 받치고 있다.

경건해질 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 우주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거대한 뿔 나팔처럼 펼쳐진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구전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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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들른 유럽의 성당들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푸른 아쥴레쥬의 벽이 퇴색되어도 아름다운 포르투의 알마스 성당보다도, 지금까지 공사가 한창인 과거와 현대가 아우러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보다도 더 강렬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노트르담 거리를 타고 항구 쪽으로 내려오면 은빛 돔이 반짝이는 Bonsecours 봉스쿠르 마켓이 보인다. 한때는 몬트리올 시장이 거주하는 시청 건물이었지만 시끄러운 마켓 주위에서 시장도 참을 수 없었는지 이사가 버리고 디자이너 부티크와 기념품 샵들이 입점해 있는 마켓이 되었다.

하지만 올드 몬트리올 거리의 기념품 샵들에 비해 같은 물건을 20% 정도 더 받고 있어 잘 비교해 보아야 한다. 관광객들도 어찌 알았는지 멋진 외관에 비해 마켓 안은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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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을 빠져나와 Old Port 올드 포트 쪽으로 나오면 여느 관광지와 같은 거리를 만난다.

댕그라니 홀로 서 있는 시계탑과 유원지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가 St. Lawrence 세인트 로렌스강에 담겨 있고, 대관람차의 공중을 가르는 집라인, 일렬로 늘어서 있는 기념품 가판대들과 아이스크림 트럭이 관광객을 유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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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우뚝 솟은 번지 점프대에서 청년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양손을 옆으로 펴고 떨리는 기색 없이 –옆에서 안 봐서 모르겠지만- 멋지게 점프하는 모습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다.

100만 원 주면 뛰어내리겠다던 아들이 점프하는 청년을 보더니,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며 500만 원으로 값을 올린다.

몬트리올의 새파란 하늘이 빠져 있는 깊은 강이 청년들의 두 팔에 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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