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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Dora Jun 28. 2023

퇴사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냐고?

퇴사 후 10개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자답

딱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지만 가끔 혼자서 "그래서 퇴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어떡하나 싶어 답변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가 내린 결정에 순도 100% 만족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단언하고 싶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퇴사 후의 삶은 낭만적인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일 것 같지만 현실은 고단한 다큐멘터리의 삶이다. 


다달이 나가는 보험료에, 몸은 주기적으로 꼭 어딘가가 돌아가면서 아프고, 계절은 왜 4계절이나 있는지 추우면 가스비 더우면 전기세. 그리고 퇴사 전에 들어놓은 적금에 다달이 붓느라 나가는 돈, 또 식탐은 왜 이리 갈수록 늘어만 가는지 아낀다고 아껴도 어마어마한 식비... 퇴사 전엔 나 하나 먹여살리는 게 그리 어렵겠어? 싶었는데 한 사람분 유지비용이 꽤나 크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바빠서 정작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꿈을 향해 달려갈 연료가 늘 부족한 것 같다. 다들 이런 걸까? 하는 불안감과 조바심도 슬며시 들 때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중간 점검을 해볼 때가 된 것 같다.



퇴사 후 10개월,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삶의 연속


1. 사춘기도 아닌데, 앞으로 뭐하며 살아야할지 늘 고민한다


작년부터 올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사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떤날은 이게 하고 싶다가, 또 다음날은 다른 걸 하고 싶다. 어떤 날은 이걸 하면 너무 잘 할 것 같은데 다음날은 또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이런 저런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보면 마침내 드는 회의감이 있다.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인가?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걸 기가막히게 찾는다고 한들 그걸로 꼭 먹고 살아야 할까? 아니 애초에 그럴 수가 있는 건가?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면 좋겠지만 '하고 싶은 걸 한다'라는 문장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고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만 들릴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까지 벌고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사실 정말정말 소수에 불과한데, 소수이기 때문에 회자되고, 눈에 띄고, 그래서 자꾸만 그런 이상향을 바라보며 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시나 지나치게 깊어지는 생각은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런 생각을 종료한다. 생각만 하면 뭐해, 실천을 해야지. 그러고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 또 반복. 이렇게 10개월간 루프물에 갇힌 것처럼 반복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진다. 제발 나만 이런 게 아니기를.......



2. 비교의 대상, 비교 당하는 삶


거처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긴 게 신의 한수란 생각이 들 때는 가끔 부모님과 만나야 할 때, 그리고 옛 친구들(특히 현직 공무원인 친구들)을 만나야 할 때이다. 엄마는 멀리 살아도 가끔 뭘 준비하고 있냐고, 자격증이라도 땄느냐고 연락을 하시곤 하는데 얼굴 마주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피곤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름아닌 일주일 전, 시력교정술을 받느라 서울에 갔을 때 부모님 댁에 갔는데 하필 그 날로부터 일주일 전에 온가족이 모이는 제사가 있는 날이어서(애초에 서울에 살았으면 제사 참석부터가 시련이었겠음을) 엄마가 온갖 친척을 다 만나고 최근 뭐 하고 있는지 조사를 마친 후였다. 8살 어린 사촌동생은 어디 금융계에 취직을 했고, 10살 어린 사촌동생은 CPA를 준비중이고, 또 10살 어린 사촌동생은 유럽 어디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으며, 나와 동갑인 사촌은 어디 대기업에 이직을 성공해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고, 심지어 얼굴 한두번 본 게 전부인 사촌오빠의 부인은 변호사 시험 합격해서 어쩌구저쩌구...


유대감도 없는,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TMI를 듣는 피곤함은 차치하더라도 엄마가 굳이 내게 그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대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으려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난 나만의 길을 가겠다! 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결국엔 '아, 걔는 그때 변변찮은 일을 하더니 지금은 잘 나가네. 나랑 완전 반대가 됐네'라는 생각을 비록 0.1초 떠올렸더라도 떠올리지 않은 게 될 순 없으니 영 찜찜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좋든 실든 비교를 당하고 당했기 때문에, 내가 내 자아와 주관을 가지게 됐을 때부터 의식적으로라도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도 또 아무리 못나가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도 나와 비교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살았어도 그런 건 쉽게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후 '그래 비교를 해서 무얼 하나', 하고 마음을 다 잡아봤자 이미 든 생각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이렇게 그 비교 일화를 구구절절 쓰고 있지 않은가. 


비교를 당하면, 자꾸만 조바심이 드는 거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퇴사를 괜히 했나? 나도 퇴사하지 않고 내 동기들 승진할 때 같이 승진했으면 부모님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나한테 쟤가 그랬대, 얘가 저랬대 하는 얘기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 딸이 이번에 승진했대. 엄청 빨리 승진했지?" 라는 이야기를 자신만만하게 늘어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과거에 이럴걸, 저럴걸, 그러지 말걸 하는 생각들을 하기 제일 싫어하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비교행위. 너무 유해한데, 어떻게 끊어 낼 방법이 없네? 최대한 비교하려 드는 사람들을 덜 만나는 수밖에.



3. 노동자로서의 자아


나는 공무원이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픈 지위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노후 걱정은 없겠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나름의 화이트칼라.


지금은 몸을 쓰는 노동자. 그래서 근로자의 날에 일하면 돈을 더 받는다. 원하면 (그리고 있다면) 노조에도 가입할 수 있고 정당에도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 노후는 불안하다. 경력은 물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SNS, 유튜브 등을 슥슥 훑다보면 심심찮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 여성 노동자, 최저임금, 뭐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한 글이나 영상을 접하게 된다. 전에는 '에구구 어쩌나' '어휴 바뀌어야지''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최저임금은 올라야지'정도의 가벼운 감상으로 끝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너무도 뼛속 깊이 와닿는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구제받지 못하는 현실, 노동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게다가 뭐? 주휴수당도 사라진다고?), 불안전한 지위, 깜깜한 노후. 물론 공무원이었을 때도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직업의 안정성, 노후보장(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같은 것들 때문에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당장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부당한 일을 겪어 자진 퇴사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하기 두렵다. 


사실 요즘 나는 부족한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자 투잡을 하고 있는데 그중 주말에만 하는 일터에서의 처우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아 잠자코 하라는 대로 하고 적당히 침묵하며 버티고 있다. 물론 그거 그만 둔다고 해서 당장 굶어죽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두기가 쉽지는 않다. 이 정도는 약과고, 앞으로 얼마든 이만한 일- 혹은 이보다 더 심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형체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직서 낸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삶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표를 던진 것에 후회는 없다. 퇴사를 하고 이사를 해서 생긴 행운같은 일들도 많다. 부산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나의 생활 루틴, 새로운 경험들 모두 값지니까.


앞으로 뭐 하고 살까에 대한 불안은 희망이나 설렘일 때가 많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 삶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60대40의 비율일지라도 더 많은 건 많은 거니까)


이거 해볼까? 저걸 해볼까? 그렇게 미래를 생각할 때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같고 설레기도 한다. '와 나 이제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잖아?'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이거 할까, 저거 해볼까에 스트레스보다는 그 삶을 그려보며 즐거운 공상에 빠질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잘리면 어떡하지? 노후는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역시나 '그래, 건강하다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라는 막연하게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누군가 현실감각이 없다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언젠가는 나의 이 밑도 끝도 없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할 뿐.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람을 더 노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에도 동의는 하지만 무작정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같은 상황이어도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불안을 설렘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상황을 더욱 의연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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