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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i Oct 24. 2022

제 탓이 아닙니다

눈치 없이 눈치 보는 사람을 탈피하며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그 어떠한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도 그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가톨릭의 고백 기도문에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하는 관용어구가 들어갑니다. 여기서 "제 탓"을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제 탓"임을 고백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면, 하느님은 그것을 용서하여 주시기에 가감 없는 고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의식은 늘 신을 향해서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의식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이 잘못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조직의 수장은 그 조직에서 일어난 모든 불미스러운 일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저도 죄의식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가족이 힘들어하면 그것이 제 잘못인 것 같았고, 제가 속한 곳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제가 책임이 있다고 느꼈으며, 심지어 주변의 누군가가 얼굴만 찌푸려도 '내 존재가 저 사람을 언짢게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필요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눈치'의 측면에서도 그다지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의 죄의식에 매몰되어 있었으므로, 제가 눈치를 보았던 것은 실상은 남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눈치만 보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그것은 저의 죄의식만 강화시킬 뿐, 그 '눈치를 봄'으로 인하여 제가 남들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죄의식도, 눈치도 조금은 덜어내려 합니다. 제가 때로는 남들에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합니다. 물론 남들에게 해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뉴스를 보다 보니 제가 지금껏 짊어진 죄의식이 너무 과분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정이란 미명 아래 착취를 정당화하는 기업의 주인들, 남의 돈을 쥐고서도 갚지 않는 것에 당당한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섣부른 말 한마디로 수십조 원의 돈과 수많은 기업의 목숨줄을 경각에 달아두신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편안히 잠을 주무실 텐데, 저의 하찮은 죄의식은 이제 조금은 덜어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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