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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Aug 05. 2024

프리즘과 함정

음악 일기 / 후쿠오카 / 2018.1.28

새벽 세시쯤이었던가. 잠에서 깨어 무의식적으로 이어폰을 찾았다. 그리고, bon iver For Emma, Forever ago 앨범을 찾았다. 새벽에는 음악이   선명하게 들린다. 주변이 고요하고, 나의 내면도 고요하기 때문에. 이런 천재적 음악가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좌절과 경외심, 그리고  한 번의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어린 시절,  작곡이라는 것을 시도해  , 만드는 동안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만든 곡이 완성되고 나면, 죄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멜로디의 곡들이 되곤 했다. 가사 또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유치한 가사를 좋아한다.


어쨌든, 그래서 '아, 정말 나만의 것을 만들려면,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야 했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퀸의 특정 노래들을(love of my life나 Bohemian rhapsody) 귀에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자장가를 들었는데, 그러면 다시 태어나야 하나'라는 생각에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아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구나'를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말 많은 음악을 들어서 그 모든 멜로디들과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믹스되고 흐려지게 만들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나는 여전히 많은 음악을 듣는 편에 속하지 못한다. 어떤 음악가나 곡에 꽂히면 그것만 주구장창 듣는다. 음악가로서의 길을 계속 가도 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면, 나는 내가 프리즘인가 아니면, 통유리인가를 생각해 본다. 똑같은 빛이 통과한다고 해도, 프리즘은 빛을 왜곡하고, 방향을 바꾸고, 색깔을 바꾼다. 하지만, 통유리를 통과한 빛은 여전히 그 빛 그대로다. 프리즘이어야만, 이것을 계속할 수 있다.


후쿠오카의 나카스카와바타와 덴진역 사이에는 뉴욕의 맨해튼 모양의 작은 섬 하나가 있고, 그 섬은 추측건대 밤의 섬이다. 그리고, 그 밤의 섬을 잇는 시장통의 각종 가게들 사이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그릇 가게 하나가 있다. 나의 유일한 사치는(유일한이란 말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지만) 그릇에 국한된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컵 모양의 그릇. 그 그릇가게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한 동으로 된 코퍼. 실은 동행한 친구가 발견한 것이지만... 아무튼 노부부는 노세일 노세일을 외치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 이유가 그 물건을 아껴서가 아니라 먼지가 쌓이고 오래돼서 팔만한 것이 못 된다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 예쁜, 가격 택을 떼낸 부분만이 반짝이는, 코퍼를 헐 값에 사 왔다.


오늘 아침 그라인더 아래 오래전부터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퍼를 보며,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을  동으로 만든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컵의 아랫부분에는 약간의 홈이 둘러져 있어서, 커피를 갈아서 드립퍼에 부으려고 하면, 커피가루가 홈에 걸려 말끔히 드립퍼로 부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컵을 손바닥으로 톡톡 치다 보면, 여기저기 커피가루가 쏟아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래된 코퍼를 좋아하지 않을  없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좋아하면 오점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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