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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y 18. 2024

도쿄는 비

음악 일기 / 도쿄 / 2017.10.14

인천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타다시에게 일본 여자들은 화장을 안 했을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통관에서 도착지 주소를 기입하지 않아 한 번 저지를 당한 뒤, 지문 인식기 앞에 섰다. 지문인식기 하나당 한 명씩 서 있는 노인들이 보인다.


새로운 곳에 오면, 약자의 위치에 놓인다. 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의 이동을 통해 나는 새삼 문자와 색에 고마워하게 됐다.


게이세이 버스를 타고, 도쿄역으로 향했다. 와이파이는 있으나마나 했고, 그저 사람들의 수많은 뒤통수를 쳐다보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버스의자 머리 부분에는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문자가 일미중한국어 순으로 쓰여있었다. 한국어로는 정확히 '안전벨트를 닫아주세요'라고 쓰여있었다.


밤길, 특히 밤의 고속도로는 어디나 비슷하다. 길은 앞으로 쭉 뻗어 있고, 반대편은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처음에는 가끔씩 불빛들이 보이다가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좀 더 많은 빌딩의 실루엣과 불빛들이 창 밖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사함 때문에 나는 달리는 동안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불안은 멈췄을 때,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헤매다, 숙소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도쿄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료코구역 앞에서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다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아, 뒤에 서 있던 여자에게 스미마셍 하며 길을 물었고, 공교롭게도 여자와 가는 방향이 비슷해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좋은 여행 되세요를 영어로 힘껏 외치며 사라졌다.


손톱만 한 크기의 숙소에는 창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자재의 화학성분 때문인지 머리가 아팠다. 숙소 바로 옆 코너에 있는 라면집에 들어가, 바디 랭귀지로 라면 하나를 시켰고, 으레 맛있고 짠 일본 라멘을 순식간에 비우고 나왔다. 


눈앞에 바로 세븐일레븐이 보인다. 타국의 군것질거리 구경을 한참 하다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담배 한 갑과 생수 한 병을 사들고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추적추적 숙소를 향해 걸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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