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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Mar 05. 2023

3. 추억을 나누는 기쁨과 아쉬움

나눔


첫 아이를 가진 기쁨은 엄마의 소비로 연결되지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주위에서 많이들 조언하지만, 내 아이를 위해 물건을 사는 것 또한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에 신나게 즐겼습니다. 참고 또 참으며 소비했지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에요. 작고 예쁜 아이의 옷은 얼마나 탐이 나던지, 고백하자면 아기를 가지기  전부터 아기 옷을 사 모았어요. 나중에 언젠가 쓸 일 있겠지, 아기 낳은 친구들한테 선물해야지 등등 갖은 이유를 붙여서 말이에요. 덕분에 몇 번 입지 못하고, 상표가 그대로 붙은 채로 버린 옷들도 많아요. 엄마의 인형놀이를 위해 낭비된 것들이죠. 일종의 수업료였다 생각해요.


임신 8개월을 꽉 채우고 프랑스로 여행을 갔어요. 임신기간 내내 논문을 쓰느라 책상에만 앉아있었는데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동해 소비욕구가 폭발했어요. 아기 피부에 좋다고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프랑스 브랜드를 찾았어요. 아기 로션이며 목욕용품, 엉덩이 크림 등을 넉넉히 사들고 왔죠. 나중에 알고 보니 영국 슈퍼에서도 팔고 있는 제품이었어요. 더 우스운 건 갓난쟁이 목욕에는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지수는 엉덩이 크림이 필요하지 않은 살결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였어요. 덕분에 크림은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채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죠. 얼마 전 창고에서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 둔 크림을 더 찾았어요. 우습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름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커버리는 아이의 작은 옷과 신발, 장난감과 갖가지 살림살이들은 항상 생겨났고 정리가 되지 않는 짐들과 엉켜 살았던 것 같아요.

작아진 옷가지들 그중에서도 제법 괜찮은 것들은 주변 친구들과 나누었어요. 추억이 담긴 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내 기억 속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자나요. 이 옷은 지수가 참 좋아했지, 이 옷은 참 잘 어울렸어, 이 신발을 신고 참 많이 걸었지. 이랬지 저랬지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한 번 기쁨을 나누게 돼요. 사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나누는 데에도 고민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얼 바라고 나눈 게 아닌데 뭐라도 꼭 챙겨줘야 마음이 편한 친구도 있고, 물건을 깨끗이 쓰고 다시 돌려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내 생각에는 작아진 옷, 안 쓰는 장난감을 나누어 쓴다는 좋은 마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요. 내가 으레 받았던 호의들에 나는 충분히 보답을 했던가? 돌아보게 되었죠. 나눔을 통해 또 한 번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배웁니다.

아이의 장난감을 고를 때도 엄마는 전문가가 되죠. 이게 좋을지 저게 좋을지 비교 분석하죠. 특히 부엌 놀이를 좋아했던 지수였기에 이것저것을 고민해 사 모았어요. 각종 음식 재료들은 겹치지 않게 하고 플라스틱보다는 나무나 천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선호했죠. 믹서, 쥬서, 토스터와 커피 머신 등을 갖출 것을 제법 갖춘 귀여운 컬렉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추억이 많아요. 아침이면 커피부터 찾는 엄마. 엄마를 잘 아는 아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얼른 장난감 컵을 꺼내 들고 커피를 한잔 내려주었어요. 엄마가 피곤해 보이거나 짜증이 많은 날은 ‘엄마 커피 마실래요?’라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었죠. 치즈를 싫어하는 지수의 취향과 오이를 싫어하는 엄마의 취향을 존중해 사이좋게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었어요. 어느 날 식탁에 가지런히 차려져 있던 아들 표 아침상은 오래오래 기억될 거예요. 하지만 부엌 놀이 장난감은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기차와 레고에 점점 밀려났어요. 물론 가지고 있으면 또 어느 날은 꺼내어 놀겠지만 그러기엔 장난감은 너무 많고 가지고 놀 시간은 점점 줄었죠. 큰마음을 먹고 부엌 놀이 장난감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아이와 상의해서 부엌 놀이 장난감이 필요한 친구가 누구일지 함께 고민해 봤죠. 사실 멀리 보내지는 못했어요. 아랫집 사는 이웃 소니아의 둘째 이자벨라가 생각났어요. 그런데 물건을 차곡차곡 담아 정리하는 마음이 왜 이렇게 슬프고 아쉬운지요. 친구에게 전해주면서 “나랑 지수가 정말 좋아했던 장난감이야. 추억이 많아. 너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아.”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녀는 “그 안에 담긴 너의 사랑이 느껴져, 추억을 나누어 줘서 고마워”라고 답했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서 버렸어요. 아이와의 추억, 사랑의 마음으로 모았던 내 수고를 알아주는 친구가 고마웠어요. 사실 그저 장난감일 뿐인데,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쉽고 또 아쉬워서였겠죠. 추억을 알아주는, 그리고 나눌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마땅히 물려줄 곳을 찾지 못 한 물건들은 채러티 숍으로 보내요.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 채러티 숍은 사람들이 기부한 다양한 물건을 팔아요. 주말 아침에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가져다 좋은 물건들이 쌓여있기도 해요. 영국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잡동사니들을 모아놓은 가계가 그저 신기해, 오며 가며 들어가 구경을 했어요. 기부로 모인 물건들이지만 잘 보면 보석 같은 물건들을 득템 할 수도 있죠. 동네마다 다른 분위기와 다채로운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특히 아이들 물건을 모아 놓은 FARA라는 곳은 아이들의 옷이나 신발, 아기 용품부터 가구까지 육아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중 한 곳은 책으로 특화되어 있죠. 이 책방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사고는 싶지만 사악한 가격 때문에 선뜻 담지 못했던 책을 발견했거든요. 한국에서도 많이들 읽죠? 옥스퍼드 리딩트리. 영국 초등학교에서도 읽기 연습으로 많이 쓰는 책이에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얇디얇은 책 한 권이 꾀나 비싸요. 전집으로 사려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죠. 이 책을 발견하고는 살짝 이성을 잃었어요.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던 전집을 쓸어 담아왔지요.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죠? 엄마가 마음먹고 들인 전집은 가끔 아이의 취향과 맡지 않을 수 있잖아요. 생각보다는 잘 읽었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읽기를 배우더라고요? 결국 그 전집은 아주 양호한 상태로 또 다른 동생에게 물려주었답니다.

지수가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다양한 방식의 나눔을 경험하고 있어요. 학교는 때마다 여러 자선행사를 열어요. 거창하지 않아요. 집에서 직접 구운 케이크를 팔거나,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모으거나, 여러 나라의 음식을 나누기도 하죠. 영국에는 ‘레드 노즈 데이(Red Nose Day)’가 있어요. 슈퍼에서도 쉽게 우스꽝스러운 빨간 코를 1파운드에 살 수 있어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해요. 빨간 코 광대가 되어 재미있게 놀죠. 모은 수익금은 에티오피아에 전달된데요. 하비스트 페스티벌, 크리스마스, 이스터 모두 함께 즐기는 특별한 날에는 꼭 주변의 이웃들을 생각해요. 갖가지 생활용품을 모으거나, 아주 작게는 초콜릿이라도 모아서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죠. 얼마 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고는 각 나라 출신 엄마들의 분위기가 냉랭해졌어요. 당연히 그럴 테 죠. 슬프고 또 슬픈 일이에요. Year 6 아이들은 학교에서 작은 리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아침저녁 등하교 시간에 학교 마당에서 리본을 팔아 수익금을 모았죠.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 슬픔에 대해 느꼈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았겠죠. 작지만 마음을 모아 누군갈 돕는다는 걸 일상 속에서 배우고 있었어요.


학기가 시작하면 학교 마당에 작아진 교복을 팔아요. 여름방학 사이 쑥 커진 아이들. 덕분에 작아진 옷들이 모이죠. 적당한 사이즈를 골라 집으로 가져와 빨려고 보면 옷마다 다른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나요. 교복에 쓰여있는 이름을 확인하며 이건 누가 입던 바지구나, 이건 누가 입던 셔츠구나 하면서 웃게 되죠. 엄마들도 학교를 위해 운영을 위해 개인적으로 모금활동을 하기도 해요. 마라톤을 하기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하죠. 그럼 주변에 지인들과 학교의 엄마 아빠들이 이 모금을 후원해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모금활동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이건 일종의 뇌물이 아닐까? 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죠. 처음에는 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집에 굴러다니던 동전이 모여 제법 큰돈이 되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니 벌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데 별거 일 수 있구나 싶어요. 나눔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아이들을 보자니 못난 생각을 가졌던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지금은 뭐 문화의 차이로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은 학교에서 재활용에 대해 배우나 봐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작아진 옷, 더 이상 놀지 않는 책과 장난감을 골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걸 전해 줄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찾기 시작하더라고요. 배운 걸 열심히 생활에 적용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오늘도 반성합니다. 주변을 살피고, 환경도 보호하는 마음을 저도 생활에서 실현시켜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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