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길어야 2~3년 뒤면 다시 한국에 돌아갈 거라 생각했어요. 여행자처럼 살았죠. 왜 이렇게 불편한 것 투성이냐며 한국의 편리함을 그리워했어요.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영국이라는 나라에 조금씩 정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가지면 한국처럼 임산부 배지를 받아요. 그 배지를 달고 외출할 때면 기분 좋은 일들이 종종 생겼어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의 배려와 온화한 미소를 느꼈지요. 학교 가는 길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은 길에 앉아있던 노숙자 한 분이 예정일이 언제냐며 물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는데. 그분은 친절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논문을 쓸 때는 만삭의 임산부였는데, 교수님은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며 마감 기간을 늘려주기도 했어요. 새로운 생명에 대한 배려와 환영을 표현해 주는 영국의 문화와 사회에 조금씩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호르몬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를 가지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같은 아파트에는 이제 막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집이 많았죠. 그리고 나의 삶의 반경을 넓혀준 고마운 친구 자스민을 만났어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요? 이 동네 모든 인맥은 자스민으로 통합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 청소부 아주머니, 하물며 동네 강아지 사정까지도 줄줄이 꿰고 있는 마당발 친구죠.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반갑게 인사하고 진심으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요. 영국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나의 오랜 편견을 깨트려주는 친구였어요.
우린 함께 유모차를 밀고 여기저기를 다녔어요. 날이 좋으면 함께 놀이터에 가거나 박물관에 갔죠.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친절한 그녀는 나의 엉망진창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는 나의 생활영어 선생님이기도 했어요. 영국 엄마들의 육아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삼삼오오 모여 공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적당한 수업을 찾아 함께 듣기도 하고, 집에 모여 공동육아를 하기도 해요. 아이들의 생일이면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하고, 부활절, 핼러윈,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이벤트죠. 영국식 문화, 놀이. 찐한 문화적 경험은 그녀를 통해 얻었어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영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긴장을 좀 사그라지게 해 줬죠. 사실 이 친구는 저만큼 예민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죠. 위생에 철저하고 청소를 좋아해요. 눈물도 많고 감정 기복도 심해요. 저와 닮은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더 가까워졌어요. 육아의 패턴도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도 비슷해서 서로를 지나치게 배려할 때도 있었죠. 천천히 가까워졌지만, 서로의 적당한 거리를 알아요.
가족이 그립고 반복되는 무거운 일상에 지쳐있을 때 이 친구를 붙잡고 엉엉 울었고,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아빠를 돌보는 친구의 슬픔을 같이 나눴죠. 내 생일이면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생일 축하한다며 한글 문자를 보내주는 친구, 우울하거나 피곤해 보이는 날 알아봐 주는 친구, 자신의 고민과 속 이야기를 나눠주는 친구. 그녀를 만난 건 영국 생활에 큰 축복이에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고, 같이 저녁거리를 고민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해요. '널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한국에 갔을 거야.' 정말 그랬을 거예요. 한국 사람들끼리 나누는 정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한국인 이웃들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편안함이 있다면.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에선, 아! 내가 정말 이 나라에 살고 있구나, 나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거든요. 우리는 코비드를 함께 겪으며 더 단단해졌어요.
영국은 한동안 봉쇄령으로 모든 일상생활이 멈춰있었어요.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교육했죠. 엄마들이 반쯤 미쳐가고 있을 때쯤. 동네 엄마들의 단체 톡 방이 생겼어요. 이름하여 ‘Social Distancing Drinks’. 누군가는 샴페인을, 누군가는 초콜릿을 들고 밤 10시에 아파트 가든에 모였어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잘 살고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눴죠.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몇 명의 형제자매가 있는지, 언제 영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떤 출산의 경험이 있었는지, 신랑은 어떻게 만났는지요. 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 사생활에 관심 없다고 누가 그랬나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정신을 못 차렸죠. 답답하고 끔찍했을 수 있는 시기인데 주변의 이웃들 덕분에 재미있는 추억이 가득해요.
옆집에 놀러 가 밥을 얻어먹고, 여름이면 수박 한 통을 잘라 모두 나눠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육아 초보에, 가족도 없이 애를 키우다 보니 항상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가까이 지내는 동네 언니, 친구들의 육아 방식을 보며 내 육아 스타일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처음 일레인 할머니를 만난 건 동네 칠드런 센터에서였어요. 매주 어린이를 위한 무료 수업이 진행되는데 지수가 돌 즈음부터 이곳을 방문했죠. 할머니는 손녀딸 쌍둥이를 돌보고 계셨어요. 같이 모여 노래도 부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간식도 나누어 먹었어요. 눈에 띄는 은발의 할머니는 누가 봐도 이 동네 반장으로 보였죠. 칠드런 센터 직원과도 아주 가까워 보였고 다른 엄마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어요. 초보 엄마인 내가 쭈뼛거리며 있을 때 반갑게 인사해 주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지 뭐예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웠고 줄줄이 손자 손녀 5명을 돌봐온 그녀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레인은 나에게 육아 멘토 같은 존재예요. 불편한 상황에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하는 나에게 침착한 육아를 몸소 보여주었어요. 아이가 넘어져 울더라도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대처하는 모습, 아이의 주위를 환기하는 스킬,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탐험할 수 있게 지켜보는 여유 등을 말이죠. 아이들끼리 뛰며 놀다 넘어진 어느 날이었어요. 할머니의 마술 손가락이라며 침을 쓱 발라 무릎에 쓱쓱 문질러주셨죠.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셨던 ‘할머니의 약손’이 떠올랐어요. 이런 건 만국 공통인가 봐요. 2019년 12월 겨울, 한국은 한창 코비드 바이러스가 유행일 때. 일레인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귀여운 쌍둥이와 같이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기사를 통해 코비드를 체감하며 우리는 ‘파스타랑 휴지라도 좀 사두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을 나누고 헤어졌어요. 그러고는 한동안 만날 수 없었어요. 두 번의 락다운을 지나고 21년 여름 쌍둥이의 생일파티에서 다시 만났어요. 건강하게 잘 지냈냐며 꼭 끌어안아주는데 엄마 품 같았어요. 영국식 인사가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주책맞게 시리, 눈물이 핑 돌았죠.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육아시간은 조금 덜어졌어요. 대신 차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가족 이야기, 학교 이야기, 일상의 재미를 공유하는 너무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내 인생에서 맨체스터에서 온 할머니 육아 동지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영국에서 만난 모든 육아 동지들이 이렇게 따뜻했던 건 아니에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 묘하게 느껴지는 텃세. 사람 사는데 가 다 비슷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고단한 영국살이를 위로해 주려고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 같은 인연들이 주변에 있다는 거예요.
어느 날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아기가 유모차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당황한 엄마가 아기를 달래고 있었죠. 한참을 울어대던 아기는 엄마가 안아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췄어요. 커피를 받아 든 엄마는 한 손에는 아기를 안고선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어요. 설탕을 찾고 있었죠. 우유 거품 위에 설탕을 한 스푼 듬뿍 뿌리고는 설탕을 그대로 다시 떠먹더라고요. 그것도 두 번이나.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어요. 지수도 저맘때 유모차에 앉기 싫다고 울어댔었지. 나도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유모차를 끌고 여기 자주 왔었지. 안쓰러운 마음 반, 좀 여유로워진 선배의 마음 반. 그러고는 대화를 건넸어요. ‘나도 5살짜리 꼬마 아이가 있는데 말이야, 내 아들도 고맘때 나이에 유모차에 앉기 싫다고 울고불고 그랬어.’ 아기 엄마는 방긋 웃으며 이야기를 쏟아 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앉아있었는데, 요즘 자꾸 운다며 말이죠. 모든 엄마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때면 수다쟁이로 변하잖아요.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지금의 날 보라며 아들은 학교에 가 있고 혼자 커피 마시고 있지 않냐며, 금방 크더라는 위로의 말을 나누고 헤어졌어요. 한 손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커피를 마시며 가는 초월적인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말이죠. 세상의 모든 육아 동지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