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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Feb 26. 2023

1. 축하해

생일

이제 곧 지수의 6번째 생일을 맞이해요. 아이를 뱃속에 품고 기다린 열 달. 꿈틀거리던 내 배. 뒤뚱거리던 나. 그리고 아이를 처음 품에 안고 아까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 순간. 아직도 그때의 그 마음과 기분이 생생한데 벌써 여섯 번째 생일이라니 믿기지 않아요. 내가 배 아파 낳고, 또 매년 수고로이 축하하는 내 아이의 생일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일 챙기는 게 그렇게 내키지 않았어요. 보통의 날처럼 보냈죠. 대학 때 읽었던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는 원주민들이 생일 축하방식에 대한 일화가 나와요. 성장의 순간을 생일이라 여기고 축하해 주었죠. 꾀나 맘에 들었어요. 그 이후로 태어난 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생각이 달라졌어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었죠. 축하하고 축하받아야 마땅한 날이에요. 노래 가사처럼 나의 세상은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뉘었어요.

지수의 첫 번째 생일을 준비했어요. 소란스럽지 않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진 한 장 남기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했어요. 가족과 멀리 떨어진 런던에 살고 있는 그  쓸쓸함을 가리고 싶어 일부러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생일 전 날 저녁부터 집을 정리하고 식탁 테이블을 깨끗하게 비웠어요. 지수가 좋아하는 인형, 장난감 기차, 꽃병을 주섬주섬 모아 테이블 위에 세웠어요. 생일날 아침에는 집 앞에 있는 새벽 꽃시장에 갔어요. 하얀 안개꽃, 푸른 유칼립투스 화려하지 않지만 취향껏 골랐죠. 색색의 과일 조금과 엄마표 케이크, 그리고 촛불을 준비했어요. 런던에서 가까이 가족처럼 지내는 지인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고 지수 사진 몇 장, 우리 사진 몇 장을 남겼어요. 이런 기쁜 날이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날 밤 신랑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첫 생일의 모습이 조금은 달랐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웃는 사진도 한 장 남았겠지? 한복이라도 한 벌 사둘 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과 넋두리가 이어졌어요.


첫 번째 생일이 지나고 점점 시간이 흐르고서는 아이가 점점 생일을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날의 양상은 엄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 방향으로 흘러갔지요… 영국사람들에게 아이의 생일파티는 정말 큰 이벤트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장’이었죠. 파티를 통해, 파티에서 영국을 배웠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어울리고 살고 있는지, 뭘 먹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노는지. 외국인 엄마인 나는 모든 게 다 처음이고 신기했어요.

동네 친구들, 같은 반 친구들의 생일파티까지 챙겨 다니다 보면 일 년 52번의 주말을 생일파티로 흘려보내요. 어떤 날은 오전 오후 두 번의 파티에 참석하기도 해요. 파티에서 만난 같은 반 엄마는 ‘다음 주는 파티 없는 주말인데 어디 놀러 가?’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어요. 생일파티 초대장은 늦어도 2주 전에는 돌려야 하고 참석여부를 확인하죠. 서로 일정이 겹치지 않게 눈치싸움도 하고, 초대를 받았나 못 받았나로 감정이 상하기도 하더라고요.  


아기가 어릴 때의 생일파티는 다 같이 모여 즐기는 어른들의 파티였다면 아이가 점점 크고 취향이 생기면서 아이의 취향에 따라 파티의 주제가 달라져요. 엔터테이너라고 하는 이벤트 전문가를 초청하는데 비눗방울, 축구, 디스코, 집라인 등 아이의 취향에 따라 파티의 주제는 무궁무진하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동안 간단하게 허기를 채워줄 과자와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어요. 음식을 준비할 때도 견과류, 우유, 글루텐 등 여러 알레르기를 고려해야 하고, 종교적 이유로 먹을 수 없는 음식도 미리미리 신경 써야 해요.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어른들은 간단한 핑거푸드나 샴페인을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어요. 오늘의 엔터테이너를 평가하기도 하고, 그동안의 전하지 못한 서로의 소식들을 나누기도 하죠.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고 있는 상황에도 엄마인 저의 레이더는 풀가동 중이에요. 흥분한 아이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사고가 나는 것도 순간이니까요. 오늘의 엔터테이너를 살피기도 하고 음식과 간식은 뭘 준비했는지, 답례품은 무엇인지도 눈여겨봐요. 다음번 지수의 생일파티에 참고해야 하거든요. 애들도 실컷 놀았고 엄마 아빠의 수다도 소잿거리를 잃어갈 즈음, 생일파티에 하이라이트 케이크가 등장해요. 아이싱을 듬뿍 올린 달콤한 케이크를 잘라 모두 함께 나누어 먹고 나면 설탕을 왕창 먹은 아이들이 하나둘 흥분해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하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는 거예요.

코로나로 조용조용 축하하던 시기를 지나 지수의 5번째 생일파티를 맞이했어요.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이래저래 올 해는 꼭 큰 파티를 해주자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간 쌓아온 파티 경험을 떠올리며 엄마의 능력을 발휘해 봤죠. 몇 개월 전부터 학교의 홀을 예약하고 엔터테이너를 수소문했어요. 궁둥이를 흔들어 재끼는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을 위해 준비한 파티는 레이저 디스코 파티였어요! 내 손으로 모든 걸 다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몸이 고단했죠. 밤을 새워 컵케익 36개를 굽고, 아이들 먹을 간식거리, 핫도그 36개, 그리고 답례품 36개를 포장하고 나니 날이 새더라고요.

생일파티 당일, 아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새벽같이 일어났어요. 겨우 진정시키고 바리바리 짐을 싸서 파티 장소로 이동했죠. 풍선을 불어 파티 분위기를 내고, 친구들에게 나눠줄 야광 팔찌와 스티커도 준비했어요. 하나 둘 손님을 맞이하고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결혼식 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큰 행사여서 긴장도 되고, 뭐라도 놓칠까 걱정도 했죠. 아니나 다를까 할랄 음식만 먹을 수 있는 친구를 미리 챙기지 못해 그 친구는 소시지 없는 핫도그를 먹는 해프닝도 있었다죠. 모든 행사를 마치고 배웅을 하는 길에 엄마 아빠들의 웃픈 응원의 말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잘했어!!! 축하해!! 이제 다음번 생일까지 쉴 수 있어!’ ‘미션완료!’ 다음 주 생일 파티를 앞두고 있는 친구 아빠에게는 ‘다음 주는 네 차례야! 난 다음 주에 좀 쉴게…’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요.


나의 어린 시절 직접 치킨을 튀기고 김밥을 말아 거한 생일을 차려주던 엄마가 생각났어요. 동네 친구들, 반 친구들을 모두 불러 함께했던 음식이 가득하고 즐거웠던 그날. 기억은 흐릿해도 사진 속에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죠. 내 아이의 그날을 위해 온 수고와 사랑 그리고 노력을 쏟아냅니다. 앞으로도 계속이요.


한국의 이야기는 http://brunch.co.kr/@1ofyoung/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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