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꼬박 3년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주변에 좋은 이웃들이 있었지만, 가족의 도움이 닿지 않는 곳에 살다 보니 그야말로 우당탕, 엉망진창이었죠. 신랑은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한국에서 사는 친구들과는 시간이 맞지 않았어요. 런던살이는 녹록지 않은데 인스타 속 저의 일상은 누군가의 로망을 자극했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는 어느새 중간자가 되어있는 듯했어요. 한국도 영국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섬나라에 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점점 말을 줄이고 마음을 닫고 자신을 혼자만의 공간에 가둔 것 같아요. 마음은 모나고 생각은 뾰족해졌죠.
코로나로 세 식구가 집에 갇혀 지낸 2020년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해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눌 일이 줄어들다 보니 어울려 지내는 법도 잠시 잊고 살았어요. 그러던 시기에 민영이와 연락이 닿았고 출산을 앞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죠.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일을 했어요. 둘 다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안 보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만나서는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그런 친구였죠. 참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매주 수요일 우리는 화상으로 만났어요. 거리와 시간이 무색하게 우린 서로에게 서로의 마음을 터 놓았어요. 한국 이야기, 지인들의 소식을 나누다 보면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았던 그 시절의 나, 그 순간으로 푹 빠져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몸에 에너지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죠. 하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야 했어요.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지난 5년을 뒤돌아보게했죠. 그때는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힘들어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마음을 모았죠. 이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잘 정리해 보자고요. 민영이는 육아에 지친 밤에 저와 나누는 수다가 힘이 됐다고 하지만 오히려 고마운 건 저였어요.
나밖에 모르고 살던 시절이 있어요. 모든 시간과 노력을 나에게 투자하던 시절이요.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죠. 아이를 낳고 적응 기간 없이 몰아치는 업무에 한동안은 우울감도 불면증도 겪었어요. 몸은 너무 피곤한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내가 목표하고 달려온 길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걸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왜 내 삶만 이렇게 변해야 하나며 날카로운 화살의 끝을 같이 사는 타인에게 겨누기도 했죠.
나의 육아는 내 안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어요. 유년 시절, 가족, 공부와 일 나의 모든 경험을 녹여내 육아에 임했죠. 가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도 하고,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신나게 웃기도 했어요. 손에 예쁜 보석들을 꼭 쥐고 높은 다이빙대 위에서 뛰어내린 것 같아요. ‘풍덩’하고 빠진 물은 너무 따뜻하고 좋은 향기를 풍겼죠. 실컷 놀고 나왔더니 손에 쥐고 있던 예쁜 보석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상실과 불안, 날카로운 마음을 꺼내 하나하나 정리해 봅니다.
왜 꼭 시간이 지나야만 그 순간이 의미 있었다 생각하게 될까요. 그 시절의 아이가 너무 그립고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그 시간을 견디고 지나온 내가 안쓰럽고 대견했어요. 우스갯소리로 이러려고 그 공부를 했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내뱉기도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나의 인생 여정에서 내가 선택한 길과 겪어야 하는 시간이란걸요. 행복과 감사를 배우고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슬프지 않게 잘 받아들이려고 해요. 나와, 우리와 같은 시간을 겪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으며 눈물도 흘렸다 미소 지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