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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녕 Mar 01. 2023

교집합 속 사람들

from 서울. 친구

 설상가상. 난처한 일이 잇따라 일어난다는 말이죠. 말 그대로 설상가상, 전 생각이 많은 데다 기억력까지 좋아요. 끊임없이 생각하는 버릇은 생명력이 끈질긴 적확한 기억력과 만나 수만 가지 상념을 쉬지 않는 공장처럼 찍어내고 또 찍어냅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스멀스멀 출발하는 생각 열차 덕에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나의 사건도 굳이 필요 없는 배경과 관계도까지 끄집어 살피느라 금세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끄러워집니다. 문제는 편안한 누군가와 대화를 트게 될 때면 한 번씩 이 모든 게 분꽃 터지듯 마구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거예요. 쉼 없이 말을 내뱉으면서도 ‘아, 쓸데없다.’ 별안간 깨닫기도 하죠. 집중력을 잃은 상대의 초점 없는 눈을 마주할 때면 더욱 여실히 느끼기도 하고요. 머릿속 빼곡한 생각들을 끄집어내다 우르르 한꺼번에 쏟아질까 조심해요. 덕분에 되도록 말을 않거나, 가능한 절제 하려 노력합니다. 속 얘기를 않는 것도 같은 연유인 것 같아요. 실은 속에 이렇게 많은 구슬이 쌓여있는데, 보여 줄 수 있는 건 상층에 쌓인 녀석들뿐이니 제대로 내보일 수 없을 바엔 혼자 품겠다 고집을 피우는 거죠. 어설프게 드러내 오해를 만들고 싶진 않다면 변명일까요. 항시 가득 차 있긴 했지만, 아이를 낳은 뒤 생각 주머니는 급히 포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한계가 없을 것만 같더니, 비워내지 않으면 곧 터져버릴 거라 빨간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비워내야 했어요. 아무리 혼자 자정 하려 해 봐도 자꾸만 과부하가 걸려요. 무거워진 머리는 점점 눈물을 만들고, 잠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꼬물이 시절, 두 녀석


 어딘가 꽉 막힌 탓에 나름의 규칙이 많아요. 개중 꼽자면 용건 없이 상대에게 연락하지 않기가 있죠. 서운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만났지만, 다들 바쁘게 살고 있을 테니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별일 아닌 일에 말을 건네는 건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덕에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비슷하거나 드문 연락도 괘념치 않은 이해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만난 지 20년이 넘은 고등학교 친구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녀석들이라 신경이 덜 가요. 경조사, 생일이나 챙길까 웬만해선 일곱 모두가 모인 단체 대화방 알람이 울릴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적지도 않아요. 가끔 누군가 마음을 표하면 봇물 터지듯 대화는 시작됩니다. 출산 후 계속되는 우울감에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몇 년 동안 먼저 전화를 걸어 본 건 만날 약속을 정할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에요. 용건 없이 푹 젖어버린 우울감을 벗고 뭍으로 나가고 싶은 심정으로 수화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걱정과 달리 친구들은 반갑게 맞아줬고, 육아 경력자들답게 전해 들은 말만으로 아픈 곳을 제대로 토닥여줍니다. 생각 주머니 한쪽이 뻥 뚫려버린 듯 시원했어요. 천천히 가득 찼던 속이 점점 비워지기 시작했죠. 한동안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주제 삼아 쉼 없이 이야기했어요. 돌이켜 생각하니 꽤 우울감이 짙었던 것 같아요. 언제든 반겨줬던 친구들에게 이제야 제대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아마 그녀들도 같은 시기를 보냈기에 따뜻이 귀를 기울여줄 수 있었겠죠?     


 아이를 가지고 배가 불러오며 걱정도 켜켜이 쌓입니다. 내 몸과 아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아이 맞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답답했어요. 복잡하고 분분한 웹에서 정보를 얻는 것보단 누군가와 직접 만나 소리로 묻고 답하고 싶어 집니다. 어쩌다 보니 친구들의 아이는 대부분 초등생, 뭔갈 물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그럴 만도 하죠. 아이를 키워보니 하루를 치열히 보내고 나면 지나간 시간은 지워지거나 흐릿해져 버렸으니까요. 흔히 생긴다는 조리원 동기 복도 없었죠. 그즈음 전염성 바이러스가 유행이라 수유도 각자 방에서 했고, 식사도 혼자 해야 했습니다. 가장 약한 신생아를 끼고 있으니, 마주치길 꺼렸고 자연히 타인과 인사는커녕 대화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어요. 같은 처지에 있어야 상대 속을 헤아릴 텐데, 동지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좋겠다 나날이 간절함만 더해졌습니다.      



 바람은 새로운 인연을 가져왔어요. 견디다 못한 답답함이 실행으로 옮겨진 거죠. 이준이와 지인이, 지우를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든든한 지원군들입니다. 지인이는 교생 실습을 함께 나갔던 동생이에요. 졸업하고 연락이 끊긴 지 6~7년은 됐었죠. 아기를 낳고 방향을 잃은 채 조리원 한 곳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먼저 용기를 냈습니다. 지인이에게 메시지를 날려버린 거예요. 휴대전화 속 대화 상대 목록에서 아기 사진을 걸어둔 걸 보고는 무턱대고 말을 걸었어요. 무슨 배짱이었는지, 출산 후엔 호르몬에 지배되는 시기가 꽤 오래간다고 하던데, 그 덕을 봤는지도 모르겠어요. 역시나 조리원에 있던 지인이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가이 맞아줬어요. 놀랍게도 하루 차이로 아이를 낳았더라고요. 그것도 같은 병원 다른 지점에서 말이죠. 똑같은 사내아이에다가 성씨도 같았어요. 그 아이가 바로 이준이입니다. 넘쳐나는 공통분모에 지인이와의 수다는 끝을 모른 채 며칠 밤을 이어갑니다. 오랜 시간 공백이 있으니 어색할 법도 한데, 이제 막 엄마가 된 사람들의 대화거리는 부족함 없이 차고 넘쳐요. 세 살이나 어린 동생이지만 무척이나 의지가 됐어요. 누구보다 같은 상황에 놓여있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다시 연락이 닿은 게 행운이란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그렇게 지인이와 저는 든든한 육아 동지가 됩니다. 집도 그리 멀지 않아 자주 왕래도 하게 됐어요. 만나지 못한 그간의 이야기는 꺼내 볼 새도 없이 아이의 성장에 모든 대화의 초점이 맞혀집니다. 이땐 뭘 먹이는지, 어떤 걸 하고 노는지, 키와 몸무게는 얼마만큼 늘었으며 어떤 행동 발달이 있었는지. 양육자가 된 우리와 아이의 앞날에 대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지인이를 만나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많은 점이 저와 달랐다는 사실이었어요. 아이 관련해선 유독 불안이 가득하고 행동하기 두려워하는 제게 지인이는 특유의 털털함으로 늘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저는 신생아 시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오랫동안 지우를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조심히 대했어요. 밖에 나가는 것도 꺼렸고, 입는 것과 먹는 것, 누가 봐도 극성스럽게 모든 걸 관리하고 제한했죠. 쉽진 않았어요. 늘 긴장하니 나날이 신경은 예민해지고, 몸도 지쳐가더라고요. 마음을 편히 가지고 내려놓고 싶음에도 혹 아이가 잘못될까 내가 힘든 게 낫다고 여겼어요. 지우를 품에 안고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지인이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옵니다. 함께 도착한 사진 속에는 나무 그늘이 무성한 산책로를 지나고 있는 유아차, 그 속에 편히 잠든 이준이가 보였어요. 산책 중 아기가 잠들었다며 지금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너무도 행복하다며 연락을 해온 거였죠. 순간 많이 놀랐어요. 어쩌면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지우를 낳고 백일 가까이 잠옷만 입고 지낸 저는 아직 아기는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유약하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우 월령에도 외출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목격하며, 당장은 어려웠지만 몇 주 뒤 유아차에 아기를 태우고 동네를 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지인이가 안겨준 변화였죠. 이준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먼저 놀러 온 것도 지인이었고요. 아이를 데리고 작은 가방에 필요한 물건만 간단히 챙겨 다니는 지인이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저라면 큰 여행 가방 하나가 필요했을 거예요. 모든 걸 싸 다녀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지인이는 육아의 본보기가 되었고 저는 그녀를 좇으며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인이가 먼저 행하고 보여주면 왠지 확신이 섰어요. 꼭 그녀가 선구자처럼 느껴졌죠. 그녀가 괜찮다면 정말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서슴없이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을 보여주는 지인이는 서서히 저를 불안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문화 센터도 지인이 덕에 발을 들였어요.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들을 위한 강좌가 있는지도 몰랐고, 가족 외 타인이 주는 외부 자극이나 놀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못 하고 있었거든요. 별다른 고민 없이 이것저것 체험 수업을 들어봤다던 지인이는 함께 수강하자 제안을 해왔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강사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수업을 하는지 평은 어떤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지도 몰라요. 대학 수강 신청 때보다 곱절은 과한 열정을 보였을 겁니다. 오히려 그리 수월히 권해주니 일단 함께한다는 든든함이 힘이 되어 쉽게 시작해 볼 수 있었어요. 처음 낯설어하던 지우도 이제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수업에 익숙해져 매시간 열혈 수강생으로 강의실을 누비고 있습니다. 웃고 즐거워하는 지우 모습에 너무 품에만 끼고 있었나 미안한 마음이 들며, 한편으론 지인이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어 졌어요. 여전히 이준이와 지인이, 지우 그리고 저 넷은 자주 만나 공동 육아를 즐기고 있습니다. 가고 싶었던 곳을 추천하기도 하고, 좋았던 경험을 숨김없이 공유하기도 하죠. 여전히 아이들의 성장에 같이 놀라워하고, 때론 시행착오를 고백하며 함께 웃어 넘기기도 합니다. 같이 있어 한결 시간이 잘 간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습니다.     


22개월째,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 키는 얼마나 자랐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는지 어떤 새로운 행동을 보이는지 언제든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맙고 든든합니다. 단순한 정보 공유 대상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며 난감한 순간 곁에서 괜찮다 다독이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에 고개 끄덕이며 웃어줄 수 있는 단단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어쩌다 보니 지인이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아이를 낳은 동생들과도 연락이 닿았어요. 아이를 앞세우니 몇 년간의 공백도 무색해질뿐더러,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이도 아이를 통하니 무척 친근해지기도 합니다. 어째,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분모 안에서는 한풀 관대해지며 날이 섰던 예민함도 사라지게 되네요. 서로 묻고, 알려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함께 키워나갑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벌써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몰라요. 정보들이 넘쳐나는 온라인 세상에서 허우적거릴 때, 단호해 보였던 육아 서적 앞에서 좌절할 때도 그들이 있어 온전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없다고, 자신 또한 그랬다 부드럽게 말해줍니다. 지우 덕에 새롭게 맺어진 관계들이 생겨나네요. 앞으로도 아이 덕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겠죠. 아이와 함께하는 공통점 하나로 서로의 하루와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이. 공통분모를 가진 교집합 속 사람들과 열심히 나아가 볼게요.


 

영국 이야기는 @mylittleca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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