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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녕 Feb 22. 2023

나의 밤에 눈 뜨는 당신과

from 서울. 시작


 어둑한 밤 잠들지 않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문득 고단했어요. 온종일 울음으로 답하는 조그만 녀석,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주고받는 말소리가 그리웠습니다. 밤이 지나 새벽에 가까운 시간, 쉬이 누군가를 깨우기도 주저되던 순간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가 떠올랐어요. 같은 학교, 같은 직종에서 일해왔던 그녀와 찬란한 미래를 꿈꿨던 때가 한참 전이네요. 간절함은 곧장 연락을 던져요. 빈틈없던 그녀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내내 자라온 익숙한 환경에서도 고됨이 가득한 저로서는, 모든 게 변한 타국에서 아이를 키워낸 이가 마냥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시작된 대화는 며칠이고 이어져요. 육아라는 과업을 수행한다는 유대감으로 우린 이전보다 솔직해져, 되려 곁에 있던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모두 내보여주게 되었죠. 우리의 이야기는 그리 늦은 밤 그리고 이른 아침, 자연스레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 중 하루만은 특별해져, 기다림은 설렜고 대화는 즐거웠으며 때론 일탈을 누리는 듯 삶이 가뿐해진다 느끼기도 했습니다. 8시간 시차가 만들어 준 이야기. 때론 위로를, 때론 공감을. 살짝 희미해진 서로의 채도를 높여주며 상대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즐거운’이라는 수식어보다 ‘힘든’이 적합해 보이는 말 ‘육아’. 좋은 생각, 좋은 환경, 좋은 기분으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지만 어째 정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남들은 잘 해내는 듯 보이는 과정이 감당 불가한 영역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많죠. 계획대로 되어야 하는 성미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꺾여 좌절하기도 합니다.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 꽂히니 스스로는 점점 방치되기도 하죠. 양육자가 된 뒤, 시소에 앉아 아이와 하루를 보냅니다.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그곳에서 어느 날엔 땅에서 발을 떼 공중으로 오르고 싶단 무기력한 바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언젠가 수평을 이룰 날이 올까 까마득한 그날을 믿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넘겨버리면서요. 땅에 붙어있다 못해 밑으로 꺼질 것만 같던 겨울, 마구 구겨져 있던 다리에 힘을 주고 싶어 졌습니다. 제가 그리워졌거든요. 차마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성격은 자신을 평등한 높이까지 올리진 못했지만, 다시 예전 같은 하루를 만나야만 숨을 쉴 것 같았습니다. 고요해진 밤, 등 하나 켜진 책상에 앉아 속에 든 걸 꺼내 보기 시작합니다. 매일은 어려웠지만, 잠깐 짬을 내서라도 몇 글자 쓰고서 잠이 들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른 채 끼얹어진 감정들을 가장 편한 자리에 앉아 멋 부리지 않은 문장으로 변환했습니다. 한밤중 홀로 끄적이던 기록은 같은 시간 밝은 아침을 누비던 그녀 덕에 정겨운 말소리로 바뀌고, 우리의 대화는 다시금 긴 글이 됩니다. 한때, 사회에선 누구보다 애를 쓰고 살았던 성과 중독자들, 어쩌면 그간 아이를 낳고 키우던 노고를 인정받기 위해 이 기록을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그 또한 자신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식 일지도요. 진실한 하나는, 내리 적어 내려가는 동안 느꼈던 후련함을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지나간 날에 미련을 둔 채 우리를 되찾자 욕심을 낸 시간의 결과가 결국 양육자의 이야기로 결실을 보았습니다. 양육자의 삶이 바로 제가 걷고 있는 길이라는 걸 적확하게 깨닫고 말았어요. 모든 걸 받아들였다던 지금도 과연 숱한 양육자의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지금 내가 이리 살고 있다 말합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며,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부디, 따뜻한 귀 기울임으로 특별하지 않아 어쩌면 더 이해가 쉬운 우리의 하루를 차근히 바라보다 가끔은 살짝 고개 끄덕여 주세요.



런던 이야기는 @mylittleca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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