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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erry Nov 15. 2023

산책 속 붕어빵

뜻밖의 길 위에서 힐링.

 늦가을 밤,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제법 날카롭다.

이맘때 공기가 원래 이리도 살을 애는 듯한 느낌이었나. 요즘은 집 밖으로 잘 나가질 않아서 계절의 변화를 설핏 느끼 기기도 전에 어느새 겨울이 다가왔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그래도 가로등 불빛에 비친 은행나무의 화사한 노란 빛깔을 보고 있으니, 여전히 나는 가을 어디 즈음에 있겠구나 싶어 위안 삼는다.


 나의 산책은 그 어떠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저 발걸음 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뚜벅뚜벅 걷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동네 뒷산에 이르기도 하고 또 시내의 한복판에 서 있기도 한다. 그러고는 머릿속에는 뭐가 그렇게 들어찼는지,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입으로 머릿속 내용들을 껌 대신 질겅질겅 씹어가며 또다시 목적지 없는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흡사 그 모습에 남들이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리라.


 그렇게 한참을 발걸음을 하다 보니 배가 헛헛함을 느낀다.

낮에 보리밥에 나물까지 잔뜩 비벼 먹었지만, 그럼에도 때가 되니 또 배가 고프다. 더군다나 제법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걷는 산책은 체온 유지까지 더해 더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는 듯하다.


 배고픔에 산책은 이쯤 하자는 생각에 집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저만치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을 보였다. 요새는 잘 보이지 않는 풍경에 왠지 모를 설렘을 가지고 노점상의 천막을 젖히고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연신 붕어빵 틀에 반죽을 부으면서 반갑게 맞이하신다. 한쪽에는 뜨끈한 어묵 국물이 특유의 간장 내를 풍기며 김이 모락모락 실내에 퍼지고 있었다. 그 덕에 노점상 안은 푸근한 따뜻함이 감돈다. 붕어빵을 쌓아놓는 선반 밑에 적힌 가격을 보니 네 개 천 원이다. 그 옆에 어묵은 하나에 삼백 원.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속으로 감탄했다.


“아주머니, 붕어빵 이 천 원치 만 주세요.”


그리곤 아주머니는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며 방금 전부터 붕어빵 틀을 다루는 손길에 속도를 더하신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주린 배에 어묵 맛 좀 봐야겠다며 뜨끈한 국물에 푹 담져진 어묵꼬치를 하나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어묵을 한입 베어 물고 입속에 들어간 어묵 때문에 입천장 대일까 후후하하 연신 입김을 뿜으며 먹기 바쁘다.


“아이고, 입천장 까여요~ 천천히 드셔~”


 아주머니는 나의 그런 모습에 걱정 섞인 어투로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리곤 입안의 어묵이 서서히 온도를 잃고 씹을 수 있게 되니 어묵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으로 퍼져간다. 맛있다. 다른 곳이 아닌 오직 이런 곳에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어묵 세 개를 먹고 입가심으로 종이컵에 국물까지 떠서 마시고 있다. 동시에 아주머니는 그새 완성된 붕어빵들을 하얀 종이봉투에 담아내시곤 서비스라며 미리 만들어 놓은 붕어빵 한 개를 더 넣어 주신다. 생각보다 싼 가격에 이런 서비스라니! 감동이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건네드리고 다시 천막을 젖히고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오니 방금 먹은 뜨끈한 어묵 덕에 후끈해진 몸뚱이 위로 살그미 올라온 땀들이 순간 찬바람에 식어 절로 몸서리 처진다. 그래도 가슴속에 담긴 훈훈함과 한 손에 들린 따끈한 붕어빵에 금세 추위가 누그러지고 온기가 도는 듯하다.


 그리고 산책하면서 느꼈던 계절의 소외감은 어느새 아주머니의 인심과 손에 들린 따뜻한 붕어빵 덕에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비록 몸으로 느끼기에 쌀쌀한 산책길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만은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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