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제대로 즐기려면~
세상을 제대로 즐기려면, 아주 작은 것에도 항상 감탄하고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단 한번 살아가는 이 세상을 가능하면 매우 즐겁고 기쁘게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은 이렇게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아둔한 우리 인간이, 대부분 스스로 그 밥그릇을 차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실, 세상을 자기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각박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먹을 게 많고 가진 게 많아도, 이른바 자기 가족이나 비교적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 하지, 대체로 자기와 가깝지 않거나 자기편이 아닌 자에게는 지나치게 인색하게 굴기가 짝이 없을 때가 많다.
정치적 성향 면에서도, 자기 편의 논리가 아니라면, 마치 적이라도 된 양으로, 상대방을 경계하고, 마구 몰아붙이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고, 이들을 향해, SNS나 여러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서, 보이지 않는 공간에 숨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거나, 때로 폭력 혹은 테러까지 자행하려는 자들도 제법 있다.
만약, 이러한 여러 각박함이나 아주 편협된 마음들이 모이다 보면, 당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고립시키기도 하고, 아주 황량하게 만들기도 하여,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도저히 제대로 즐겁지도, 기쁘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소중한 인생을 제대로 즐겁게 맛볼 수 있으려면, 이러한 각박함을 잘 물리치고서, 무엇보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좋은 느낌이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로부터 감탄과 감동의 마음을 진정으로 지닐 수 있어야 하겠다.
즉, 우리가 만약, 세상의 아주 작은 소리나, 아주 조그만 몸짓 하나에도 좋은 느낌을 가지고서 감탄할 수 있고, 감동도 잘할 수 있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을 지닐 수만 있다면, 우리 주변의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을 것 같은 일에서마저도 큰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면, 세상의 여러 각박함을 잘 물리치고서, 이렇게 항상 잘 감탄하고, 잘 감동할 수 있는 생(生)을 살아낼 수 있을까?
첫째, 당신의 마음을 기저상태로 돌려놓고, 행동은 아주 큰 수레 위에 올려놓아라.
세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으려면, 한 순간이 아닌 평생을 즐길 수 있으려면, 당신의 마음을 기저상태(혹은 기본상태, 기초상태, 바닥상태 등)로 돌려놓고, 행동은 아주 큰 수레 위에 한번 올려놓도록 해보아라.
이렇게 당신의 마음이 기저상태에 놓이게 되면, 우연히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작은 꽃 한 송이에도, 그것을 스쳐 지나가는 조그만 나비 한 마리에게서도 그 생동감과 자연스러움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반면에 만약, 자기 마음의 기준선이 너무 높아져 있는 상태라면, 웬만해서는 즐겁지 않을 것이고, 웬만해서는 감탄할 수도 없고, 웬만한 스토리로는 감동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혹여 자기 마음의 상태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면, 가급적 얼른 내려오는 것이 좋다.
혹여, 남들이 당신의 마음을 띄워 그렇게 높은 곳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올려놓아져 있는 상태라면,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임을 직감하고, 얼른 안전한 아래(기저상태)로 내려오기를 바란다.
또한, 당신의 행동이 아주 큰 수레 위에 올려져 있다면, 큰 수레이니 만큼 그 바퀴도 클 것이니, 작은 물 웅덩이나, 작은 턱 같은 장애물은 그냥 무사통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행동이 아주 작은 수레 위에 올려져 있는 상태라고 한번 가정을 해보아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작은 돌부리에도 수레가 우당탕 우당탕 하며 흔들릴 것이고, 때로 아주 조그만 구덩이에 빠졌어도 헤어 나오기가 매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가능하면, 자신의 행동을 아주 큰 수레 위에 올려놓아, 웬만한 세상 풍파를 만나도 그냥 무사통과를 할 수 있게 하고, 웬만한 상처나 스트레스를 직면하더라도 그냥 그것이 있는 둥 없는 둥 사라져 가게 해버려라.
그러려면 결국,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매사 쉽게 예민해지지 말고, 담대하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려 해야 하고, 삶의 여러 모퉁이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에도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항상 당신의 행동을, 마치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 올려진 듯, 거시적 관점으로 이끌어야 하겠다.
둘째, 새로운 경험을 많이 축적하여라.
직원들과 해외 출장을 가다 보면, 일부 직원들은 꼭 현지 음식문화에 적응이 잘 안 되는지는 몰라도, 로컬 푸드를 꺼리고, 멀리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극구 찾아가 먹으려 한다.
물론, 음식 비위상의 문제나, 도저히 현지 음식에 적응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으나, 가급적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해 보려는 시도를 우선적으로 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이상 맨날 먹어왔던 그런 종류의 음식을 해외에 나와서까지 꼭 먹어야 하겠는가?
현지에서는 가능하면, 로컬 푸드를 제대로 음미해 보려는 시도를 최대한 한번 해보고, 여러 새로운 경험도 가급적 많이 해보는 것이 나중에 보다 많은 추억거리를 남겨 줄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이야기감도 많이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 혹은 체험은 당신 마음의 그릇과 지적 함량을 크게 키우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우리가 회의장소나 숙박장소를 선택할 때는 어떠한가?
가령 서울에서 부산으로 출장을 가서 관련 인원들과 회의를 한다고 한다면, 주변이 다른 빌딩들로 꽉 막힌 그런 장소를 선택하지 말고, 가급적 바다가 내다 보이는 장소를 선택하거나, 다른 어떤 상징적인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히 그 회의가 회의 참석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될 것이고, 회의의 가치나 의미, 그밖에 여러 측면에서 이로운 면이 많을 것이다.
출장 시의 숙박장소는 또 어떠한가?
빽빽한 빌딩 숲 속이나 시장통 골목으로 호텔을 잡을 것이 아니라, 꼭 비싼 곳을 찾을 필요는 없겠으나, 가급적 미팅 장소를 가장 대표하는 곳이나, 다른 상징적인 곳의 근처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기억과 많은 추억을 남겨줄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 사귀는 문제는 또 어떠한가?
꼭 자기편 혹은 자기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사귀지 말고, 일부러라도, 자신과 성향도 좀 다르고, 여러모로 차이가 나는 사람들과도 많이 사귀어 볼 기회를 가져 보아라.
그래야, 자칫 그동안 편협된 자기 마음을 다시금 리셋할 수 있고, 그만큼 자신의 안목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깨달음 등에도 많이 도움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즉,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경험과 체험을 많이 갖기 위해, 안일한 마음은 과감히 벗어 버리고, 자존심 같은 것은 더더욱 던져 버리고서, 계속 새로운 곳, 혹은 더 높은 곳을 향한 많은 도전을 해나가는 당신의 모습이야말로, 나중에 돌이켜 보면, 매우 값진 선택이었을 것이고, 그만큼 남는 것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러한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되면, 나중에는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고, 금방 흐릿해져 버릴 것이니,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니, 여러 형태로 기록을,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많이 남겨두는 것이 매우 좋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보통 바쁜 일정도 문제가 되지만, 하나하나 기록하는 자체를 귀찮아하는 성격을 가진 터라, 그냥 상징적인 사진 몇 장에, 특징적인 단어나 짧은 문구를 그 사진 하단에 가볍게 S펜이나 손가락 터치 등으로 몇 자 써넣는 방식, 혹은 모바일 다이어리에 간단히 몇 자 적어두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셋째, 자랑을 하지 말거나, 최대한 줄여라.
자랑을 많이 하게 되면, 상대방이, 그 자리에서는 별 말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라도, 돌아서서는 내심 욕할 수 있다.
혹여 처음에는 그 대단한 자랑거리에 솔깃해하다가도, 점점 친구가 없어지고, 당신 주변에서 사람들이 점차 떠나갈 수 있다.
아니면, 내심 당신을 호구 정도로 낮잡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세상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당신을 크게 엉크러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가급적 자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항상 겸손과 겸양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그렇게 인내를 잘 해내는 것이, 실제로도 당신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니, 매사 자중하는 모습이 참으로 좋겠다.
즉, 자랑을 안 하게 되면, 좀 폼이 안 날 뿐이지, 나중에 그 자랑거리가 사라질까 봐서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네 마음이 훨씬 편해질 수 있고, 깍쟁이들로부터 호구 취급을 받을 염려가 없어서도 좋고, 소문은 금방 돌아다니는 것이므로, 당신의 자랑거리도 잠시 후 금방 타인들이 알게 될 것이니, 이 경우 네 자랑거리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효과를 위해서 겸손하고 겸양하라는 것보다는, 사실 그러한 처신이 남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대단한 당신 삶의 마땅한 도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 사교성 목적이 아닌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팩트 위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자랑은 가급적 조금이라도 입에 섞지 말아라.
그래야 장기적으로 오해할 소지도 없고, 귀에 거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니, 대부분의 협의나 협상의 최종 결과를 잘 만들어내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다.
단, 팩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약간의 자기 자랑거리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상대방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니, 반감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을 것이니 말이다.
넷째,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어라.
어깨를 빌려주라는 말은 서로 어려울 때, 편안히 기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상대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아주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 당신이 내민 어깨에 따뜻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아마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에게 큰 기쁨이 되어줄 수 있다.
단, 당신이 어깨를 내어주었다고 하여, 너무 보상이나 답례를 바라지는 말아라. 그냥 그 베풂의 경험 자체를 기뻐하면 될 일이다.
또, 어깨를 기꺼이 빌려주거나, 빌리라는 말은,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라고 하는 뉴튼이 자주 인용한 격언에서처럼, 그만큼 상대방의 양해나 협조를 받아, 네 지식이나 인격의 함량을 곱절로 만들어 나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당신이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어깨의 도움을 받았다면, 당신도 역시 그만큼 타인에게 많이 베풀어 주는 것이 좋겠다.
단, 베풀어주는 것은 가급적 잊지 말고 꼭 실천해 보여주는 것이 좋고,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는 너무 주장하지 말아라.
즉, 모든 것이, 억지로 이루어짐이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여라.
만약, 당신이 매사, 받아야 할 대가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꼭 받아내려 애쓴다면, 그렇게 좁쌀같이 계산하려는 마음으로는 결코 상대방을 제대로 설득시킬 수도 없고, 감동시킬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언제라도 어려움에 처한 상대에게는 자기의 어깨를 기꺼이 내어주려 하고, 어떤 어두운 삶 속에 갇혀있는 자에게는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잇권이 걸려있는 곳은 먼저 양보하려 하는 등으로, 항상 자기보다 상대를 먼저 챙겨주어야만, 상대방에게는 감복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자기 스스로에게서도 큰 보람이나 기쁨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어떤 첨예한 경쟁 상황에서, 조금의 이익이라도 당신이 먼저 몰래 챙기려 하게 된다면, 상대방은 그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니, 네 마음은 가히 편치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갈등 혹은 불협화음만이 첨차 유발될 것이며, 그만큼 네 삶의 기쁨이라는 것은 멀어져 갈 수밖에 없다.
다섯째, 가급적 빠른 용서를 허하여라.
자신이 잘못했거나,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바로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겠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급적 빠르게 용서를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주변에서, 큰 잘못을 범하고도 흔쾌히 시인을 못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렇게 되면, 그 관계는 교착상태(펜딩 상태 혹은 눈치보기 상태 등)에 돌입하기 십상이다.
즉,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고, 먼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눈치를 보려 할 것이고, 가급적 자기가 먼저 어떤 행동이나 표현도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 점차 어려워지게 되며, 이런 교착상태가 지속되면 나중에는 결국 헤어지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돈도 하나도 들지 않고, 자기 자존심만 좀 가라앉히게 되면, 금방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사과’에 너무 인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흔쾌히 사과를 잘하는 자가 훨씬 더 큰 인물, 비범한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즉, 자신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지적되거나 발견되면, 바로바로 흔쾌히 사과를 하여야, 바로 그 관계가 다음의 건설적인 진도를 나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여야, 과연 관계는 더욱 빠르게 돈독해지고, 서로 더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크게 잘못한 일이 있고, 그래서 당신이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는 일단, 모든 것을 참아내고서, 당신이 너무 사과를 강요하지 말아라.
어떤 사실에 대한 시인이나 사과는 그 사람 스스로가 마음이 동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그러기 이전에 너무 강요하는 것은 역효과가 나기 쉽다.
설령, 상대방이 계속 자기 잘못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고, 오직 모루쇠로 일관하고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차라지 그냥 용서를 해주어라.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점이 용서를 해주라고 한다고 하여,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용서는 매우 가치가 적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용서를 하기로 했다면, 마음의 용서를 진심으로 건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다시 그 관계 회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과연 비 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질 것이다.
상대방인들 왜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겠는가?
단지, 자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표현을 못 하고 있거나, 성격상으로 다소 문제가 있거나, 기타 어떤 다른 유사한 문제가 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당신에게 사과를 건네 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단, 그 시점이 많이 늦을 수 있어 애석할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 스스로가 사과 혹은 이에 준하는 표현을 내놓기 이전까지는, 늘 속으로 당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을 공산이 크니, 모든 상황은 오히려 당신에게 훨씬 유리하게 전개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단, 이때부터는 그 사람과의 심리적 적정 거리를 잘 유지하여,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한번 해보아라. 그래야 관계의 피로도를 최소로 줄여, 향후에 다시 발행할 수 있는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의 소모를 최대한 막아낼 수 있겠다.
이렇게, 당신의 잘못은 바로바로 시인 및 사과를 하고서,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절대 시인이나 사과를 강요하지 말 것이며, 차라리 가급적 빠르게 용서를 건네는 태도야 말로, 네 마음에 무한한 평화와 안정감을 안겨다 줄 것이다.
또, 이러한 평화나 안정감은 당신의 긍정적 삶, 한 차원 더 높은 삶에 대한 큰 모티브를 줄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의 진정한 삶의 기쁨으로도 승화되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당신이 진정 큰 사람, 된 사람을 자처한다면, 웬만한 것은 대개 예쁘게 보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불필요한 미움이나 반감은, 이후 당신 마음을 갉아먹거나 극도로 소모하게 만들 것이니, 그리고 어차피 인간은 매우 부족한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모든 것은 예쁘게 보아주려 하고, 불편한 감정은 바로바로 털어버리고, 오직 미래 지향적, 건설적 자세가 매우 좋다.
여섯째, 되도록 보람을 많이 찾아라.
무슨 일을 하든, 보람을 많이 챙기는 것이 좋다.
매사 그때그때를 그냥 즐기고 마는 것은 하루 이틀, 아주 길어 보아야 몇 주 정도의 기쁨이 되어줄 수 있겠지만, 삶의 보람을 찾는 일은 아마 평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줄 수 있겠다.
그러니, 무슨 일을 도모하든, 보람된 일을 많이 행하려 하고,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많이 가지든 간에, 그 속에서 보람을 많이 캐낼 수 있도록 시도해 보아라.
그런데, 이러한 보람에는 특별한 경계선이 없다.
과연 어느 정도가 보람이 있는 것이고, 어느 정도가 보람이 없는 것인지는 딱히 기준이라는 것이 당연히 없다.
이렇게 보람이라는 말이, 다소 상대적이고, 매우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보람의 기준이라는 것은 자기 양심적인 내면의 마음이 놓여진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남들이 무어라고 하여도, 자기 마음이 동하여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히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양심과 크게 괴리가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가령, 내가 독서나 학습을 많이 하여 내 지식을 살찌우게 하는 일, 어학 공부를 많이 하여 통역, 번역, 가이드 등의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해내는 일, 내가 학문적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 내가 구상하던 어떤 작품 하나를 만드는 일, 큰 마음을 먹고 기부를 하는 일, 주변에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 등도, 그 정도나 크기에 무관하게, 당신의 내면 속에서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모두모두 당신의 소중한 보람임이 확실하다.
이렇게 자기 삶의 여러 공간과 수많은 기회를 통하여, 가급적 많은 일에서 많은 보람을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 느끼기에, 아주 보람되고 가치 있는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면, 또한, 그 결과가 크든 작든 간에, 이웃도 감동하고 당신 스스로도 작은 감동을 해낼 수 있게 된다면, 결국 이는 아마 네 평생에 지극한 “즐거움”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루 이틀 치가 아닌, 평생 치의 즐거움을 제대로 챙기려면, 일단은 자기 마음의 위치를 차분히 아주 낮은 기저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낮은 상태가 제대로 세팅된다면, 아마 당신은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심지어는 조그만 돌 하나에도, 자연이 주는 그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에 크게 감탄하고, 감복해 마지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낮은 상태의 마음이 제대로 세팅된다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아주 조그만 성취에도, 이것저것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것 같은 일 하나에도, 아주 크게 느끼고, 마음으로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듯, 당신의 평생이 즐겁고 행복해지려면, 먼저 자기 마음과 생각의 준위를 최대한 기저상태로 낮추어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고서, 이 세상에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니, 과거에 절대 안주하지 말고, 얽매이지는 더더욱 말고서, 항상 무엇이든 새로운 것, 새로운 경험, 새로운 느낌 등에 집중하여, 새로운 즐거움을 보다 많이 창출해 내어야 하겠다.
또한, 대인관계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가능한 한 스스로를 자랑하려 들지 말 것이며, 어려운 자에게는 항상 먼저 어깨를 빌려주려고 애써보아라.
상대가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힘을 낼 수만 있다면, 재기에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당신으로서도 흐뭇하고 기쁜 일일 것인가?
그리고 혹여, 당신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가능한 한 바로 시인과 사과를 건넬 것이며,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절대 그 사과나 시인을 강요하지 말아라.
차라리, 모든 것을 빠르게, 그것도 마음으로 용서하여라.
그렇게 하는 것만이 네 마음에 지속적인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며, 큰 실망과 아픔도 차라리 기쁨으로 승화시켜 줄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하여, 남이 하는 일과 비슷하게 뒤따라가는 삶이 아닌, 매사 스스로만의 새로운 보람을 많이 찾아낼 수 있는 삶을 한번 창출해 보아라.
그래서, 그러한 보람들이 쌓여, 결국 당신이 당신 생을 마무리해야 할 때쯤이 되면, 그윽한 미소가 당신 만면에서 떠나지 않게 한번 해보아라.
즉,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을 평생 그윽이 향유하려면, 자기 마음을 항상 매우 겸손한 기저상태로 낮추어, 아주 작은 것에도 감탄하고 감동할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의 용서도 빠르게 잘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보람 있는 생(生)을 많이 일구어 낼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