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와 있는 행복이니, 느끼기만 하면 된다.

이미 당신 곁에 와 있는 ‘행복’이니, 그냥 느끼기만 하면 된다!

by 신정수

이미 당신 곁에 와 있는 ‘행복’이니, 그냥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 어떠한 것도, 어떠한 상황도 당신이 행복이라고 불러주면 행복이 될 것이고, 불행이라고 불러주면 불행이 될 것이다.

그러니 과연 당신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심지어는 극심한 상실의 계절에도,

어김없이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신의 섭리를 발견하여라.

못내 속삭이는 희망의 싹도 발견하여라.

그러니, 상실의 슬픔마저도 차라리 사랑하여라.

슬픔은 어느덧 희망으로 그 모습을 바꾼다.

슬픔의 모습은 점차 흐릿해진다.

신의 섭리와 희망의 모습은 차차 더욱 또렷해진다.

이제! 상실의 슬픔마저도 차라리 ‘행복’이라 불러주고, 사랑해 주어라.

당신은 사랑한 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심지어는 끝없는 암흑의 상황에서도,

언젠가는 싹 틔우고, 꽃 피울 미래의 존재를 확인하여라.

그 존재는 어느 좋은 날, 더욱 화려하게 만개할 것이다.

그러니, 아픔이나 고난마저도 차라리 사랑하여라.

그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믿어라.

고난의 아픔은 지워져 갈 것이다.

믿음은 점차 확신으로 변모해 갈 것이다.

이제! 암흑과 고난마저도 차라리 ‘행복’이라 불러 주고, 사랑해 주어라.

당신은 사랑한 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이미 와 있는 행복이니, 느끼기만 하면 된다.jpg 이미 와 있는 행복이니,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림;.themuse.com/advice)





우리가 똑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부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생고생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잘 돌파해 나가는 부류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의지가 매우 굳거나, 저돌적인 성격이거나, 목표 의식이 매우 뚜렷한 편이다.

그러나, 다소 자존심이 강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혹은 고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도 많을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극복하려 열심히 좀 움직여 보다가, 결국은 의지가 약하여 돌파를 못 하는 유형이다.

즉, 어려운 상황 자체 혹은 그 무게에 짓눌려 중간에 포기해 버리거나, 그냥 주저앉아 버리게 되는 부류이다.

이러한 부류는 대개 의지가 약한 편이며, 상황 대처 능력이 매우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부류는, 별 개념 없이 살아가는 유형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구태여 신경을 많이 쓰지 않으려 하며, 그냥 대충대충 살아가기를 선택하려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유형은 성격상, 비교적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는 장점은 있으나, 결코 발전적이지 못한 성격이라,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한 성취는 거의 힘들다고 하겠다.


네 번째 부류는, 고난이나 어려운 상황 자체를 거의 만들지 않거나, 그러한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옆에서 보기에는, 그러한 상황을 겪는지, 안 겪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쉽게 건너가 버리는 유형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구태여 행복을 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이미 자기 곁에 와 있는 행복을 느끼려 할 뿐이며, 오로지 자기 생의 목표나 가치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래서 말투나 표정, 주장 또한 분명한 편이고, 타인에게는 한결같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네 부류 중, 당신은 당연히 네 번째 부류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희망할 것이다.


즉, 이러한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상황과 사태를 이미 잘 인지 및 파악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지하여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며, 설령 그래도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충분히 그 상황을 잘 인정하여 받아들이고서, 신세 한탄이나 소모적인 부분에 매몰되는 일이 거의 없이, 항상 상승적 방향의 돌파에만 집중하여 아주 용이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며, 주로 자기 스스로의 가치 지향적인 부류라고 평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네 번째 부류(애써 행복을 구하지 않아도 모든 것에 만족하여 행복을 느끼고, 진정한 자기 가치에 집중하는 인물)로 살 수 있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크게 보아라.


세상사가 항상 다사다난하고, 많은 상승과 하강의 기운을 반복하겠지만, 결코 일희일비하지 말아라.

어려움이 닥쳐도,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안달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결코 안 된다.

잠시 후 어려운 상황이 지나가면, 당연히 점차 호전되는 상황이 올 것이니, 지그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즉, 모든 일이나 사태에 있어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에 자꾸 쫓아다녀서는 결코 안 되며, 오로지 그 흐름의 전체적 맥락만 잘 움켜잡고 있으면 된다.

우리가 등산을 할 때도, 나무는 보기 쉽지만, 결코 산의 모습은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산의 모습이라는 맥락을 머릿속에 그리며 산을 오르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별 개념 없이 나무만을 쳐다보면서 혹은 앞사람만 따라서 산을 오르는 것은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리고, 결코 자질구레하게 굴지 말아라. 매사 자질구레한 것에 정신을 많이 소모하거나, 상대방에게 좁쌀처럼 굴면, 항상 찌질해지기 쉽고, 결국 친구를 잃고, 이웃을 잃는다.

자기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비교하지도 말아라. 비교는 질투와 욕심을 낳아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흔쾌히 결정하여라. 너무 캐묻지도 말고, 토를 달지도 말아라. 계산하려 들지는 더더욱 말아라.

오로지 모든 것을 크게 크게 보아라!


매사 좁고 예민한 성격은 의지적으로 버리려 해야 하고, 타인에게는 항상 푸근함과 편안함을 선물해 주어라.

그래서, 웬만큼 불만족한 상황에도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주고, 박수를 쳐 응원을 보내고, 만약 불만족의 구정물 속에 있게 되더라도 차라리 연꽃 같은 희망의 싹을 발견하여라. 그 희망 자체만으로도 항상 ‘행복’이라고 불러 주어라.

둘째,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여라.


자기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잘 정돈하고, 가지런히 하는 것이 좋겠지만, 특히 자신의 마음이 결코 산만해지지 않게 잘 관리하여, 가지런한 상태로 만들어 두어야, 앞으로 벌어질 어떠한 판단도 올바르게 내릴 수 있고, 삶의 이정표도 정확하게 세울 수가 있겠다.

제발 가지런한 마음과 반듯한 생각에서만이, 보다 큰 힘을 토출해 낼 수 있고, 더군다나 당신이 그토록 바라고 있을 간절한 목표까지 성취해 낼 수도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잘 직시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한번 잘 정립한 가지런함도 주변의 외란으로 인하여 자꾸 흩어지려고만 할 것이니,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매일 마음을 새롭게 함)의 마음으로 이를 붙들어 매어야 할 것이며, 그래서 매사 항상 덜렁대지 말고, 집중된 마음으로 접근하여야, 실수도 적을 것이고, 어떤 일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위기나 고난의 시기가 오더라도, 이렇게 정신적인 정돈 상태가 반듯하고 온전하여야, 결코 도망가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게 대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마음의 여유를 얻어라.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 닥칠 문제 등에 대한 통찰적 자세가 필요하고, 무엇이든 미리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하지 않던가?

“똑똑한 토끼는 자기 미래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 땅굴을 세 개 이상 미리 파두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어떠한 맹수가 들이닥치더라고, 빠져나갈 수단과 방법을 얼마든지 많이 마련하고 있어서, 매사 걱정과 염려가 없고, 항상 여유로울 수 있다.”라고 한번 의역해 볼 수가 있겠다.


이렇듯, 누구나 자기 상황에 맞는 앞으로 벌이질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요령을 미리 잘 마련해 두어야, 변화무상한 시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무게중심을 바로 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오로지 미리미리 지혜롭게 준비를 잘해 나가는 자만이 매사 염려가 적고,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웬만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자기가 자기 인생에서 꼭 이루고자 하는 핵심 가치에 꾸준히 집중하기도 용이할 것이 아니겠는가?

넷째, 지속성과 끈기를 담아라.


매사 무리나 욕심은 자기 생의 모든 화근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니, 이를 철저히 쫓아내려 해야 하고, 대신 지속과 끈기를 채워나가는 것이 좋겠다.

즉, 순수했던 초심이나 열정이 혹여, 자신도 모르게 무리나 욕심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하겠다.

관련된 작은 사례로서, 우리가 신호가 바뀌는 횡단보도를 무리하게 건너려고 하다가는, 숨도 매우 가빠지고, 호흡 곤란을 겪기도 하고, 심적으로 조급함 내지는 조바심도 많이 부추겨지게 되기도 하고, 심하면 자기 정신마저도 혼미해지기도 할 것이며,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자기 다리나 관절을 많이 상하게도 한다.

차라리 신호가 바뀌어 가는 상황 자체를 미리 쳐다보려 하지 말고, 순리대로 평소의 걸음으로 횡단보도에 다가가서, 교통법대로 잘 기다리고, 때가 되어 신호가 바뀌면, 그때 천천히 건너가는 것이 더 좋다.

만약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매우 아깝게 느껴진다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신호등 그늘막 아래에서 핸드폰으로 하고픈 일이나 작업을 하든가, 해야 할 공부나 취미도 가능할 것이니, 이러한 습관을 가져 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렇게 자신이 무엇인가 원하는 바에 연속적이고 끈기 있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순간순간의 ‘무리’는 아주 금물이다.

돌이켜보면, 조금의 이익을 보려고 무리를 하거나, 욕심을 내어 보아야, 결국 자신이 얻는 이익은 거의 미미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오히려 손해가 막심하거나, 여러 사고성 결과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다섯째, 항상 모든 것을 인정하려 하고, ‘예스, OK’를 입에 달고 다녀라.


복잡한 대인관계 속에서도, 당신은 항상 ‘예스, OK’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라면, 속으로라도 항상 되뇌는 것이 좋겠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여도 웬만하면 그냥 ‘예스(yes)’ 혹은 ‘OK’라고 말하여라.

당신에게 건네는 그런 제안 이전에, 이미 상대가 많은 생각이나 고민을 하였을 것이므로, 당신은 그냥 쉽게 ‘예스, OK’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쉽고 간단한 방법인가?,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잘 한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당신이 ‘NO’를 외쳐보아야 별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정말 상대방의 말에 ‘NO’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NO’ 대신에 가급적 상대의 의견에 ‘첨언’을 하려는 자세가 좋다.


즉, 상대방의 말은 이러이러한 측면에서 맞는 면도 많이 있으나, 추가적으로 다른 측면이나 다른 관점도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자극적인 ‘NO’라는 단어 혹은 이와 유사한 부정적인 단어를 무엇하러 고집하려는가?, 그러한 단어 대신 쓸 수 있는 용어가 얼마든지 많이 있을 것이니.

여섯째, 상승적 방향성에 집중하여라.

대인관계에서, 그 대화의 세부 내용이나 이해타산 혹은 감정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다 보면,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이 매우 소모적으로 변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극히 경계를 해나가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지적하면, 가능한 한 바로 거기에 맞대응을 하거나, 반기를 들지는 더더욱 말아라. 제대로 된 검토나 판단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느낌으로, 감정에 치우쳐 대응하게 되면, 항상 나중에 후회할 일이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나치게 즉각적인 반응은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은 그래도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고려한 후 당신에게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즉각적인 반발을 받게 된 것이니.

이럴 경우, 항상 일단은 긍정을 하거나, 판단 보류를 해두어야, 나중에 제대로 확인 후, 당신의 용이한 대처가 쉬워질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내 작은 사례를 한번 이야기해 보자면 이러하다.

오늘 아침에 스마트폰의 자동결제 앱을 이용하여 택시를 콜 했다.

도착지에 도착하여 영수증을 요구하니, 그 기사는 자동 결제용 영수증은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입력되는 것이니, 자기는 발행해 줄 의무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영수증 발행을 거부하였다.

나는 공적으로 영수증 증빙이 필요하여, 그 발행을 요청하였으나, 이렇게 고집스럽게 거부를 하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기사와의 작은 실랑이도 피하고 싶었고, 또 상쾌하게 오늘 일과를 출발하고 싶어서, 그냥 “그럼,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내렸다.

그러고는, 앱에서 “이 기사님의 택시 다시 이용하지 않기”를 선택하였다. 이 선택은 택시를 탄 손님의 자유이자 권리일 것이니, 간단한 평가와 함께 편하게 선택하였던 것이다.

혹여나 그 기사와 소모적인 대화가 진행되었더라면, 내 소중한 아침을 망칠 수 있었을 것이고, 차라리 이렇게 아주 간결하면서도, 절대 소모의 구렁으로 빠지지 않을 방법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일곱째, 생의 도리와 가치에 집중하여라.


자기의 삶에서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스스로 설정하고, 평생을 추구한 ‘가치(자기 생에서 스스로 지극히 원하고, 또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추구하는 것) ’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사 온갖 잡음에도 그리 흔들리지 않고, 자기 가치에 꾸준히 집중하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가치롭고, 아름다운 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이렇게 스스로 양심적으로, 진심으로 사고를 하여 정한 자기 가치를 따르는 삶은 항상 자신이 정성으로 추구해 나간 만큼, 나날이 발전되고 상승하는 방향성을 지닌 삶이 될 것이며, 자기 최후의 날에도 흐뭇해할 만한 보배가 되어줄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그 가치라는 것은, 당연히 인류 보편적 가치와도 절대 배치되지 않아야 할 것이고, 마땅한 세상 도리와도 대립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며, 오히려 그것들과 상통하여 맞닿아 있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행복이라는 것은 애써 잡으려 하면 더욱 멀리 도망가게 마련이다.

결코 붙들려하지 말고, 차라리 훨훨 날아다니게 놓아주어라.

자기만의 행복이 아니라도 좋다. 우리 모두의 소유라면.

사실, 행복은 누구나의 곁에 이미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 울며 던져진 것만 해도, 확률적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희박한 확률일 것이니,

즉, 이 세상을 직접 볼 수 있고, 한번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과 행복의 기회를 이미 얻은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생(生)을 한번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니,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 사랑, 보람 등 그 무엇인가를 남겨 놓을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얼마나 큰 행운 내지는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행복!

그것은 이미 당신 마음속과 당신 주변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니, 마치 당신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것이 또한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그냥 느끼기만 잘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깊이 들이켜 음미만 잘해 나가면 된다.

자! 이제, 그것을 온몸으로 한번 느껴 보아라. 당신의 세포 속까지 한번 들이켜 보아라.

그 느낌을 ‘행복’이라고 기꺼이 불러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