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한 자기중심을 지켜나가고, 네 ‘온전한 평정심’을 완성하여라!
우뚝한 자기중심을 지켜나가고, 네 ‘온전한 평정심’을 완성하여라!
"어떠한 궁지에도 평정심을 지켜나가라.
상대의 날 선 말에도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라.
항상 흔들림 없는 자기중심을 유지하여라.
그 어떠한 난관에도 마음을 차분히 다잡고,
자기 온전함을 유지하여라!
고난의 상황에도 평정심을 지켜라.
상대방과 첨예한 다툼이 생겼을 때도,
심지어는 비극적인 일을 맞닥뜨려서 조차도,
결코 평정심을 잃지 말아라.
그래서 온전한 자신을 지켜 내어라!
심지어 배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무서운 번개나 폭풍우가 내리치는 상황에도,
하늘과 땅이 뒤바뀔 것 같은 혼돈의 사태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는 더더욱 말아라.
온전한 평정심을 다잡아 너를 완성하여라.
그러면 분명 솟아날 방법이 생겨날 것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떤 외란에도 결코 동요되지 않는 ‘온전한 평정심’(위기나 고난에도 불구하고 평안하고 고요하여 흔들림이 없는 마음)만이 당신을 제대로 완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당신이 아무리 평정심을 잘 유지하려 하여도, 주변에서 여러 외풍이 불어오고, 여러 외란이 몰려오며, 심지어는 경쟁자의 날 선 공격이 밤낮으로 들이닥칠 수 있을 것이니, 이는 결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당신이 결코 아무런 동요 없이 온전한 평정심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고, 평온함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자!
첫째, 궁지에서도 이성적 표출이 좋다.
대인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자기 마음속에 감정으로부터 기인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공정과 합리성 등의 이성적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따라서 보통은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극찬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태도는 피해야 할 것이며, 또 자신의 감정적인 부분, 순간적인 판단, 내재된 분노 등을 표출하는 것은 더욱 금물이다.
특히, 어떤 궁지에서도 분노의 표출은 매우 좋지 못한 태도일 것인데, 분노라는 것은 보통 수 초 동안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결코 자신의 온전한 감정 혹은 의도된 감정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니, 이 짧은 수 초 동안 시간을 잘 넘겨야 한다.
둘째, 모든 존재에 대해 존중으로 다가서라.
미운 상대방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일은 거의 어렵겠지만, ‘존중’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인격체로서의 당연한 존중, 상대방의 의견이 나중에는 오히려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존중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존중은 ‘인정’을 낳아, 비로소 원활하고 부드러운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즉,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상대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상태이어야 올바른 대화, 생산적인 대화가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의미이겠다.
꼭 그런 다음, 상대와 차분히 유·무언의 소통과 타협에 들어가라. 매우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상대의 존재를 생각 없이 무시하거나, 부정을 하려 들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당신을 상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때로는 더욱더 사납게 변하여 네게 격동의 회오리를 몰고 올 수도 있다.
셋째, 아무런 근심도, 집착도 버려라.
근심, 조급증과 집착 따위를 버리고서, 말수는 다소 줄이는 것이 좋다.
오히려 경청에 더 집중하여라.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어라.
어떠한 난감한 상황에서도, 항상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라.
보통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일을 가지고서 근심하고 집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니,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난감해하거나,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정치적 사안에 대한 언쟁에서도 너무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서, 진보든 보수이든 간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긴 안목으로 보면, 훌륭한 우리 국민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 되고, 역사는 결국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론적 혹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정중동(靜中動)을 유지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민감한 부분일수록 말수를 가능한 한 줄여라.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쉽다. 특히 불특정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는, 그 대화 상대의 인격적 특성에 따라서, 당신이 아무리 공정하게 이야기하여도 일정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일 것이다.
그래서 불특정 상대방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야 할 상황이려면, 아예 상대방의 오해 소지를 사전에 없앨 수 있도록, ‘팩트’ 위로로만 이야기하고, 주관적인 평론은 가급적 자제하여라.
넷째, 때로 연민을 주어라.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정이나 마음을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정 혹은 연민을 주는 것이 더 낫다.
상대방이 훌륭하다면 기꺼이 손뼉 치며 인정하고, 상대방이 엉터리라면 비방이나 비판을 하려 들지 말고, 차라리 연민을 보내주어라.
상대방에게 정이나 마음을 너무 쉽게 주게 되면, 그게 나중에 실망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며, 때로 심하게 상처받을 수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너무 쉽게 정도, 마음도 주지 말고, 그냥 인정이나 연민을 보내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특히, 상대방이 당신을 공격해 올 때는 차라리 그 졸렬한 인간성에 대해 연민을 보내주는 것으로 일단 정리해 보는 것이 좋겠다.
다섯째, ‘해납백천’이다.
해납백천(海納百川 :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임; 바다는 아주 통이 커서 어떠한 오염물이나 외란이 쳐들어와도 결코 아무런 동요함 없이, 자신의 온전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화함)을 잘 이해하여 실천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바다는 아무리 큰 돌이 던져져 들어와도, 그 던져진 주변에서만 잠시 약간의 물결이 일다가 금방 없어져 버리게 되고, 이전의 항구한 상태와 모습을 바로 다시 찾게 마련이다.
또, 바다는 아무리 큰 오염물이 들어와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게 되면, 금방 모든 것을 정화하고, 이전의 상태를 회복한다.
그러나, 아주 작은 어항에는 작은 돌이나 약간의 오염물이 들어와도, 아주 큰 동요가 일어나거나, 그 오염물질에 의해 거의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렇듯 바다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소화할 수 있고,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그만큼 됨됨이(인격)의 그릇이 크고, 큰 내공을 가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바다를 닮을 필요가 있겠는데, 문제는 누구에게나 그게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수양하여 자기 인격의 그릇을 엄청나게 키워야 할 것이고, 또한 평생 알찬 경험과 인격의 연마를 통하여 자기 내공을 아주 크게 키워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결코 공짜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바다 혹은 바다 근처라도 가려면, 당연히 그만한 수고쯤은 감당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편협된 사람을 만나,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진 이야기를 많이 들게 된다면, 오로지 해납백천의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일단은 잘 받아들여 소화하고, 차분히 다시 설명과 설득을 건네주면서, 상승적 대화를 이어 나가거나 혹은 상대의 성향에 따라서는 대화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어, 차라리 새롭고 유쾌한 주제로 분위기를 전환시켜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특히 상대가 첨예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네 마음에 큰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주제를 제기한다면, 이때에는 화제의 전환과 더불어 자기중심(평정심)의 사수가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즉, 상대의 공격으로 인해 정신적 산란함이 가중되고, 극심한 혼란이 도래하여도, 절대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온전한 중심을 굳건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평정심과 관련된 실례를 몇 개 들어보자.
그 첫 번째 예로, 어떤 거래나 계약을 할 때 상대방이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보통 많은 사람들이 바로 화(禍)를 내거나,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따지기가 일쑤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 고수라면, 절대 먼저 화를 내지 말 것이며, 아무리 그 화의 원인과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여도, 당신의 합리적이고 반듯한 의견을 상대방이 못 받아들인다고 하여도, 평온한 마음으로 끝까지 대화를 잘 이어 나가는 것이 좋다.
설령 당신의 설득력이 끝까지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합의에 끝내 실패하더라도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이번에 설득을 해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면, 다음에 다시 만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전략으로 협상을 계속 이어 나가면 된다고 편안히 생각하여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조급해하거나 화를 먼저 내는 것은 최악의 선택일 것이고, 느긋한 마음으로 평정심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보통은 가진 것이 많은 자일수록 협상에 유리하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더라도, 대화를 진행해 나가면서 절대 조급해하는 마음 없이, 상대를 능수능란하게 점점 자기편으로 만들어 나가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도 많은 상거래나 협상에서, 비록 가진 것이나 밑천이 매우 적더라도, 결코 조급해하지 않고, 아주 느긋하고 여유 있게 협상을 이어 나가, 결국 최종적으로 자기에게 매우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게 바로 온전한 평정심의 힘인 것이니 말이다.
두 번째 예로, 정치적인 견해에 대한 대화 도중, 서로 다툼이 생긴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보통의 경우,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자기와 정치적인 진영이 다르다고 생각될 경우, 아예 말을 않거나, 상대방을 설득하려 들거나, 가식적으로 동조해 주려 하는 경우 등의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가 만약 아주 첨예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어떤 계기로 다툼이 생기게 되면, 그때는 상대방을 가차 없이 공격하려 들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은 대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협된 마음을 가진 자일수록 더욱 심할 것이다.
그러나, 평정심을 제대로 갖춘 고수는 진영논리에 따른 상대의 날 선 주장에 결코 평정심을 잃지 않을 것이며, 보통 자기의 말수를 줄이고서, 마음속에 고요함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일단은 상대방의 주장을 많이 들어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기회가 오면, 그때서야 자기주장을 약간씩 꺼내놓으려 할 것이다, 결코 강하지 않고 느긋하게, 조금씩.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들을 귀가 생겼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그때서야 드디어 본론을 꺼낼 것이다.
아무리 바른 말, 좋은 말을 해주려 하여도, 상대에게 들을 귀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세 번째 예로, 온전한 평정심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고사’를 하나 도입해 보자.
제법 많이 알려진 고사 중 장자(莊子)의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는 이야기이다.
목계지덕(木鷄之德; 나무로 만든 닭처럼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라는 이야기에 따르면, 주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좋아하여, 하루는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에게 맡겨서 최강의 투계로 기르도록 명하였다. 이윽고, 열흘이 지나서 물었다.
“닭이 이제 쓸만하게 되었느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 되었습니다. 힘은 강해졌지만,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과 기성자의 대화가 오갔다.
“닭이 이제는 좀 쓸만하냐?”
"아직 안 되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와 그림자만 보아도 쉽게 반응하고 덤벼듭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 왕과 기성자의 대화가 오갔다.
“닭이 이제는 다 준비되었겠지?”
"아직 안 되었습니다. 간신히 참기는 하나 상대를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사납습니다."
이후 다시 열흘을 지나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상대에게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木鷄)과 같습니다.”
목계지덕(木鷄之德)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인데, 요즘의 용어로는, 강한 멘탈과 엄청난 내공을 제대로 갖춘 사람의 지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목계지덕’의 지혜를 갖춘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웃되지 않고, 어떠한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자기 고요한 마음에 온전한 평정심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는 여러 구체적인 방법과 그 관련된 몇 가지 사례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았다.
모쪼록, 어떠한 화나는 상황이나 분노의 위기에서도, 어떠한 날 선 공방의 상황에서도, 당신이 해납백천과 목계지덕의 도를 잘 지켜나갈 수 있다면, 상대방이 감히 당신을 무너뜨릴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당신에게 점차 공손해지려 하거나,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당신을 존경해 마지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마치, 세상인심이 모두 당신을 향하여 수렴되어 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