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을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

네 생(生)을 오직 아름다운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

by 신정수


네 생(生)을 오직 아름다운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



네 생에 어떤 순간에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직 크고 대범한 길을 걸어라.

아무것에도 아랑곳없이 가라.

네 생을 오직 아름다운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


중간중간에 어떠한 곡절이 있어도 결코 굴하지 말고,

오직 무덤덤하게 넘겨라.

계속 네 중심 길만을 걸어가라.

생 전체를 몽땅 거시적 관점으로 투영하여라!


온갖 잡음이 몰려오고, 암울한 궁지에 빠지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말아라.

뚜벅뚜벅 네 길을 다시 걸어라.

오직 네가 그토록 바라는 길만을 걸어라!


생은 항상 그 과정 자체에 큰 뜻이 담겨 있으니,

현 세상의 아름다움에 몸부림으로 감격하여라.

어떤 결과에도 연연하지 말아라.

네 소중한 작품을 만드는 마음으로 써내려 가라!



우리가 살아가며, 많은 대인관계 속에서 서로 사람들을 마주 대하다 보면, 매우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대범한 인격’이라 칭함, 이하 동일)이 있는 반면, 그때그때 태도나 표정이 많이 변하여, 매우 불안해 보이는 사람(‘불안정 인격’으로 칭함, 이하 동일)도 많다.


물론, 누구나 전자의 경우처럼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게 그렇게 녹록지 않을 수 있다. 순간순간 돈 욕심, 자리 욕심, 여러 경쟁 욕심 등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고, 점점 조급증을 가지게 되며, 또 그런 것에 계속 시달리다 보면, 어느덧 네 삶이 엄청나게 황폐해져 있음을 느끼게 되고, 초심의 평안함은 매우 요원하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이러한 증상이 심한 사람의 경우에는, 아예 예측 불가능의 인격, 혹은 종잡을 수 없는 인격으로 변해 버릴 수 있고, 심지어는‘위선적 인격’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면, ‘불안정 인격’을 극복하고 안정감이 충만한 ‘대범한 인격’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범한 인격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자기 생을 거시적 관점의 대서사시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니, 이렇게 살 수 있는 방법적 측면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물론 여기에도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러나 대체적이고 보편적인 몇 가지의 방법을 한번 제안해 보기로 한다.


네 생을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1.png “네 생을 거시적 대서사시로”(그림;.amazon.com)



첫째, 대인 관계에서는 가능한 한 셈법을 적용하지 말아라.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경조사비’의 사례로 한번 대신해 보자.


지인들 간 여러 경사 및 조사에 대한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낼 때, 당신은 보통 어떻게 그 합당한 금액을 정하는가?

대개는 상대방이나 언론매체 혹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나 정보를 들어서,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그 사람이 나의 경조사에 내어준 금액을 잘 메모해 두었다가, 이와 똑같은 금액으로 되갚으려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차라리 그냥 당신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혹은 당신의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주면 된다고 생각하여라. 아니, 적어도 과거에 당신의 경조사 시에 상대방이 내어 주었던 금액을 확인하여 그대로 되갚아 주려는 방법은 좀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때와 지금은 이미 여러 개인적 사정, 사회적 인식이나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수 있고, 물가 자체도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매사 셈법을 적용하여 처신하다 보면, 상대에게 결코 작은 감동 하나라도 주기 어렵고, 참다운 위로나 축하를 건네는 것이 아주 요원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차라리 당신의 판단이 좀 틀려도 좋으니, 일단 당신의 판단력을 믿고서, 생각이 되는 대로, 판단이 되는 대로 그냥 주어 보아라.

당신이 그렇게 판단하여 경조사비를 건네주었는데, 만약 그 상대방이 당신이 낸 돈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관계가 소원해질 정도의 사이라면, 그 사이는 이미 그리 중요하거나 친밀한 관계가 아닐 것이다.


조금 작든, 조금 크든 간에 그냥 “어련히 알아서 내었겠지!”라고 생각해 주는 친구나 지인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벗일 것이다. 아니, 그런 액수는 아예 신경 자체를 안 쓰려는 벗이 진짜 오래 관계할 수 있는 ‘인생 벗’ 일 것이다.


또한, 과거에 당신의 경조사 당시에 상대방의 방문 여부를 따져서, 당신이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도 결정하지도 말아 보아라.

만약 당신의 참석 여부에 실망할 벗이라면, 이 역시 별로 중요하지 못한 관계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무슨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여, 참석을 못 하였다면, 차라리 아래와 같이 생각해 줄 수 있는 벗이 진정한 벗일 것이다.


“그 친구가 참석을 못하는 것을 보니, 뭔가 큰일이 있는가 보다!

조만간 어떻게든 연락이 오겠지. 뭐!

, 혹시 며칠 후에도 연락이 계속 안 온다면 무슨 큰 사달이 났을 수도 있을 것이니, 내가 먼저 연락을 꼭 해보아야 하겠다!”


이렇게 참석 못 한 벗을 걱정까지 해 줄 정도가 되어야 진정 오래갈 수 있는 혹은 진정 의미가 큰 ‘인생 벗’이지 않겠는가?


둘째, 상대방의 요구에 이것저것 조건을 달거나 따지지 말아라.

이 부분은 옛 고사로서 그 설명을 대신해 보고자 한다.


어떤 마을에 자기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많으며, 자신이 어려울 때 언제든 도와줄 친구들이 많다고 말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이를 본 자기 아버지가 한번 시험을 해보았다.

아버지는 친구 많다고 자랑을 해대고 다니는 아들에게 지게를 지게 하고, 그 지게에는 삶은 돼지를, 마치 김밥처럼, 멍석으로 둘둘 말아서 실었다. 그러고는 아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자랑을 하였던 친구들의 집을 순서대로 돌아가며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아들은 친구를 대문 밖으로 불어내어, 지게를 가리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내가 어쩌다 실수를 하여 사람을 죽였고, 지금 그 시체를 멍석에 말아 숨겨왔으니, 좀 숨겨줄 수 있겠니?”

그러자, 그 친구들은, 같이 기분 좋게 술 마실 때나 희희낙락 놀 때와는 달리,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같이 낯 빛이 바뀌며 좀 곤란하다고 말하고는 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어떤 친구는 아예 아래와 같이 말했다.


“너 지금 제정신이냐? 나마저 관아에 끌려가게 할 셈이냐?”


네 생을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2.png ‘진정한 인생 벗’ (그림:/.shijizhuan.com/jingdian/cydg)


이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 지게를 대신 지고서, 아버지 친구들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그랬듯이, 아버지는 자기 친구의 집에 도착하여 다급하게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버선발로 뛰어나온 친구에게, 아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말하였다.


“내가 어쩌다 실수를 하여 사람을 죽였고, 지금 그 시체를 멍석에 말아 숨겨왔으니, 좀 숨겨줄 수 있겠니?”

그 아버지의 친구는 두말하지 않고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잠시 안타까워하더니, 금방 그 친구의 손을 끌어 자기 집 안으로 들인 것이다.

그리고는 자네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엇인가 필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같이 대책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을 직접 목격한 아들은 매우 감복하여, 더 이상 친구 많다는 자랑을 하지 않았고, 친구를 자주 불러 술을 퍼마시는 습관도 자제하였고,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스토리이다.


진정한 벗은 바로 이렇게, 설사 벗의 엉뚱한 요구에도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결코 따지려 들지 않고, 두말없이 응하는 자일 것이다.


셋째, 천천히 믿음을 주고받으며, 삼위일체를 만들어 나가라.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고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대인 관계에서, 보통 상대방의 생각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그의 말이 얼마나 유창하여도, 그의 행동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일단은 일정 기간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켜본 후, 네가 정말 인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믿음을 건네는 것이 좋으며, 이렇게 한번 믿음을 주고받은 관계라면 상대의 웬만한 실수나 잘못이 있더라도, 절대 의심하지 말고, 가능한 한 그 믿음이 끝까지 변치 않도록 해주는 것이 좋겠다.


즉, 우선 생각과 말이 일치하게 되면, 그의 진실성과 진정성은 인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추가적으로 반드시 언행일치가 되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상태가 된다면 이것은 아주 곤란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누구를 잠시 좋아했다가도 금방 실망감을 토로하는 사람을 무척 많이 보아 왔고, 또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게 되면서 상대에게 뒷담화나 흉을 가차 없이 해대는 사람도 많이 보아 왔다.

심지어, 한때는 아주 절친이었는데도, 서로 큰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척을 지고 사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다.


이렇게 엉클어진 상황은 보통 너무 쉽게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을 준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마음을 준다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니 너무 쉽게 주어서도 안 되고, 한번 준 마음이라면 웬만해서는 다시 거둬들이지 말고, 변치 않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겠다.


따라서, 만약 일상적인 대인 관계라면,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항상 친절하고, 협조적이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선이 적당할 것이다.

너무 성급하게 믿음을 준다든지, 마음을 준다든지를 한다는 것은 자칫 당신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어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진실되게 사귀기 위해서는 너무 쉽게 ‘신의’를 표한다든지, 너무 쉽게 자기 마음을 몽땅 주지 말고,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관되게 실천될 때를 기다려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때로 무척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때로 비교적 빨리 판단이 될 때도 있겠다.

그러나 진실된 사귐을 위해서는,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대인관계를 하여야지, 자칫 무리한 기대나, 무리한 평가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넷째, 아예 처음부터 실패도 없고, 실망도 없을 만한 방식을 항상 선택하여라.

이 부분은 내 작은 이야기로 대신해 본다.


내가, 본업이 아닌 부가적인 업으로서, 몇 개의 지자체에 건축물의 품질 혹은 안전 점검위원으로 나가고 있는데, 내 분야만 해도, 약 세 명 이상의 복수 위원이 등록되어 있고, 매번 해당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이 직접 AI를 이용해 선정하거나 혹은 자기의 직무적 판단 등을 통해 선정한 후, 콜을 넣어주는 위원이 현장에 점검을 나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담당 공무원이 나를 많이 불러줄 때도 있고, 어떤 시기에는 잘 불러주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각 위원들은 다른 위원들보다 자신을 더 많이 불러주기를 원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별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거의 거기에 연연하지도 않으려 한다.


즉, 나를 많이 불러주면 불러주어서 ‘위원 활동비’를 많이 받아서 좋고, 현장에서 다양한 기술적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고, 또 현장에 참석한 많은 전문가들과 지식 교류를 할 수 있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잘 안 불러주는 시기가 되면, 담당 공무원이 다행히 나를 안 불러주어서 고마운 일이라고 그냥 생각한다.

즉 이 경우에는. 내가 여러 분야의 일을 좀 하고 있다 보니, 오히려 현재 하고 있는 몇 가지 분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어서 좋고, 현장에서 너무 에너지를 빼지 않아서 좋고, 여러 일정이 아예 겹치지 않게 되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두 가지의 경우가 모두 서로 장단점을 뚜렷이 가지고 있어서, 내가 모두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두 가지의 경우 모두가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상대적 우열을 가리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또, 본업이 아닌 작은 일들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도 생각한다.


또, 만약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런 유사한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현재 너무 일을 많이 벌이게 되면, 자칫 현재 맡고 있는 일처리가 산만해질 수 있으니, 좀 숨 고르기도 필요하고, 추가적인 활동이나 일에 대해서는 좀 천천히 상황을 고려하여 신청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심 스스로 자신감을 충진 하려 하는 편이기도 하다.


즉, 자기 인생에서 실패를 하려야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 실망을 하려야 실망하기 어려운 선택과 생각을 항상 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가 상황에 대한 만족과 실망을 크게 갈라놓을 수 있고, 성공과 실패를 아주 갈라놓을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우리는 소중한 자기 생을 너무 굴곡지게 혹은 질곡으로 살지 말고, 큰 흐름으로 혹은 대범한 줄기로 살아낼 필요가 있다.

어떠한 고난이나 유혹에도 결코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삶 혹은 현재의 삶에 항상 감사하고 집중하면 된다.


무엇이든 남과 비교하여 결정하지 말고, 항상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답을 구한 후, 결정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는, 결코 남들이 네게 보여주는 모습에 영향을 받지 말고, 스스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판단하되, 어떠한 것에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항상 대범하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판단하여라.

그리고, 그러한 판단에 따라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모두 일치시켜 나가라. 이는 분명, 장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격에 대한 큰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살아가며 순간순간 작은 잡음들은 있을 수 있을 망정, 크게 보면, 이 세상 모두가 네 것이다.

모든 것을 네 기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며, 이는 과연 가장 당신 다운 방식, 가장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당신의 삶 주위의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당신을 당연히 인정할 것이다. 아니 이 세상이 삼위일체하는 당신 쪽으로 수렴해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오직 당신의 생을 웅장하고 대범하면서도, 거시적 관점의 대서사시로 써내려 가라. 그래서 가장 크고 온전한 행복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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