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놓은 만큼, 당신의 공간에 보배로이 쌓인다!
내어놓은 만큼, 당신의 공간에 보배로이 쌓인다!
많이 내어놓아라.
그런 만큼 보배로이 쌓일 것이다.
자신을 깨끗이 비워라.
더 새로운 것으로 한가득 채워질 것이다.
네 마음에 편안과 평화를 담아라.
유토피아가 따로 없을 것이다!
오만과 교만을 과감히 던져 버려라.
그런 만큼 상대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자기 도리를 다하여라.
평안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마땅한 일을 쫓아라.
신의 섭리에 가까워질 것이다!
많이 베풀어라.
그런 만큼 보배로이 저축될 것이다.
우주 공간을 베풂으로 채워라.
채운만큼 다시 들이마실 것이다.
무엇이든 대가를 바라지 말아라.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후하다는 평을 듣느냐!, 아니면 인색하다는 평을 듣느냐!”의 문제는 아주 작은 돈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 방법에 달린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인 간에 오래간만에 만나서 커피 한 잔을 하고서 계산을 할 때도, 그 대화에서 내가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내가 내려할 것이고, 나보다는 상대가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면, 왠지 내가 먼저 계산하는 것이 꺼려지게 될 수도 있다.
또 달리 표현해 보면, 상대방이 소중한 시간을 내게 내어주었다고 생각되거나, 내가 앞으로 상대에게 얻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내가 기꺼이 내려할 것이고, 반대로 내가 충분히 잘 났으니 혹은 앞으로 상대에게 별로 얻을 것이 없겠다는 계산이 서게 되면, 내가 먼저 내기를 꺼려할 수도 있겠다.
즉 다시 말해, 내가 상대에게 기꺼이 무엇인가를 내어놓으려 하거나, 주려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크거나,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담보하고 싶어서도 그럴 수 있는 것이겠다.
반면에, 내가 인색해지고,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기를 매우 아까워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거의 없거나,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러할 수도 있는 것이겠다.
여기서, 후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오만과 교만의 발로일 것이니, 자기의 도리를 잘 모르는 경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심하면, 남의 위에 군림하려는 성향의 경우도 있으며, 보통은 상대를 얕잡아보고 자기보다 처지가 약한 사람을 윽박질러서 자신이 원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내어 놓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류는 그야말로 아주 고약한 엉터리 인격이라고 할 것이며, 누구나 자기 소중한 인생을 참답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아주 경계를 하여야 할 인격의 유형인 것이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이다.
내가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많이 내어놓으려 하는 것 자체는 매우 훌륭하지만, 만약 이것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니고, 미래에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계산하여 행하는 행동이라면 이것 또한, 별로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이럴 경우는, 만약 나중에 자기가 머릿속으로 계산한 것보다 더 적게 받게 되거나, 아예 못 받게 되기라고 하게 되면, 그 인간관계는 파탄 나기 일쑤이니, 자기 인생에서 주변과 제대로 된 소통이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상대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존중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
그러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색’은 자금 당장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려라!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많이 내어놓고,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내어놓음은 이른바, 저축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공짜도 없고, 죄에 대한 사면도 없는 법이다.
내가 무엇인가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면, 언젠가는 나도 대접을 하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내가 세상에 어떤 악덕을 저지르면, 그것이 완전범죄가 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못하다.
현실적으로는, 미궁에 빠진 사건들이 많아서, 마치 완전범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사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아 감옥에는 안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정신적 고통이 감옥 생활 이상으로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에, 사회에 많이 베풀어 놓으면, 마치 예금이나 저축을 해놓은 것처럼, 언젠가는 이자까지 합쳐져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렇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자신의 선행을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낌없이 베풀어 놓게 되면, 우리가 숨 쉬는 이 공간에 자신의 덕(德)이 가득 채워질 것이고, 그 덕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과연 그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자신이 그렇게 풀어놓은 덕은, 자칫 조급해하여 대가에 안달만 내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 땅에서 숨 쉬며 살아가면서, 결국 다시 들이마시게 될 것이 자명하다. 즉, 그 덕을 언젠가는 이웃도 향유하고 자신도 한껏 기쁘게 향유하게 되어있다.
둘째, 많이 내어놓아야, 더 많이 벌 수 있다.
커피값이든, 밥값이든, 술값이든, 항상 자신이 먼저 내려하는 것이 더 좋다. 물론 누구나 지불해야 할 가격을 순간적으로 높게 평가하게 된다면 쉽게 인색 모드로 빠져들 수도 있겠으나, 이른바 많이 쏘아야,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과 좋은 자리를 같이 했다면, 어쩌면 자신이 서둘러 계산하려 해야 마땅할 것이고, 혹시라도 그 지인이 먼저 계산을 해 버리면 어쩔까 하는 마음에 걱정까지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 보통 커피 몇 잔 값, 밥값, 술값 등은 자기 인생에서 부(富)와 거의 관계가 없다. 즉, 그 돈이 있으나, 없으나 간에 자기 인생의 수준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술값이라면 꽤 큰돈이라고 생각하여, 많이들 난처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 정도의 돈 역시 흔쾌히 내어놓으려 마음먹는 것이 좋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과연 당신이 그 정도도 못 내어놓을 정도의 사람들과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술잔을 부딪혀 가며 진지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말인가?
재물은 잘 써야 그만큼 다시 잘 채워지게 마련이다.
잘 알다시피, 우물의 물도 너무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마르기 쉽고, 자주 퍼내어 주어야 더 신선한 물로, 그것도 더 ‘한가득’ 채워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돈은 버는 것과 저축하는 것 이상으로, 멋지고 후하게 잘 쓰는 것 혹은 적절하게 지출하는 부분이, 자기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만약 잘 쓰지 못한다면,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 약간의 제자리걸음 혹은 작은 진동(몸짓) 정도만을 하고 있는 작은 존재가 될 것이고, 모름지기 멋지게 잘 써야, 더 큰 보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더 크게 벌려고 할 것이고, 그런 만큼 더 큰 성취가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 내어, 결국 자기 인생을 대체적으로 우상향 그래프의 형태로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도리’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든, 물건이든, 재능이든 간에 많이 내어놓아야 그것들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움켜잡고 있으면, 내 하나의 활용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러한 것들을 아낌없이 서로서로 내어놓아, 여러 사람들이 같이 혹은 동시에 활용한다면, 그 가치는 두 곱절, 세 곱절 등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원리는 너무나도 지당하고 마땅하여, 어쩌면 신의 본성에 가깝다고도 평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렇게 자기 인생에서 남을 위해 돈이나 여러 물건, 재능 등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방식으로 선(善)의 씨를 뿌리는 것 혹은 베풂을 실천하는 것은,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서도, 도도한 신의 섭리를 실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실천을 아낌없이 지속하게 된다면, 그 대가와 상관없이 그 실천만으로도 자기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고, 평화로워질 것이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재물의 속성 측면에서도 보면, 재물이라는 것은 올바른 곳으로 잘 흘러가야 썩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흐름의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그 재물이 더 필요한 쪽으로, 더 마땅한 쪽으로, 더 낮은 쪽으로, 더 간절하고 노력하는 쪽으로, 더 존중받아야 할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 속성(발란스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 길을 결코 막아서거나, 거스르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며, 항상 존중하고픈 상대를 위해 풀어주고 내어 놓으려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이와 관련된 실례를 두어 개 들어보자.
첫 번째 예로, ‘김만덕’의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조선말 상인, 김만덕은 자기가 살던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 온 쌀을 진휼미로 기부하였고, 이로 인하여 제주도의 많은 빈민이 생명을 구제받을 수 있었다.
74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양아들에게는 기본 생활비만을 물려주었고, 나머지 모든 재산을 제주도 빈민의 구호에 써달라며 기부를 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녀를 의녀(義女)로 칭하고 있다.
그리고, 또 매우 중요한 것이, 그녀는 무슨 대가를 바라서 그러한 일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래와 같은 그녀의 여러 행적이 다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정조대왕은, 그녀의 ‘소원’을 물어 금강산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얼마나 소박한 소원이었던가?
그러니, 정조는 더욱 감동하여, 전례 없이 김만덕을 직접 불러 만났다고 하며, ‘의녀반수’에 봉하여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유람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학자인 채제공, 정약용, 김정희 등으로부터 칭송의 많은 시과 글을 받았으며, 이러한 칭송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과연 그녀는, 기근이 많고 질병도 많던 아주 엄혹한 시기에 태어나,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낸 것인가?
두 번째 예로, 내가 직접 겪은 작은 이야기이다.
내가 소중하게 만든 기술 자료를, 주변 사람들의 요청이 있어서, 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원본(한글 및 파워포인트 등) 그대로 많이 보내주었다. 즉, 자료 활용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그들은 내가 보내준 자료를 그대로 이용하여 주요 회의에서 발표도 하였고, 그 내용을 일부 각색하여 또 다른 자료로 업글하여 여러 곳에 많이 활용도 했다고 한다.
당시, 내가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지 않았었고, 그 자료를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유하여, 필요한 곳에 많이 활용하게 함으로써, 자료의 활용도와 가치를 매우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나름의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내가 혼자 그 자료를 움켜잡고 있어 보아야, 아무리 잘 활용한다고 하여도, 그 활용도는 한계가 있을 것이니, 대외비가 아닌 범위 내에서는 가능한 한 많이 공개를 해주어서 많이들 활용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중에 내 컴퓨터와 USB가 랜섬웨어(Ransomware)에 걸려, 거기에 저장되어 있던 그 원본 파일이 모두 망가져 버리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예전 원본 파일을 일부 수정하여 또 다른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할 다소 긴급한 상황이었는데, 그 원본 파일이 한순간에 없어졌으니, 순간 눈앞이 깜깜할 지경이었다, 약 일주일 정도를 추가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다행히 예전에 여러 곳에 보내준 그 원본 파일을 다시 돌려받아 그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들 중 대부분이, 내가 무슨 자료를 요청하게 되면, 대개는 기꺼이 없는 자료를 애써 만들어서라도 내게 보내주려 하는 성의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런 것에 셈법을 적용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만, 만약 이것을 정확한 셈법으로 따져 보더라도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인색이라는 것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당신의 인간성을 타인에게 나쁘게 보이게 할 뿐일 것이고, 주위로부터 자꾸 당신이 멀어지게 할 뿐일 것이다.
많이들 내어놓아라.
그 덕은 당신이 숨 쉬는 공간에 충만하여, 스스로 다시 들이마실 것이 자명하다.
그러면, 뭐! 김만덕처럼 그렇게 칭송의 시나 글까지는 못 받을지 몰라도, 그렇게 기꺼이 행함 자체만으로도, 나중에는 스스로 충분히 만족해할 수 있겠다.
모름지기, 인색은 불신을 낳고, 불신을 받게 되면 자기 스스로를 작은 방게 가둬지게 할 것이며, 베풂은 믿음을 낳고, 믿음이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온통 충만해진다면, 당신은 ‘믿음 부자’ 혹은 ‘마음 부자’가 되어, 엄청난 자신감과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드디어, 진정 가치롭고 보배로운 성취, 생각보다 더 큰 성취, 계산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분명히 이루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