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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평행 우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by 김듀키 Mar 28. 2025

 살금살금 들어온 정성이 무색하게, 나는 건물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집에 이미 누군가 들어와 있던 것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누구세요?”


“문자 못 받으셨어요? 지구설계과 담당 공무원 박시민입니다.”


“네?”


이 신종 스팸 문자는 대체 무얼 등 처먹는 것일까? 내겐 몇백만 원 아니, 몇십만 원조차 없는데… 뭘 뺏겠다고 집까지 침입하냐고.


[탕탕탕-]


[명군!!! 무슨 일이야!! 할아버지야!!! 문 열어봐!!!]


내 비명을 들은 할아버지가 다급히 내려온 모양이었다.


“하… 이거 참, 시간 없는데. 얼른 문 열어주시죠.”


남자는 너무나 당당한 태도로 할아버지의 입성을 독려(?)했다. 옳지, 그래. 어디 우리 주인님 앞에서 어떤 변명을 하나 보자고.


나는 불을 켜고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손에 랜턴을 들고 놀란 눈으로 서 계셨다.


“명군이 소리 지른 거지? 무슨 일 있어?”


“아… 네. 놀라셨죠? 죄송해요. 그런데 저…”


이런 이상한 사람이 집에 있다고, 뒤를 돌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문을 열면 집 전체 구조가 훤히 보이는 원룸에서, 도망갈 곳이란 없다. 창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화장실로 숨었나? 헐레벌떡 문을 열어봤지만, 아무도 없다. 화장실 창문은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크기다.


“어… 저기…”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도 할아버지는 침착한 얼굴인 게, 순간,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바퀴벌레라도 봤어?”


“어… 네! 아, 그런가 봐요.”


오늘 일이 너무 충격이라 미쳐버린 걸까. 무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덜컥 할아버지가 꺼낸 바퀴벌레를 물었다.


“명군, 겁이 많구나. 하긴 요즘 바퀴벌레들이 엄청 크지. 매미만 한 것들이 날기도 어찌나 잘 나는지! 부웅~ 날지도 않아. 붕!!!! 하고 날아서 내 얼굴에 막! 사정없이 빡!! 부딪치는데…”


주인님… 너무 생생한 표현은 자제해 주세요.


“바… 바퀴벌레들이 많나요?”


“아니? 내가 약을 정기적으로 쳐서 안 나와. 근데 이거 이거… 명군 방에 나왔다고 하는 걸 보니까 약을 칠 때가 되긴 됐나 보다. 지금은 내가 동네 순찰을 해야 해서 안 되고, 내일 명군 출근하면 방에 약을 싹 쳐줄게!”


“동네 순찰도 하세요?”


“그럼! 매일 밤 9시에 우리 건물 주변은 할아버지가 싹 돈다! 명군은 걱정할 필요도 없어! 할아버지가 예전에 도둑도 몇 번이나 잡았다고?”


대한민국에 좀도둑이 설치던 시절도 다 옛날 옛적 일이지만. 할아버지가 그 옛날 옛적을 살아온 분이니... 그게 언제든 대단하다. 엄마 말대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주인님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순찰 업무로 인해 주인님은 수다 보따리를 풀지 않고 돌아가셨다. 한껏 아쉬운 표정으로 주인님을 배웅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뒤를 돌자마자, 나는 또 한 번 비명을 지를 뻔했다. 검은 양복의 사내, 손수건으로 땀을 닦던 사내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이 지친 얼굴로 한숨을 쉬며, 내게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선생님, 많이 놀라셨죠? 압니다. 아는데요. 제 업무 특성상… 이렇게 매번 놀라는 분들만 만나다 보니까, 설명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오늘 선생님이 생각보다 너무 늦게 귀가하셔서, 제가요,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그러니까 놀란 마음을 좀 가라앉혀 보시고? 제 설명을 들어봐 주시겠어요?”


스팸 문자 속 발신인은 공무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투 속에 공무원 특유의 느낌이 묻어났다. 가슴속 분노가 주변을 달구는 게 느껴지는데, 차분함과 공손함은 절대 잃지 않는. 게다가 그는, 너무 지쳐서 별 대단한 공격성조차 없어 보였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과민 반응을 한 느낌이라 괜히 머쓱해졌다.


“많… 많이 기다리셨나요?”


“네. 2시간 정도 기다린 것 같네요. 퇴근을 늦게 하는 편인가 봐요.”


“오늘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실 줄 몰랐어요!”


아니, 그쪽이 나를 집에서 기다릴 거란 생각을 못 해봤죠… 이게 무슨 헛소리의 향연인진 모르겠지만, 그의 지친 얼굴은 사과를 불렀고, 나는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엇, 죄송합니다. 많이 더우시죠? 에어컨 켜드릴게요! 뭐… 뭐 시원한 음료를 좀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에어컨이 돌고, 주스를 들이켠 남자의 눈알에도 당이 돌며, 방 안의 공기도 순환이 되는 듯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젊은 분이니까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죠. 저는 지구설계과에서 공간 설계 오류를 담당하는 공무원 박시민이라고 합니다.”


“아… 예. 근데 제가 공무원… 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구설계과라는 게 있나요?”


“음… 지구, 그러니까, 음… 선생님은 평행 우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왜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소재죠. 내가 여기에만 있지 않고? 또 다른 우주에도 나와 비스름한 사람이 있고? 뭐 그런 거요.”


생각보다 허술한 설명에 놀랐다. 평행우주라니. 즐겨보는 장르는 아니지만, 퍼뜩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하나가 이런 내용 아니었나? 수많은 우주 속에 수많은 내가 존재하고, 그들과 합심하여 우주 평화를 지켜내는 이야기.


“어… 스파이더맨?”


“네. 맞습니다. 그런 내용이에요.”


“뭐가요?”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이 세상이요.”


젊은 사람은 어디까지 스스로 이해를 해야 하는 걸까? 젊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하는 억울함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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