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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빛나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았던 순간"

by 김듀키 Mar 24. 2025

“이야… 정말 인성 논란인데? 너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냐? 네 말대로라면 안 괴롭혀도 언젠가는 주저앉을 애인데.”


“난 그런 애들이 싫어. 인정받는 주제에 나약한 애들.”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기사를 보고, 병원에 찾아갔었다. 원래의 나라면 수강생 동기들을 만나게 될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껄끄러워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수줍은 성정 때문에 내내 연락조차 드리지 못한 선생님을,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 소중한 선생님을, 다신 뵐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무겁던 발이 떼어졌다.


그곳에서 거의 10년 만에 동훈 형을 만났다. 그리고 동기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작곡가라는 직업은 재미가 없으니 적당히 하다 포기하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셨다. 유일하게 작곡가로 데뷔한 동훈 형에게는 이렇게 재주가 없는 애가 어부지리로 데뷔하고 먹고사는 게 현실이라고 하셨다. 그 살벌한 이야기를 모두 농담처럼 웃어넘기느라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걘 성격도 안돼. 이 시장에선 안 돼! 그렇게 건방진 취향을 가졌으면 성격이라도 붙임성 있든가. 나 봐라? 여기저기 싹싹하게 구니까 작곡가 형들이 멜로디 하나씩 끼워 넣어줘서 데뷔했잖아. 이것도 실력이다? 나 그렇게 해서 많이 는 거야.”


맞는 말이다. 동훈 형이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나씩 참여를 하며 작곡에 대한 감을 익힌 것도 사실이다. 큰 물을 만나면 고기도 크게 자라는 것처럼. 그 성장이 신기하게만 느껴졌었다. 난 동훈 형의 그런 성격을 늘 부러워했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늘 걔한테만 관대했어. 그 시니컬한 양반이 걔만 보면 존니 따수워. 따수운 웃음을 지어. 병원에서도 나한테는 농담인 척 악담을 퍼붓더니만. 걜 보더니 웃어요. 그러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우리더러는 작곡가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더니, 걔한테는 꼭 하래. 어떻게든 하래. 이러니 내가 걜 좋아할 수 있겠어?”


병문안 인파 속,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나를 보고 선생님은 웃음을 지으셨다. 참 이상한 순간이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쏟아지는 눈총에 쩔쩔매는 나에게, 선생님은 몇 번이고 명진명, 포기하지 마. 꼭 돼. 작곡가 돼. 확답을 바라는 듯 말씀을 건네셨다.


나는 얼결에 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곡 하나 완성하지 못하는 명곡 병, 내곡구려 병 환자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내 인생은 희망으로 빛나다 못해 터져 버릴 것처럼 벅찼다.


“걘 이름부터가 시대에 뒤처져. 걔의 모든 게 트렌디한 걸 거부하는 거야. 진명이 같은 이름? 10년 지나 봐라. 아이들 이름 목록에서 찾을 수나 있을까? 그 이름도 멸종될 거야, 아마.”


“동훈은 괜찮고?”


“동훈은 나쁘지 않지. 지금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동훈은 귀엽고 무난해서 살아남을 이름이랄까.”


“하다 하다 이름까지 까고 자빠졌네. 너 그 정도면 질투야, 열등감이야.”


“요즘은 개 이름도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 춘심이니, 봉구니, 몽자니, 그런 이름으로 짓는다는데, 그것도 다 힙한 거야. 진짜 촌스러운 이름은 안 써. 진명이 같은 게 그래. 너무 재미없고 진지하잖아. 진명이는 말이지, 멸종위기종이야.”


한때 그런 짤이 돌았다. 공룡이 어떤 동물에게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 내지는 조언하는 그림이.


그런데 세상이 좋아졌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면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해준다. 멸종을 완전히 피할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으라고 지켜준다. 누군가 해하려 들면 나서서 막아준다. 그게 지구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무능한 생명체라 하더라도. 세상에 어떤 종이 사라지는 것이 생태계에 혼란을 줄까 봐, 세상에 이런저런 종도 있다는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서, 지켜준다고.    


곡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를 할 때마다, 앞으로 무얼 해 먹고 무얼 꿈꾸고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마다, 나는 늘 내가 속할 카테고리가 어디인지 찾곤 했다.


아니, 나는 언제나 카테고리만을 찾고 있었다. 어떨 땐 영원히 내가 분류되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빠져 멸종을 바라기도 했다. 죽는 건 무섭지만, 지금 죽어도 상관없을 나 같은 사람을 왜 계속 이 세상에 남겨두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살며, 주변을 둘러보니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서른이 넘도록 자신이 어디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자기 카테고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세상의 수많은 카테고리 그 바깥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자기 힘을 겨뤄보지도 못하고, 동질감도 느끼지 못한 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들.


그러니 나는 멸종위기종으로도 취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각보다 흔해서, 나는 이 세상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라져도 누군가는 또 그 외로움과 무능감에 멸종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나 같은 개체를 다신 볼 수 없을까,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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