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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제발 이 직감만은 틀리게 해주세요"

by 김듀키 Mar 21. 2025

 이상하다. 난 동훈 형의 마음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는데. 너의 무의식은 동훈 형의 마음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냐고 기어이 따져 묻는다. 나를 탓하게 된다.


“올, 이동훈 인성 논란?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거야, 지금? 돌았네?”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몰고 가. 어차피 안 될 애야. 10년째 시간 낭비 중인데 내가 그 고문 같은 희망을 없애 주겠다는 거지.”


“걔가… 잘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네가 어떻게 알아?”


사람이 상대방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직감이란 얼마나 발달되어 있을까. 모든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나의 직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훈 형을 강승교 선생님의 병실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내가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호의적인 말만 늘어놓는 동훈 형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영원히 누군가의 마음을 몰라도 좋으니, 제발 이 직감만은 틀리게 해주세요.


“일단… 걘, 건방져. 명곡 병에 걸려 있어. 장르 하나에 미쳐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장르 같은 건 관심도 없어. 그냥 명곡만 좋아해. 그 태도가 너무 재수 없어.”


“명곡 병? 좋은 걸 자주 들으면 실력도 따라가지 않나?”


“그것도 잘~ 하는 애들이나 가능한 얘기지. 걔 같은 어중이들은 눈만 높아져서 오히려 무너지기 쉬워요. 게다가 트렌드가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데. 걘 그런 건 관심도 없어. 요즘은 곡을 조각내다 못해 아주 나노 단위로 잘라서 작곡가들이 곡 1개에 부스러기처럼 뭉쳐 있는 형태라고. 그런 상황에서 작사나 메시지가 있어야만 곡이 나오는 애가 되겠냐? 되겠어?”


“흐음… 그건 좀 그렇네. 요즘 아이돌 시장이나 먹고살 만하다는 거, 나 같은 일반인이 봐도 알겠는데.”


구구절절 옳은 대화에 테이블 위로 엎드린 볼이 두근두근 뛴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90년대가 르네상스라고 하잖아? 그 시기 노래만 듣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막상 그런 스타일로 노래 발매해 봐라. 사람들 별로 관심도 없어.”


“하긴. 추억의 가수들 다시 나와 달라는 사람들 많은데, 막상 새 곡 들고 나오면 크게 관심은 없더라. 옛날에 인기 있었던 곡만 다시 듣지. 내가 들어봐도 옛날 스타일로 발매하면 뭔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들긴 하더라고. 아니지. 뭔가 그 시절을 흉내만 낸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 같아. 진짜 가뭄에 콩 나듯이 좋은 곡이 나오기도 하는데… 드물긴 하지.”


“걔가 명곡으로 뽑는 노래들 죄다 그 시대 솔로 발라드 가수들인데, 요즘은 씨가 말랐어. 있어봤자 싱어송라이터야. 자기들이 작사, 작곡하는 게 팬들한테도 영업 포인트로 먹히는 건데. 걔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시장이라는 게 없어.”


“야, 그래도 세상이 좋아졌는데. 어디서든 자기 곡 팔아보려고 하면 못 할 게 없지 않아? 하나의 주제로 곡을 만드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자, 이제 진짜 문제가 뭔지 말해 줄게? 걘 멘탈이 너무 약해. 내곡구려병에서 못 벗어나. 내가 구리단 말 안 해도 스스로 구리다고 생각하면 완성을 못해. 그렇게 벌써 10년이라고.”


“10년?”


“강승교 선생님이 걜 너무 예뻐한 게 독이었을 수도 있어. 진짜 선생님이 누굴 칭찬하거나 인정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걔한테만 포기하지 말고, 꼭 작곡가 되라고 한 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강승교 선생님은 천재라는 말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죽을 때까지 발표한 곡 중 그 어떤 곡도 시대의 벽에 부딪힌 적이 없었으니까.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곡을 냈다 하면 유행을 만들다 못해 아류를 줄줄이 생산했고, 작사까지 훌륭한 작곡가로 유명했다.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은 정말 수강생 누구에게도 희망을 심어주는 법이 없었다.


동훈 형은 나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그때 선생님은 내가 만든 곡을 촌스럽다고 평가하셨다.


“아 정말? 강승교 엄청 유명하잖아. 그런 사람이 인정한 거면 그래도 가능성 있는 거 아니야?”


“몰라. 그때 걔가 만든 곡은 정말 무지하게 촌스러웠어. 그리고 선생님도 촌스럽다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근데 이게 참 귀한 재능이라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은, 10년 전인데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공간, 냄새, 약간 흐렸던 날씨까지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도 나는 세련되지 못한 곡을 만들어 갔었다. 물론 세련되지 못한 가사까지 꾸역꾸역 붙여서. 동훈 형 말대로 나는 가사 없이는 곡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선생님이 그 촌스러움에 가산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은 없다나 뭐라나. 본인은 작곡 능력이 있으니까 진정성 타령을 해도 문제가 없었겠지. 하여간 천재는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져.”


촌스럽다. 근데 이거 참 귀한 재능이다. 자기가 겪은 슬픔으로 남을 응원한다는 것. 앞으로 음악 시장이 또 어떻게 바뀔 진 모르겠지만,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은 없다. 

그게 선생님이 나에게 건넨 희망이었다. 동훈 형 말대로라면 고문일 테고, 그 반에 있던 수강생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칭찬이자 인정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작곡가로만 살아온 선생님은 몰랐을 것이다. 이력서에도 쓸 수 없는 취미와 특기가 응원인 것을.


“내가 요즘 뭘 하는 줄 알아? 매주 조금씩 걔한테 좌절을 주는 거야. 될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아득바득 어떻게든 곡 하나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고. 근데 걘 정말 신기할 정도로 조금만 건드려 놓으면 못 해. 그렇게 모든 장르를 돌아주면 걔도 포기를 하겠지. 자기 능력으론 죽어도 안 된다는 걸 깨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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