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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꽃잎 Apr 19. 2024

나의 하루는 10시에 시작된다

해야 할 것이 없는 아침을 보내는 법

  휴직 초기에는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던 관성이 남아 있어 일찍 눈이 떠졌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 참 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기로운 휴직생활, 갓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나는 건강하게 아침 챙겨 먹기, 요가, 명상, 감사일기 쓰기 등 아침루틴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런 루틴들을 다 수행해도 업무시작(9시) 시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휴직 기간이 점점 무르익어 가면서 나의 아침 시계는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강력하게 해야 할 것(=출근)이 없어진 오전은 잠으로 대체되었다. 그도 그럴게, 침대가 너무 포근하지 않은가(!) 그리고 '휴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푹 쉬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침대에서 잡아두었다. 여기서 만약이라는 걸 해보면, 휴직 대신 퇴사라는 선택지를 선택했다면? 불안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났을 텐데,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안전장치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다.


  결국 휴직 한 달 만에 나의 기상시간은 10시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때 일어나도 늦잠을 잤다는 약간의 죄책감 외에는 아무런 일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찍 일어나면 오히려 너무 많이 주어진 시간을 주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휴직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계획을 잔뜩 세워놓긴 했다. 그런데 그것들을 웬만큼 해도 시간이 넉넉하다. 휴직을 해보니 직장에서의 하루 8시간(+출퇴근시간 별도)이 얼마나 큰 시간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반전인 것은 막상 늦잠을 자다 보니 아침에 꾸물꾸물거리게 되고 목표했던 루틴은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갑자기 생긴 많은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휴직을 해서 시간부자에 당첨되었는데 넘치는 시간을 어찌할 줄을 모르겠는 상태. 나는 높은 확률로 그 확률에 당첨되었다. 루틴을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 그뿐만 아니라 출근시간과 같은 일종의 책임감이라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강제력이 없는 상태. 내가 루틴을 실패하게 될 요인은 충분했다.

다만 넉넉한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소비시켜야 했고, 그나마 늦잠을 자는 행위는 어떠한 노력 없이도 시간을 소비시킬 수 있는 최적의 행위였다. 긴 수면 시간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피부는 꿀피부가 되었고 직장 다닐 때 느끼던 만성적 피로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오전 10시 기상은 휴직자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일 것이다.


   마음속 한켠에서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소리친다. 나의 루틴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침대 밖으로 나를 몰아낼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없다. “미라클 모닝”이라고, 간절하게 원하면 새벽 5시에도 일어나 뭔가를 한다는데, 아직 나는 간절하지 않은 걸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벌떡 일어나 질까? 휴직생활을 하루하루 지내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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