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출퇴근 해야하는 직장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될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유도한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그럴 뿐만 아니라 휴직 상황에서는 심리적으로 더 그렇게 느끼게 된다. 휴직을 했다고 나는 그동안 못했던 여행이나 실컷 가겠거니 생각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결국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집은 쉬는 공간이라는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 자꾸만 쉬고 싶다. 간단한 집안일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 앉아 있고 싶고 앉으면 또 눕고 싶고 그러다보면 또 낮잠이 들고의 연속이 되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집에만 계속 있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점점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것저것 계획은 잔뜩 세워놨는데 무기력감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게 되고, 내일 하면 되지 하는 생각과 집은 쉬는 공간이야 라는 생각 등 자기 합리화의 끝판대장이 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때는 기분 전환할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단순하게는 집안에서 쉬는 공간과 무언가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공간을 분리하는 인테리어적 요소가 될 수도 있겠고, 집밖으로 박차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것을 하려면 집에서 나와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 앞 카페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페에서 차 한잔을 홀짝이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자니 휴직했다는 게 확 체감이 되고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노트북을 펼쳐 흥미가 가는 강의나 영상 등도 찾아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도 끄적여보고 이것저것 할만한 것을 찾아보기도 한다.
집앞 카페가 조금 루즈해지는 기분이 들면 2차로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 열람실에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퇴직한 것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있고,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있고, 주부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사각사각 종이에 쓰는 소리, 노트북 타자치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등이 듣기가 좋다. 각자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집에만 있으면 정신 못차리던 내가 카페나 도서관으로 출근하면 뭐라도 하게 된다. 왜일까? 집이라는 ‘휴식’ 장소에서 벗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카페와 도서관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나를 좀 더 살아있게 만든다. 휴직생활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고립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아마도 공무원 사회에서의 강한 조직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조직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이나 카페 같은 어떤 목적을 갖는 공간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나마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직장에서 받았던 것이 급여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소속감’이라는 것은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퇴근을 멈춰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결핍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