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할 때는 몸도 머리도 바쁘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근육을 컨트롤하고 자세를 잡는 동안,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스친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다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고, 동작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이어진다.
어제도 캐딜락에서 엎드린 채 팔과 상체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했는데, 선생님이 내 팔을 무뽑듯이 끌어올려 주셨다. 어깨 관절이 빠질 것 같은 순간, 문득 어린 시절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던 내가 떠올랐다. 팔을 마구 돌리고 다리 찢기를 시키던 기억이 따라 올라왔다. 그때의 인형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사람에게 했다면 꽤 무자비한 행동이었을 테니까.
이 이야기를 선생님께 했더니 크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민주님은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창의력이 좋아요.”
창의력이 좋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나는 변화를 크게 반기지 않고, 정해진 방식대로 하는 걸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필라테스를 하면서도 이렇게 온갖 생각을 하는 게 과연 ‘똑똑한 것’인지, 아니면 집중하지 못하는 건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나는 산만한 걸까, 아니면 연결하며 생각하는 사람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생각들은 완전히 뜬금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동작과 이어져 있었고, 더 잘해보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들이었다. 가끔은 쉬는 시간에 나눌 대화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지금 하고 있는 동작과 내 몸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필라테스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자꾸 머리로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건 잘못된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생각들이 단순히 딴짓은 아니라는 점에서, 완전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필라테스 학원에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린다. 동작을 한 번에 잘하지 못해도 괜찮고,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잘 안되면 선생님이 도와주신다. 그런 당연한 흐름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밖에서는 늘 잘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잠시 그런 기준을 내려놓을 수 있다. 어쩌면 나에게는 작은 안식처 같은 공간이다. 물론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버티고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필라테스가 나를 위한 시간인지. 단순히 워킹맘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까지 풀어주는 시간이었다.
동작은 아직 서툴지만, 필라테스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