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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ug 26. 2019

[퇴사일기 #5] 퇴사 첫날 달려간 곳이 토익학원?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을 ‘퇴사 지망생’들을 위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혹시나 ‘당신 글 덕분에 용기를 얻어 퇴사했어요’라는 원치 않는 댓글이나 쪽지가 날아올까 싶어 겁이 좀 나기도 했다. 멋은 좀 없을지라도 지질한 퇴사의 여정을 좀 더 자세하고 담백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책임한 한 마디까지.

 ‘어디까지나 결정, 그에 대한 책임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나는 흔히들 생각하는 멋진 퇴사자가 절대 아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청춘의 꿈을 위해서도, 지금이 아니면 평생에 절대 못해 볼 세계일주를 위해서도,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 짱돌 한번 던 보겠단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도 결코 아니었다.  

 모든 퇴사자가 그럴 테지만, 퇴사라는 결심을 꺼내 들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심플하지 않았다. 물론 겉멋이 아닌 나름 진정성 넘치는 명분도 있었다. ‘그래 너 많이 힘들었겠다’란 위로 정도는 들을 수 있는 굵직한 사연들도 꺼내 보자면 한 보따리다. 시답잖을 수도 있지만 당시엔 나름 큰 스트레스였던 자잘한 이유들까지, 복잡 다양한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1. 눈뜨기 무섭게 교복 같은 정장 차림으로 출근해서 야근하고 돌아오는 삶을 반복하기 싫어서
2.  내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매출 목표와 실적만 쳐다보는 한 달, 1년, 10년이 끔찍해서
3. 고작 서른인데 ‘ㅇㅇㅇ기업 회사원’으로 딱 답이 나와버린, 내 인생이 딱해서
4. 암만 생각해도 ‘왜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는 업무지시
5. 군대나 다를 바 없는 조직 문화, 그놈의 직급 체계가 징글징글해서
6. 일요일 아침부터 ‘내일 회사 출근’ 생각에 욕하면서 눈뜨기 싫어서
7. 통장 잔액이든 내 몰골이든, 나가서 뭘 해도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싶어서
8. 같은 노예 주제에 지가 더 잘났다고 우쭐거리는 동기, 선후배들의 모습이 하도 같잖아서
9. 노총각 히스테리 부리는 팀장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10. 제발 은행이나 병원 좀, 속 편하게 누구한테 보고 안 하고 다녀오고 싶어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이미 10개다. 구차한 넋두리 따위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면 20-30개도 풀어낼 수 있다. ‘티끌 모아 퇴사’라는 제목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확실한 건,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의 흔한 로망,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세계일주’ ‘세계평화’ 따위의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는 거다. 퇴사하면 쓸 수 없는, 그래서 퇴사 전에 모두 소진해야 했던 복지 포인트의 사용처만 봐도 딱 답이 나온다. 20만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를 토익 학원비로 결제했다. 당시 종로 바닥에서 방귀 좀 뀌었던 토익강사의 ‘토익 종합반 클래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토익 점수라도 만들어 놓고 싶었나 보다. 7년이나 지나서 들쳐보는 당시 ‘퇴사자 김한빛’의 현실적인 속내는 귀엽기도 하지만 창피해서 죽을거 같다. 나름 그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는 ‘꿈을 찾아 퇴사하는’ 멋진 이미지로 불려졌었는데.     

 아무튼 퇴사한 첫날, 오전 11시까지 늦잠을 찢어지게 자고 일어난 나는 느릿느릿 옷을 챙겨 입고 미리 사두었던 토익 교재를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 담은 채로 집을 나섰다.

 ‘비록 퇴사를 하긴 했지만, 첫날부터 퍼져 있을 수는 없지!’
 ‘지금 회사에서 회장님을 위해 일하고 있을 회사원들과 달리, 오늘부터 나는 나를 위해! 인생이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거야!’
 
 그래 봐야 토익학원 등록한 게 다 였지만, 나름 계획성(?) 있고 의미심장한 각오로 시작한 퇴사 후 첫날, 회사원이 아닌 프리랜서로서의 첫 스케줄은 시작되었다. 시작이라고 하기엔 이미 해가 중천이었고, 프리랜서의 스케줄이라 말하기엔 너무 토익 학원이었던 게 좀 에러였지만.






 나름 의욕적으로(?) 불살랐던 각오와 달리,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퇴사 후계획, ‘토익점수 만들기’는 금세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수업에 들어간 지 10분 만에 내 발로 다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업계 BIG3 중 한 명이라 불리었고, 소위 말하는 일타 강사는 수업 시작부터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몇해 전 첫 업을 위해 토익에 메달리던 시절에도 수업 중에 쓸데없는 잔소리가 심한 강사라 기억했었는데, 그 날 따라 유독 짜증이 잔뜩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꼭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취업도 못하는 사람들이 카페에다 수업이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습니다.”
 “그런 댓글 달 거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그냥. 환불해 줄 테니깐. 그리고 취업 어디 하는지 꼭 두고 봅시다.”
 “상반기 ㅇㅇㅇ공기업에 취업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평소 수업 태도가... 여러분 토익 수업 듣는 모습만 봐도 저는 딱 압니다. 취업할지, 못 할지.”

  주위를 둘러봤다. 평일 오후 시간의 수업이라 그런지, 직장인은 거의 없었다. 300명은 족히 되어 보일 대학생들만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나도 2년 전에 취업하겠단 일념 하나로 여기서 저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지. 나도 저 강사 말처럼 작은 회사라도 취업을 해야 사람 구실 할 줄 알았지. 취업만 하면 그동안의 고생과 설움 따위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놈의 취업. 취업. 그래도 일타는 일타였다. 일타 강사의 짜증 섞인 잔소리 덕에 퇴사의 설레는 기분에 취해 산으로 흘러가던 내 정신머리가 번쩍 돌아왔으니깐.

 ‘회사가 그렇게 싫어서 때려치우고 나간 놈이. 또 회사에 기어 들어가 보겠다고 토익 학원을 찾아왔냐? 그것도 퇴사한 첫날부터?’

 퇴직금과 다름없던 마지막 복지 포인트로 결제한 토익 학원이었지만, 첫날 수업이 시작된 지 10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과감히 가방을 싸들고 일어섰다. 교재는 지나가는 누군가 갖다 쓰라며 휴지통 옆에 던져두었다. 복지포인트도, 사놓고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한 교재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해이해진 정신머리를 붙잡게 된 수업료라 치면 저렴한 편에 속했다. 






 비록 퇴사를 결정하고 회사를 그만둔 그 순간까지의 나는 그리 멋지지 않았다. 하지만 퇴사 첫날, 토익 학원을 뛰쳐나오던 내 뒷모습만큼은 아주 조금 멋있었던 것 같다. ‘필요한 사람 가져다 보든지 뭐’ 정말 내게만 들릴 것 같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무심하게 교재를 던져 놓는 내 손길이 지금 생각해도 참 무심하 쉬크했던 것 같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가짜(?) 퇴사자가 아닌, 퇴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린 진짜 퇴사자로서의 날것의 삶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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