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4] 떠밀리듯 휩쓸리는 출근길 속 펭귄
7년 전, 내가 기억하는 나의 출근길은 늘 분주했다. 매번 내일은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 여유 있게 집을 나서리라 다짐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늘 하루가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이 아쉬워 밤늦도록 뭐라도 깔짝거리며 12시를 넘기는 것이 보통 직장인들의 일상 아닌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랴부랴 머리와 얼굴에 물을 끼얹고 집을 나선다. 7시 5분, 오늘도 어김없이 새마을금고 앞에 마을버스가 멈춰선다.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할 일은 손을 뻗어 카드를 들이미는 것이다.
‘삑!’
경쾌한 소리에 나에게도 작은 자격이 주어진다. 어찌 됐든 카드는 찍혔고, 돈은 빠져나갔으니, 좋으나 싫으나 나에게도 이 차를 타야 하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버스 기사님의 외침도 그 명분에 힘을 실어 준다.
"안쪽으로 좀만 들어가세요!"
‘좀 땡겨줘라. 힘든 거 나도 안다. 그래야 나도 탈거 아니냐. 버텨봐야 출발만 늦어질 뿐이다. 어찌 됐든 카드가 찍혔으니 내가 올라타야 이 버스도 출발할 거 아니냐’
무사히 마을버스에 몸을 구겨 넣은 것만으로 출근길 레이스가 끝날 리 없다. 시작을 알리는 가뿐한 워밍업일 뿐. 마을버스에서 내려 전철 타러 내려가는 순간에도 긴장된 발걸음은 계속 되어야 한다. 뜀박질과 보통 걸음, 그 중간쯤 어딘가.
곧 도착할 열차가 표시되는 전광판 속 그림이 두 번째 레이스의 시작을 알린다. 행여라도 열차가 선로에 막 들어오고 있다면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어질라치면 내려가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밀고 올라오는 인파에 휩쓸려 눈 앞에서 떠나가는 열차를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 하니깐. 어차피 출근 시간엔 배차 간격도 짧아서 그래 봐야 3-5분 정도일텐데, 그게 뭐라고 참. 그게 그렇게도 억울하고 분통하다.
언젠가부터 빈자리에 대한 기대 따윈 하지 않기로 했다. 빈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곳, 손잡이를 붙들 수 있는 좌석 바로 앞자리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인걸 뭐. 출근길 상황이 늘 이 모양인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자기 계발하고, 그걸 바탕으로 연봉 올려서 이직하라는 얘기는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책은 커녕 사람들 몸통에 낀 스마트 폰을 움켜쥔 내 팔 한쪽도 빼내기 힘든 마당인데. 그 순간 나의 바람은 소박하다. 들썩이는 호흡이 조금이나마 가라앉길, 내 등을 적신 땀에서 냄새가 조금이라도 덜 났으면.
'오늘 지하철 탔는데 앞의 어떤 아저씨 땀냄새 장난 아닌 거야. 숨소리까지 거친 게 무슨 변태 아닌가 싶었다니깐!'
저 아저씨 아니고 아직 총각이에요. 변태는 더더욱 아니구요. 아 정말 최악이다.
출근 레이스의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고속터미널역'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냇가를 이루고 그런 시냇물이 합쳐져 거대한 강줄기를 이러 내는 것처럼, 이른 아침 고속터미널역에서 만들어지는 직장인들의 인파는 장관이다. 색색 별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며 뒤엉켜진 노선으로부터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그 물줄기를 따라 합해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각자의 길로 재빨리 흩어져 나간다. ‘고속터미널역’의 ‘고속’은 버스를 말하는 건지, 오고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게 고속으로 흘러가는 이른 아침 고속터미널역에선 여유 따위가 허락될 리 없다. ‘우두두두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니, 나의 작은 여유가 저들에겐 곧 민폐가 될 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우두두두’ 소리에 나의 발걸음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어찌 됐든 앞을 향해 계속 발을 내디뎌야 한다. 바닥의 무늬를 감상하거나, 주변 상점에 진열된 물건에 시선을 뺏겨 잠시 머뭇거린다? 내 등 뒤에 누군가도 나를 따라 머뭇거리거나 멈춰 서겠지? 심하면 나와 부딪힐 수도 있고. 도미노처럼 그 뒤에 또 쿵, 다른 누군가도 쿵, 또 그 뒤에 누군가가 쿵, 쿵쿵쿵! 와르르르! 이게 바로 출근길 도미노다! 와우!
물론 가끔 상상만 했지, 시도해본 적은 없다.
백번도 넘게 지나쳤던 고속터미널역이지만, 한 번도 실천에 옮겨 보지 못한 나만의 로망이 하나 있다. 출근 인파로부터 슬쩍 빠져나와, 옆에 벤치에 잠시나마 앉아 있기. 그곳에 앉아 출근하는 직장인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기. 나도 과연 저들처럼 내가 타야 할 다음 전철을 위해 앞만 바라보고 걸어 가는 게 맞는지.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라선 뒤에도 어찌 됐든 더 빨리 가보겠다고 왼쪽 자리로 빠져나와 성큼성큼 계단 올라가듯 발을 내딛을 필요가 있는지. 내 속도가 아님에도 앞 뒤 사람들의 ‘고속’ 걸음에 이끌려 나 역시 ‘고속으로’ 휩쓸려가야 하는 이 놈의 '출근'을 대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나만 이런 로망을 품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벤치에 앉아 출근이나 지각 따윈 잠시 잊어 두고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아프리카 평원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단골손님이 사자라면, 남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펭귄이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펭귄들의 걸음걸이가 참 앙증맞다. 귀여운 펭귄의 모습이 비춰지기 무섭게 약간 다른 분위기의 반전이, 조금은 섬뜩한 장관이 펼쳐진다. 하나 둘 모여둔 펭귄들이 점차 긴 행렬을 이루고 선두가 차디찬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기 무섭게 뒤이은 펭귄들 역시 1초의 고민도 없이 육중한 몸을 물속으로 내던지는 모습.
동료와 함께 해야 한다는 무리 생활의 당연한 본능인지, 아니면 자발적 의사와는 무관한, 뒤 따른 펭귄에게 떠밀려 빠지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마리도 열외 없이 빙하가 둥둥 떠다니는 차가운 바다 물속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펭귄들의 모습은 조금 무섭게 다가왔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들에게 내재된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겠지. 오랜 집단생활 중에서 생겨난 펭귄들만의 규칙일 수도 있지 뭐. 뭐가 됐든 무리에 끼어 있는 펭귄은 뒤뚱거리는 발걸음을 쉴 새 없이 앞으로 옮겨야 한다. 앞 펭귄이 뛰어들기 무섭게 본인도 뛰어들어야 한다. 고민이고 갈등이고 할 겨를도 없다. 다음 펭귄도 마찬가지. 그 뒷 펭귄도, 뒤의 뒤 펭귄도.
‘고속터미널역’ 행렬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간, 나도 언젠가는 펭귄들처럼 앞 펭귄을 따라 어디든 뛰어들겠지?차디찬 얼음물 속이건, 먹잇감이 넘쳐나는 깊고 푸른 바닷 속이건. 고민이나 갈등도 없이 지체할 겨를도 없이, 찍소리 한번 못 내보고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던져질 테지. 나도 내 뒤에도, 그리고 그 뒤에도. 그제서야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