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리고 있다는 착각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아주 유명한 행동경제학 대가의 책이 있다. 저 책의 제목을 처음 볼 때 나는 작가가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생각에 대한 생각이란 철학에서 언제나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책은 철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그중에서도 과학적인 사유를 생각이라고 표현한다는 게 오만하다고 느꼈나 보다. 나는 과학을 하면서도 과학이라는 활동을 조금씩 싫어했으니, 자연스러운 거부반응이다. 어쨌든 저 책을 나중에 조금 읽어보고는 내 생각이 틑렸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오만하지 않았다. 오만하다는 생각을 한 내가 오만한 것이었다.
내 오만함을 변명하자면 이렇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우리는 언제나 한다. 나에게는 그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래서 저 제목을 쓰는 것이 너무 담대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생각에 관한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생각에 관한 생각이 특별할게 뭐가 있단 말인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경험 -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경험 - 은 글을 자주 써온 사람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글을 쓸 때면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에 대한 온갖 <생각>이 떠오르니 말이다. 독자를 예상하고 쓰지 않는 일기에서도 심지어 나는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오늘 이런 생각에 몸부림쳤지.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이 있을까? 아 참, 집을 치우고 글을 써야지...' 끊임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내게 이렇게 생각이 물밀듯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지금 <생각>하고 있다. 이때 나는 정말 내 생각을 알아차린 것일까?
명상에서 진전은 조용히 다가온다. 처음에 호흡에 집중해 보는데, 몇 분이 되도록 호흡에 잘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몇 초도 호흡에 집중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나는 몇 분을 집중하는 것인가? 어쩌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이런 경우 자기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자신이 방해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훈련을 할수록 더 빠르게 호흡에 집중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가능하다. 그 구렁텅이 중 하나가 바로 생각을 알아차린다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을 알아차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미 바로 그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된다. 이 <생각>을 다듬어 나갈수록 자연스럽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생각>이 마치 내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이 평온한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 감정은 평온하며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알아차림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다.
이 메타인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생각>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너무 복잡하고 확고한, 멈추기 어려운 방식의 인지과정이 알아차림으로 오해된다. 그렇다면 진짜 알아차림은 무엇인가? 가짜 알아차림, 속임수 같은 <생각>과 구분할 방법이 있을까? 이 생각도 결국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내가 이르지 못하는 이 알아차림은 허구가 아닐까? 이런 의심도 합당한 <생각>이다.
알아차림이 제대로 되고 있다면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무아의 경지다. 알아차림은 내가 눈 뒤, 머릿속에서 세상을 바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바로 이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이것은 하나의 느낌이고 의도에 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 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 내가 머릿속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의식에 떠오르는 것임을 경험해야 한다.
자아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눈 뒤에 있는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느낌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내가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드는 강렬한 움츠림, 바로 그것이 자아의식이다. 이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은 가능하다. 자아라는 힘을 풀어버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이 느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아무리 속으로 '자아는 없다'라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무언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 무아를 경험할 수 있는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일단 긴장하거나 애쓰지 않는 것이 좋다. 편안한 마음으로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내가 있다. 저 머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 '나'인가? 눈을 원을 그리며 돌려보라. 내 모습이 시야에서 벗어나지는 않게 돌려보라. 내 눈이 돌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 내가 '나'라고 느끼는 저 이미지는 뇌가 해석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이미지다. 이것은 반복해서 체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아의 느낌을 놓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꼭 거울을 두고 실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경험 속에 있다. 아니, 우리가 경험 그 자체다. 이 사실을 관찰해 보라. 신체에서 오는 느낌- 압력, 온도, 간지러움, 뻐근함 등-을 느껴보라. 특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등 뒤를 느껴보라. 우리 시야를 잘 관찰해 보라. 최대한 넓은 시야를 유지해 보라. 그리고 감정을 알아차려 보라. 생각을 알아차려보라. 생각이 떠오르고 뒤늦게 '이 생각을 했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바로 그 순간을 알아차리려고 마음을 열고 관찰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