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모임에서 <나와 다른 너에게>를 읽었다. 프랑스 출신의 어린이책 작가인 티모테 르 벨의 작품이다. 원제는 lièvres et lapins(산토끼와 토끼)다. 제목 그대로 토끼들이 나온다. 떡갈나무 언덕에 사는 토끼들은 뭐든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 마시러 갈 때도, 오줌 누러 갈 때도, 심지어는 잠잘 때도. 굴토끼들과 함께 자란 산토끼는 유달리 덩치가 커서 미운오리새끼 같다. 산토끼는 굴토끼들을 사랑하지만, 가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뭐든 함께해야 해?"
어느 날 산토끼는 우연히 다른 산토끼를 만나 들판을 마음껏 내달린다. 형제들에게서 벗어난 해방감도 잠시, 산토끼는 그만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때 늑대가 나타난다.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의 순간 거대한 형체가 나타나 늑대들은 도망간다. 거대한 형체는 굴토끼들이 모여 만든 것이었고, 그 덕에 산토끼는 살아난다. 들토끼들은 산토끼에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닮았지만, 조금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아. (...) 이제 너희가 가르쳐 줄래? 산토끼처럼 달리는 건 어떤 기분인지."
떡갈나무 언덕으로 돌아간 토끼들은 행복하게 잠이 든다. 산토끼가 밤새 별빛 아래서 망을 보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끝난다.
이 작품을 읽고 모임원들과 자신이 굴토끼인지 산토끼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H는 자신은 평생 굴토끼처럼 살아서 산토끼가 대단해 보인다고 했다. 공동체에서 순응했기에 이질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산토끼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지는 한편,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없는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을 산토끼라고 했던 Y가 다정한 말을 했다. "H는 그동안 안전한 공동체를 잘 선택하며 살아온 것이에요. 그 선택의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겠어요. 자신이 굴토끼인 것을 부끄러워 말아요."
나의 경우 20대 초반까지는 산토끼로 지냈던 것 같다. 학교라는 제도에 의구심을 품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순간부터, 글쓰기를 배워보겠다고 입학한 예술대학에서 군기 문화에 질려 휴학했던 순간까지. 나는 늘 공동체에서 부대낌을 느꼈다. 그러다 돌아온 고향에서 우연히 영화제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공동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활동가들과 함께 있다는 감각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굴토끼처럼 지내고 싶어 한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B가 "그린님은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군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보수는 안전함을, 진보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개의 개념이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보수와 진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어울려 살아간다. 하지만 함께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너에게>의 산토끼처럼 내 생각이나 마음과는 달리 공동체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할 때도 있고, 그러다가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공동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공동체는 보수와 진보, 즉 안전함과 다양성을 동시에 지향해야 한다. 굴토끼들이 우리는 서로 닮았지만 다른 점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더불어 살아가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