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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그린 Jun 19. 2024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엄마의 정원에는 수국이 피었다. 보라색의 꽃이 찬란하다. 오직 혼자임을 만끽하며 소파에 누워 책을 읽었다. 지난 몇 주간 주말 없이 일하다가 간만에 쉬는 날이다. 그 사이 핸드폰이 망가져서 아빠가 쓰던 공기계를 받아 쓰고 있다. 초기화된 기계지만, 메모장에 한 줄의 문구가 남아 있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아빠의 다정함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신념으로 지니고 추구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토록 당연하게 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을까. 


시민단체 활동가가 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올해는 우리 단체의 기념비적인 해여서 특별기획으로 선배들과 동료, 후배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향후 5년의 비전을 설정하기 위한 인터뷰라서 실무적인 조언을 많이 듣는다. 인터뷰를 하며 문득 마음이 동할 때가 있다. 그들이 보수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를 말할 때, 이 공동체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할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이 삐져나온다. 선배들이 가진 자부심과 안정감이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있고, 그 연결 속에 내가 있다. 하루는 역질문을 받았다. "그린님은 자원활동가로 시작해 사무국 실무자가 되었잖아요. 그린님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제주도는 늘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 다 아는 좁은 지역사회,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작은 섬. 정상적인 삶의 기준이 명확해서 부담스러운 고향. 육지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이십 대 중반에 우연히 이 공동체를 만났다. 혈연과 자본이 아니어도 이토록 끈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공동체의 대의는 내 삶의 파편적인 불안을 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여 떠들고 식사하고 작당을 도모했다. 평생 '은사님'의 개념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누군가를 스승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틈만 나면 잠수를 타던 내가 동료들을 아끼게 되었고, 늘 스스로의 꿈만 추구하던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는 나를 어른스럽게 했다. 제주도를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섬에 남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공동체가 의미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사람이 모인 만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각자가 가진 트라우마와 태도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입사 초반에 자주 울었다. 나는 꽤 회피형인 사람인데 요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동료들과 불화할 때 하루 이틀 지나 대화를 건다. 얼굴을 대면하여 우리의 문제를 곱씹고 서로의 입장을 듣는다. 때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상대의 입장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작 3개월이다. 실무는 어느 정도 손에 익었지만 매일 새로운 과제를 마주한다. 일이 많지만 지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놀라는 중이다. 퇴근하는 길에 나의 자동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상사, 굳이 집에 초대해서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는 동료, 내가 노력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따라와 주는 후배.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한번 아빠의 다짐을 생각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공동체는 대의만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특히 자본이 부족한 시민단체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안전함을 느끼는 데에는 반드시 다정함이 필요하다. 다정함은 단순히 친절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짐하고 추구해야 하는 신념이다. 그 고상한 것을 지켜내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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