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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그린 Dec 15. 2022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하여

<프란시스하> &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설모에게.


<프란시스 하>가 재밌었다니 다행이야. 그녀의 서투름을 보며 왠지 부끄러워졌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어. 나도 프란시스를 보며 너무 나 같아서 창피했거든. 이 영화는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그레타 거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해. 그레타 거윅이 자신의 서투름을 '있는 그대로의 서투름'으로 그릴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멋진 영웅의 서사가 아닌, 하찮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 그녀가 존경스러워.


너는 프란시스를 보며 어떤 성장은 포기를 동반하는 것 같다고 했지.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어. 그러다 문득 성장과 성공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 성공에는 명확한 이상향이 있지만 성장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어. 성공의 관점에서 볼 때 프란시스는 무용수를 포기한 것이겠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볼 때 프란시스는 안무가로서 분명히 앞으로 나아갔어.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집을 구한 프란시스가 우체통에 자신의 이름표를 끼워 넣잖아. 그런데 이름이 길어서 우체통에 들어가지 않지. 프란시스는 이름표를 반으로 접어. 규격화된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그녀는 반쪽짜리 성공을 한 사람일 거야.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우리는 알고 있지. 프란시스는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의 이름 절반을 지킨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살아갈 일상은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펼쳐져. 프란시스는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다 문득 소피와 시선이 마주쳐. 그 순간 안정감을 느끼지. 프란시스와 소피는 각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두 사람만의 세계가 존재해. 그것을 눈빛으로 확인하는 거야. 프란시스가 소피에게 느낀 그 견고한 기분을 나는 너에게서 느껴.


무용을 사랑하지만 무용수가 아닌 프란시스. 영화를 사랑하지만 영화예술인은 아닌 우리들. 프란시스가 무용의 근처에 남았듯이, 영화의 변두리에 나와 함께 머물고 싶다는 너의 고백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를 봤어. 샌디 탄 감독은 어린 시절 열정을 다해 만든 영화의 필름을 도둑맞았어. 열심히 기획하고 촬영했지만 완성본을 보지 못했지. 멘토였던 조지가 필름을 통째로 들고 사라진 거야. 샌디는 10대 시절 조지에게 영화를 배웠고 그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에 상실감이 컸어. 


이 작품은 그 시절 함께 영화를 만든 친구들과, 조지 주변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진행돼. 조지는 전적이 많았어. 재능 있는 제자들의 작품을 훔치고 싶어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거야. 촬영 당시에도 가스라이팅을 일삼았어. 이를테면 친구들이 열심히 섭외해온 사람이 나타나면 '너희들은 나가봐. 내가 이야기할게.'라며 배제했고, 제작비가 부족하다며 친구들이 그동안 저금해온 돈을 인출시키기도 했어. 샌디를 성적으로 착취하려고도 했지.


서투르지만 찬란했던 시절을 나쁜 어른에게 도둑맞은 샌디. 그녀가 안타까워질 무렵 이 작품은 분위기를 전환해. 조지를 고발하는 내용이 아닌, '그럼에도' 그 영화를 사랑했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주목해. 


영화 <셔커스>가 어떤 내용인지는 불분명해. 감독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 어쩌면 본인들이 추억하는 것과 다르게 미흡하고 엉망인 작품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그 영화를 사랑했던 마음이야. 그때의 열정과 상실감 그리고 그리움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당신은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답니다."


한때 사랑했던 뭔가가 있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상실감 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되찾았으면 좋겠어.



답장을 천천히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적어버렸네.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까 봐 걱정이다. 이 조급한 기쁨을 이해해주길 바래. 이만 줄일게. 안녕.


추신 ㅡ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야. 결혼과 연애로는 채워지지 않는 고독함에 대해 다룬 영화야. 재밌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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