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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그린 Dec 22. 2022

빈틈 앞의 사람들

<우리도 사랑일까> & <콜럼버스>

설모에게.


이번 주는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네. 내년에 일본으로 여행 가자던 계획이 우여곡절을 겪고, 오해가 쌓여 아픈 말들을 주고받았지. 많은 대화 끝에 우리는 다시 서로의 마음을 돌보게 되었어. 다행이야. 훗날 비슷한 시련을 겪게 되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우리도 사랑일까>를 보며 '빈틈'을 떠올렸다고 했지. 주인공 마고는 사랑하는 사람과 완벽한 합일을 원했던 것 같아. 외로움이 찾아올 틈이 없는 그런 관계 말이야. 나와 타인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하는데도, 마고는 남편과의 거리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어. 그 틈새를 어떻게든 메꾸려고 했지. 마고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잠시나마 상대와의 합일을 이룬 듯 보여. 하지만 끝내 고독함을 느끼지.


나 역시 마고처럼 누군가와 완벽하게 관계 맺고 싶었던 적이 있어. 한치의 오류도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지. 잠시라도 떨어지면 그 관계가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내내 붙어있고 사랑을 속삭였어. 그러다 결국 실패했지.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누군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더라. 그렇다고 너무 거리를 두면 서로에게 소홀해지고 말이야. 나의 이십 대는 온통 거리 두기를 배워가던 시기였는데도, 아직도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리감인지 잘 모르겠어.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고와 루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씬이야. 마고는 집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려. 루는 테라스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마고를 바라보지. 루는 마고의 입모양을 보며 리듬을 타. 창문이 닫혀 있어서 아무런 음악이 들리지 않는데도 말이야. 그의 태도에서 사랑을 느꼈어. 엄연한 벽이 있음에도 그는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했으니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할까. 분명한 건 완벽한 합일이란 없고 적당한 거리감이란 불분명하다는 거야. 다만 우리는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어. 당신의 세계를 보다 정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만이 사랑일 거야.


  



네가 추천한 <콜럼버스>를 봤어. 콜럼버스는 모더니즘 건축물의 메카로 불리는 작은 소도시야. 진은 유명한 건축가였던 아버지에게 상처가 있는 남자고, 케이시는 약물 중독인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여자야.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며 이야기가 진행 돼.


영화는 느린 호흡으로 정적인 화면을 보여줘. 차분하게 도시의 건축물을 비추지. 진과 케이시는 도시를 거닐며 내면의 빈틈을 건축물에 투영해. 동물과 자연에 비해 건축물은 죽어있는 매개체야. 나의 감정이 전달되거나 소통할 여지가 없어.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죽어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


진과 케이시는 부모에게 상처가 있어서 마음이 얽매여 있어. 영혼이 죽어있던 상태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해. 처음에는 건축물에 대한 지적인 이야기에서 점차 자신들 내면의 상처를 꺼내놓는 것으로 변화해. 시종일관 무표정하려고 노력하던 케이시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눈물을 흘리고 솔직해지지.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죽어있는 것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두 사람의 모습이 꼭 우리 같다고 느꼈어. 우리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꺼내놓고는 하잖아. 영화 역시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죽어있는 매개체일지도 몰라. 영화가 개봉하는 순간 결말은 바꿀 수 없어. 우리는 다만 결말에 대해 해석하고 상상할 뿐이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살아있는 행위이고, 그래서 가치 있다고 생각해.


오늘은 왠지 어려운 이야기만 한 것 같네. 진지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이만 줄일게.



추신-


<콜럼버스>의 두 사람이 하도 떠들어대서, <비포선라이즈>가 생각이 났어. 줄리델피의 아름다움과 에단호크의 섹시함을 즐기길 바라. 이번에는 좀 가벼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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